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미나리》 (Minari, 2020)

최근 가장 뜨겁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를 고르라면 아마도 《미나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여러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고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대한 큰 관심은 없었다. 마침내 한국에서의 상영이 결정되고 영화관을 찾았을 때조차 영화 자체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뭐 적당히 좋은 독립영화 쯤 되겠지.’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든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이 영화,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영화는 처음부터 내면에 잠자고 있던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1세대 미국 이민가정의 고군분투기가 그렇게까지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데에는 10년 간 이방인으로 지냈던 독일에서의 유학생활도 분명 한 몫 했을 것이다. 두 아이를 데리고 절망의 땅을 떠나 희망의 나라로 건너온 젊은 부부의 직업이 병아리 감별사였다는 사실 역시 독일 목회 시절 만난 병아리 감별사 집사님 부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즉 소재의 성격 상 분명 옛 추억의 감상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느 감독의 말처럼 추억과 감상에 질척거리지 않는 단백함과 탁월함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이민자 가정은 너무나 아슬아슬하다. 아마도 도시에서 같은 한국교민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남자는 시골 중의 시골로 이사를 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 야곱(제이콥)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그 땅을 에덴동산이라 부르며 불가능해 보이는 성공에 도전한다. 하지만 선천성 심장병을 지니고 태어나 유사시 대도시의 긴급한 의료적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린 아들을 둔 여자에게 이 남자의 꿈은 허무맹랑하고 이기적으로만 보일 뿐이다. 임박한 토네이도에 언제 날아갈지 모를 이들의 집은 당장 깨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이 부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당시 가부장제의 왜곡된 가치관 역시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이 가부장제의 희생이 여성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보여준다. 태어나자마자 쓸모가 없어 분쇄되고 폐기되는 수컷 병아리들을 비유로 들면서 남자는 어린 아들에게 쓸모 있는 수컷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계속된 실패 속에서도 독단적인 남자는 자식들이 뭔가 이룩한 아버지를 봐야 하지 않겠냐고 역설한다. 그러니 ‘함께’라는 말이 절실한 여자와의 어긋남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점점 더 갈라지고 있는 이 아슬아슬한 가정 안으로 한국으로부터 미나리 씨앗을 든 외할머니가 들어온다. 고향으로부터 먼 이국땅의 가족을 찾아온 할머니는 과연 이 가정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영리하게도 영화는 당연하게 쌓여있을 수많은 사연과 감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음으로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게다가 영화는 교회와 신앙의 모티프들도 가득하다. 한인공동체와 한인교회에서 받은 상처로 교회를 등진 아버지와 어느 정도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지닌 채 아이의 기적적인 치료를 고대하며 여전히 교회공동체를 그리워하는 어머니, 마이너 기독교도이자 신비주의에 빠진 이 가족의 친구이자 일꾼인 폴 아저씨. 다양한 믿음과 신념이 사소한 삶을 넘나든다.

영화의 제목으로 삼은 미나리는 할머니의 설명처럼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고, 가난하든 부자든 누구나 뽑아먹을 수 있고, 아플 땐 약도 되는 훌륭한 존재다. 영화 내내, 아무리 계획하고 애써도 처참한 실패로 관철되는 인간의 삶 앞에, 아무 것도 안 해도 잘만 자라는 미나리가 마주 서 있다. 그 어떤 인간의 노력도 없이 스스로 잘 자라는 미나리를 보면 자연스레 주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아무 수고도 없이 잘 자라는 말없는 미물들이야말로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큰 소리로 선포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영화가 품고 있는 음악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맺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이 영화, 음악은 또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