한 달 전 즈음 “스팸vs런천미트”논쟁이 있었다. 한 식당에서 ‘스팸덮밥’이란 메뉴에 스팸이 아닌 런천미트를 사용하면서 소비자와 사장 사이에서 벌인 설전이 온라인에서 퍼져 논란이 된 것이다. 논란의 요지는 이렇다. 소비자가 스팸덮밥을 시켰는데 스팸이 아닌 저렴한 런천미트덮밥이 왔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불만의 리뷰를 달았고 사장이 이 리뷰에 대해 달은 답글이 화근이 되었다. 사장은 “스팸이란 단어는 요즘엔 브랜드명이 아니라 스팸류의 통조림을 다 스팸이라 부른다”고 하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에게 “제발 말이 되는 리뷰를 달아 달라”고 오히려 너무하다고 반응한 것이다. 

이 설전을 접한 나로서는 ‘사장이 무식하고 용감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 소비자의 컴플레인은 합당한 이유가 된다. “스팸류의 통조림을 다 스팸이라 부른다”는 사장의 지식은 잘못된 것이다. 스팸은 고유명사이다. 스팸과 런천미트는 엄연히 다른 제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캔으로 된 프레스 햄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돼지고기 함량도 크게 다르고 맛도 다르며 가격도 2배 정도 차이가 있기에 스팸덮밥이라는 메뉴에 런천미트를 사용한다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언젠가 해물샐러드를 시켰는데 샐러드에 해물은 없고 싸구려 게맛살이 몇 개 들어 있어서 화가 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소비자가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햄덮밥을 시켰는데 분홍색 소시지덮밥이 나왔다면 화가 나지 않겠는가?

스팸에 대해서는 작년 12월 15일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스팸은 미국 호멜사에서 1937년 처음 출시되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캔 햄으로 고유상표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팸은 CJ제일제당이 호멜사로부터 라이센스를 얻어 1987년부터 생산하는 고급햄 브랜드이다. 스팸의 브랜드 로고를 잘 살펴보면 ‘®’이 붙는다. ‘등록상표’를 뜻하는 기호로 이 때문에 스팸(SPAM)이라는 햄은 CJ제일제당만 판매하고 다른 업체에서는 판매할 수가 없다. 스팸은 돼지고기 함량이 90% 이상이다. 

반면 식품업계에서 ‘런천미트’는 돼지고기 함량이 50% 이하로 닭고기, 전분 밀가루 비율이 높은 저가형 햄을 통칭한다. 물론 서양에서 쓰이는 진짜 런천 미트는 우리가 흔히 보는 그 런천미트로 한정되지 않고, 범위가 엄청 넓다. 서양의 런천미트는 콜드 컷(culd cut)이라고도 하며, 미리 조리되어 있으며 덥히지 않고(cold) 바로 얇게 썰어서(cut) 먹을 수 있는 고기류를 통칭한다. 흔히 샌드위치에 끼워 먹기도 하고 점심에 간단히 먹을 수 있기에 이름도 런천미트(luncheon meat) 혹은 런치 미트(lunch meat)로 불리는 것이다. 주로 소세지, 미트 로프를 뜻하지만 살라미, 볼로냐, 햄, 심지어 삶은 닭가슴살도 런천미트에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런천미트’는 캔햄 중에서도 저가형 프레스햄 캔을 가리키는 다소 좁은 의미로 굳어졌다. 프레스 햄의 동의어, 일반명사이기 때문에 특정 제품에서 독점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각 회사마다 런천미트라는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국내에서 우리가 구매할 수 있는 런천미트들은 대체적으로 돼지고기 40%에 닭고기 30%의 비율이 많다.

돼지고기만 써서 햄을 만들면 육질이 좀 더 단단해지고 꽉 찬 느낌이 더 강하다. 런천미트는 닭고기가 섞여있어서 육질이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과 맛이 나서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돼지고기 함량 때문에 가격도 큰 차이가 난다. CJ제일제당 스팸 클래식(340g)의 정가는 5880원. 런천미트는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000원대에 판매된다. 판촉 행사에 따라 할인율이 적용돼 가격이 변동되지만 통상 스팸이 1.5배~2배 이상 비싸다.

물론 런천미트 중에서도 돼지고기의 함량이 90%를 넘는 고가형 제품들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고가형 런천미트들의 이름에 다 팜, 팸, 챔 이런 식으로 미음자로 끝나는 자기만의 브랜드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리챔, 로스팜, 우리팜, 흑돈팜, 안심팜, 후레쉬햄” 등이다. 스팸은 먹어봤고 다른 제품도 먹어보고 싶다면 미음자 들어간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 가격은 스팸과 비슷하게 비싸다. 나머지는 저가형 런천미트라고 보면 된다. 동원, 롯대햄, 백설, 청정원, 한성, 하림, 사조 등 저가형 브랜드에는 런천미트가 회사이름 뒤에 들어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캔햄 시장 점유율은 2019년 기준 1위는 CJ제일제당 스팸 (56.7%) 2위는 동원F&B 리챔16.2% 3위는 롯데푸드 '로스팜' 6% 4위가 대상 청정원 '런천미트' 2.5% 등이다. 먹어본 경험으로 본다면 스팸은 어떻게 먹어도 짜지만 맛있어 후회하지 않는다. 리챔과 런천미트는 찌개보다는 구이용이 더 적합하다. 로스팜은 구이보다 찌개용이 더 어울린다. 가끔씩 스팸이나 런천미트를 먹어본다면 다양한 제품들을 한번씩 구입해서 맛의 차이를 구별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제품을 정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