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주님의 고난과 함께 마침내 절정에 다다랐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종려주일로부터 계속되는 일주일은 ‘성(聖) 주간’으로 불린다. 이 주간에 포함된 모든 날들은 그 앞에 거룩할 성(聖)자를 붙인다. 그리고 성금요일 오후부터 부활새벽에 이르기까지 3일 동안은 긴 어둠과 절망이 지속된다. 

  비록 고난주간은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종려주일의 문은 경쾌하다. 게다가 예수님을 등에 모신 주인공이 나귀라는 점에서 더 친밀감을 준다. 그날 뿐 아니어도 성경에 등장하는 나귀들은 한결같이 신실한 동행자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 결과 나귀는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다. 

  제물로 바칠 아들 이삭을 실은 아브라함의 나귀(창 22:3), 애굽으로 되돌아가던 모세의 가족을 태운 나귀(출 4:20), 주인의 잘못을 책망한 발람의 나귀(민 22:30), 전쟁 중 평화로운 임무를 수행한 오뎃의 나귀(대하 28:15)가 대표적이다. 강도만난 이웃을 태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짐승(눅 10:34)도 나귀임에 틀림없다. 렘브란트는 성 가족의 애굽 피난을 그릴 때마다 밤길의 안내자로 활약한 나귀의 빛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나귀는 단연 예수님을 등에 태운 ‘어린 나귀’(요 12:14)이다. 나귀 등에 타신 예수님은 모든 왕 중의 왕이며, 모든 종 가운데 종으로 오신 메시야였다. 볼 품 없는 나귀 새끼는 평소 겸손하고 온유하신 주님의 성품을 연상케 한다. 

  나귀 새끼를 탄 메시야의 모습을 그려 보자. 아마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높이 앉아 내려다보는 말과 달리 나귀에게서 위엄이 느껴질 리 없다. 다리가 짧았기에 나귀 등에 앉으면 서 있는 무리와 얼굴과 얼굴이 맞댈 정도였다. 나귀에 탄 사람이나 거리에 선 무리나 눈높이가 같은 상태로 군중 가운데를 비좁게 지나가신 개선행렬은 상상만 해도 초라하다.

  복음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의외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개 인간의 상식과 관행에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주님은 보잘 것 없는 나귀를 쓰시길 원하셨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선지자는 보잘 것 없는 나귀 등에 타신 메시야는 본래 겸비한 분이라고 비밀을 밝힌다. 

  그럼에도 나귀는 메시야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나귀는 말과 정반대 이미지다. 말은 전쟁을, 나귀는 평화를 대표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기러 가는 모습이 아니라, 지러 가는 모습이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교회의 일꾼들은 유유종종 나귀로 비유되었다. 복음을 위한 일꾼들은 모두 나귀의 임무를 맡은 셈이다. 비록 짐이 크고, 멍에가 무겁지만 기쁨과 은총을 약속받았다. 주님은 그들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사용하신다. 세계적인 봉사단체들이 나귀를 자신의 상징 동물로 삼는 배경이다. 

  나귀에게는 건장한 어깨 사이 가슴 부분에 독특한 검은 무늬가 있다. 사람들은 이 무늬를 예수님을 겸손하게 섬겼던 나귀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겼다. 나귀에게 부여된 명예로운 십자가 표식인 것이다. 

  초대교회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말하였다. “하나님의 가축에게서 그리스도를 태우는 기술을 배우라. 나가서 배우라. 그리스도에게 네 영혼의 등을 내민 사실을, 그리스도 밑에 있고 세상 위에 서는 것을 배우라.” 무엇보다 보잘 것 없는 나귀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종려주일은 그런 나귀들이 누비는 세상을 꿈꾸는 호산나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