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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듣는 신앙에세이1,2,3》 시리즈
유성준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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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3월 27일 (토) 21:32:04
최종편집 : 2021년 03월 27일 (토) 21:38:34 [조회수 :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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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와 함께 성서를 더 깊게 묵상하는 김윤환 시인의
 《시로 듣는 신앙에세이1,2,3》 시리즈


김윤환 엮음  열린출판사(각권 144p, 13,000원)

 

유성준 목사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 대표)


저자 김윤환 목사(시인) 

시인(문학박사) 출신 목회자의 시와 성경의 만남

   
 

이번에 《시로 듣는 신앙 에세이 시리즈》를 출간한 김윤환 목사(사랑의은강교회)는 문학과 출판사를 운영하다 마흔을 넘겨 만학도로 협성대 신대원에 입학한 후배 목사다. 그 당시 필자가 협성대 교수로 임용되어 교목실장 사역과 실천신학을 가르칠 때 제자로 만나 그 후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 창립과 세미나 사역에 함께 했던 동역자이다.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김목사는 시흥에서 지역과 소통하는 마을목회를 하며 백석대 대학원 기독교문학 전공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89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후 그동안 시집 《그릇에 대한 기억》,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이름의 풍장》등 다수를 상재하였고, 《한국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을 연구하여 《범정학술상》을 수상하고,2018년 시집《이름의 풍장》으로  제3회 《나혜석문학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윤환 시인은 지난 6년간 기독교신문에 제재된 시로 듣는 신앙 에세이 167편을 엄선하여 이번에 3권의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제1집 ‘교회절기를 따라가는 시와 신앙의 묵상집- 그에게로부터 온 편지’
교회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주일예배를 드린다, 이에 저자는 1년 52주 교회력과 주요 절기에 맞추어 신앙의 깊이를 더 해주는 주옥같은 60여편의 시와 신앙에세이를 풀어 썼다. 성경이 거대한 문학적 형식을 띄고 써진 영적 시집이자 구원의 경전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상상력과 상징의 이해를 통해 말씀 묵상과 신앙의 깊이를 더 하고자 정리된 것이다. 예배인도자자 성도들이 함께 생활 큐티로 활용하기에 매우 적절한 묵상집으로 보인다.

제2집 ‘성령의 열매를 따라가는 시와 신앙의 묵상집 – 천국의 기억’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지만 사실 성령의 세례를 통해 그 인격과 삶이 변화된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증명하게 된다. 그렇게 성령의 세례와 동행을 통해 맺게 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다. 성경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정의하며 신자들에게 9가지의 영적 인격적 열매를 삶속에서 드러내기를 가르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개인의 소원성취에 그치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자신과 이웃에게 나누는 것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성령의 열매를 따라가는 시와 신앙의 묵상집’을 통해 시와 성경 말씀을 함께 묵상함으로서 성령 충만한 신자가 되어 땅에서 천국을 맛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3집 ‘시인의 영성을 따라가는 시와 신앙의 묵상집- 땅에다 쓴 시’ 
성경이 거대한 문학적 형식을 띄고 써진 영적 시집이자 구원의 경전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상상력과 상징의 이해를 통해 말씀 묵상과 신앙의 깊이를 더 하고자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 28인의 깊이 있는 시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인간과 종교에 대한 탐구의 기회를 가짐으로 기독교적 영성 다시금 묵상할 수 있다.
이 책은 다른 시와 에세이집과 마찬가지로 예배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생활 큐티로 활용에 좋을 것이다.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 시를 읽고 함께 사유한다면 그 깊이는 더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기독교 강단의 설교에 대한 반성이 많은 때에 문학과 신학의 만남과 시와 신앙의 융화를 통해 성경을 좀 더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격적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귀한 에세이집이 나와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신앙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한 성찰을 제공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번 에세이집의 인세수입은 전액 아동복지기금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현재 이 시리즈 묵상집은 교보문고인터넷서점과 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문의 각권13,000원, 02-2275-3892)

(본문 속 시와 에세이는 다음page를 참조하세요)

 

 

■ 본문 일부 
▷ 시로 듣는 신앙에세이 시리즈1 
교회절기를 따라 묵상하는 시와 신앙에세이 『그에게로부터 온 편지』

여는 시
사랑, 그 광합성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의 미소를 부릅니다

조각가의 손처럼 
당신의 얼굴에 
내 마음을 댑니다

이 세상 
제 얼굴 닦는 일보다 
다른 이 얼굴 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거룩한지

어색한 나의 프러포즈는 
당신의 눈감은 미소로 
눈 녹듯 마음을 녹입니다 

놓칠 뻔한 사랑에게 
손 내민 하루
감사가 꽃잎처럼 
기쁨이 햇살처럼 
세상을 밝힙니다.


□ 신년주일 
새 아침의 기도


오늘은 모든 약속의 근원이 되시는 
당신 앞에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가지런히 내려 놓습니다.
시간이라는 귀한 은총을 
허락하신 당신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첫 날이 곧 마지막 날의 거울임을 알게 하시고 
마지막 날의 울음이 첫날의 울음보다 
더욱 맑고 분명하게 하소서.

우리의 생명이 세상보다 귀한 것은
우리가 그냥 버려질 수 없는 
당신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같은 욕망보다 
낮아짐으로 바다로 가는 저 물처럼
우리의 소망도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시고
우리의 사랑도 당신처럼 마르지 않게 하소서.

향기로운 생명으로 살아 
아름다운 한 해를 이루게 하소서.

Faith Essay_ 새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라는 빌 게이츠의 말대로 ‘속도’는 사람들의 삶을 움직이는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지만 결코 빠른 것만이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의 룰을 벗어나면 가장 빨리 달리는 선수일지라도 그는 경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오히려 빠른 것이 해(害)가 되는 것이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시작을 잘 하는 것은 목적을 잘 정하는 것을 말한다. 삶의 계획을 세울 때 우선되어야 할 가치관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정하는 ‘방향’이다. 우리는 삶속에 어떠한 목적과 방향을 세울지라도 주 안에서 부름 받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주님 안에서 향기로운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7;22-24)


□ 성탄절후 1주일
여행주의보

겨울에는 여행을 가야지 하고는
가방을 펼치고 장롱문을 열자 
장롱 안에는 
아래로부터 어두워지는
골짜기들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입국심사대를 지나는 
망명자처럼 
계곡과 계곡 사이
두려움이 긴 빙폭(氷瀑)을 이루고
맨 밑바닥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떠난다는 것은
검색대를 통과하는 일
설레임 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일
싸던 가방을 내려놓고
장롱을 뒤지고 
또 뒤진다

Faith Essay _ 새해는 새로운 시간을 향한 여행이다. 더러 설레임으로 첫 발을 내딛지만 두려움 또한 함께 동반한다. 우리 인생의 여행도 어느 시점엔가 종착지를 만나게 된다. 마치 이국(異國)에 들어가듯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입국심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짊어지고 온 인생의 짐들을 검수(檢受)받게 될 것이다. 여행을 출발할 때 미리 우리는 도착지의 기준에 맞는 짐들만 챙겨야 하는 것처럼 새해에는 지난해 보다 개인적인 짐을 좀 줄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챙기며 간섭하며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 나라 검색대를 통과할 만한 그것이 소중하다. 믿음의 여권(旅券), 성령이 주신 언어들, 그리고 사랑의 표정만이 우리의 여정에 긴요(緊要)하다. 새해 준비는 무엇을 많이 챙기는 것에서 비우는 것으로, 또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부터 살피는 깊고도 꼼꼼한 안주머니가 필요한 것. 새해의 꿈이 큰 가방이 쌀 짐이 아니라, 소박한 마음 주머니로부터 이루어지길 기도해 본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4:22∼23)


□  주현절 주일
허리띠   

마지막 구멍
넓어지고 찢어져
새로 송곳을 찌를 만도 한데
고집스레 호홉을 들이킨다

몸통을 잃은 후에야
나이를 확인하는 고목처럼
잃어버린 자신만큼
허리에 둘러진 나이테
졸라맬수록 
숨이 차다

가슴에 품었던 
송곳,
햇살에 빛난다.

Faith Essay_ 생활에도 송곳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욕망으로 분주했던 시간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꿈과 환상의 노예가 되어 내면에 가득한 독기(毒氣)마저 억누르며 사는 사람들, 삶의 목적지와 신앙의 경지가 어찌 다르랴. 가장 위험한 것은 영적 무호홉증이다. 더러 하나님은 숨찬 인생들에게 영적인 송곳을 들이대신다. 그 팽창한 욕구에 숨구멍을 내주기 위해서다.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이 그 송곳으로 오셨는지 모른다. 생활의 지친 자신에게 아프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 그 송곳으로 숨구멍을 내자. 그리고 주님이 허락한 작은 것들의 기쁨으로 숨구멍을 내자. 날마다 채우기보다 비움의 넉넉함을 누려보자. 주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마4:18~20) 물론 주님이 말씀하신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은 물질이나 외식이 아니라 인격과 영혼의 결실이리라. 아멘!

▷ 시로 듣는 신앙에세이 시리즈2 
성령의 열매를 따라 묵상하는 시와 에세이 『천국의 기억』

□ 여는 시

느보산에 핀 지팡이 꽃

예배당 계단에 앉은 늙은 모세가 묻는다 
여기서 강 너머 그 평야가 보이는가  
이곳에 저 강을 건널 지팡이는 있는가
흠칫 놀라 돌아보니 이곳은 
눈물로 무덤을 이룬 그의 느보산

돌아보면 돌판을 깬 일이나
혈기로 바위를 친 일 따위가
강 하나 건너지 못할 흠인가 싶다가도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지팡이를 잡는다

성산아래 강을 건너지 못한 
남루한 지팡이 하나
그 마른 가지로 물길이라도 재려했으나 
그저 내려오지 못할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 있네

40년의 고단한 탈옥도 
남루한 제의(祭儀)로 남았고
지팡이로 지켜 온 사람들도
다 흙이었거니 했지만
단단한 자갈로 따로 앉은 유령들
볼수록 낯선 유령, 유령들이었네

그의 지팡이에는
세상에 없는 꽃이 피고
그 꽃에 묻은 외로움은
느보산 바위 밑에
수맥처럼 오늘도 흐르네

느보산 보다 높은 3층 예배당에서
저기 흐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네
그가 피우다만 꽃들을 다시 피우며
나도 마른 꽃처럼 
우두커니 앉아 보았네


□ 제1부 사랑 편

고향에서 올라 온 택배 상자
파김치 뚜껑에 칭칭 감긴

40년 된 성경책
시편詩篇에 드리워진 붉은

어머니 이마에 
강물처럼 흐르는 그 짙은 끈

 Faith Essay _ 사람에게는 누구나 끈이 있다. 인맥의 끈, 지식의 끈, 집착의 끈 등이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믿고 찾기도 하며, 의지하기도 한다. 그것에 더하여 우리는 ‘신앙의 끈’이라는 자연인이 갖지 못하는 매우 특별하고도 분명한 끈이 있다. 신앙이라는 끈은 신비하게도 안일(安逸)할 때는 잘 보이지 않다가, 고난가운데 문득 나타난다. 원망 가운데 있을 때에는 사라졌다가 용서 가운데 나타난다. 
육안이 아닌 영안으로만 잡히는 것이 신앙의 끈이다. 마치 고향에서 올라온 어머니 사랑이 담긴 택배상자에 칭칭 감긴 끈처럼 벌판같은 우리의 생애를 칭칭 감아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끈은 말씀이라는 동아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늘도 우리는 말씀의 끈을 기도로 잡고 하나님을 느껴야한다. 나를 절망과 죽음이라는 무저갱(無底坑)의 나락에서 건지기 위해 이 땅에 붉은 끈으로 오신 예수님을 잡아야 한다.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그의 사랑의 끈이 가장 필요하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마라나타! 예수여, 어서 오소서! 


구름꽃집 

오십이 넘은 어느 날
아내와 낯선 꽃집에 갔다
꽃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놓인 안개꽃만 
고르기 시작했다

장미나 백합화, 후리지아 
수선화를 만나기도 전에
그녀의 가슴에는 이미
안개가 번지기 시작했다

안개 낀 아침풍경의 그녀가 
내게 말했다 
이제 이 꽃을 포장해 주세요
나는 부풀어 올라 그녀를 감쌌다

오십이 넘어 나는
꽃집 아저씨가 되어
비로소 안개꽃을 구름으로 
포장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꽃집에서는 
박무(薄霧)와 백운(白雲)이 
동색(同色)인 것을 알기 시작했다.

Faith Essay _ 천국의 모형은 가정에서 출발되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그 이름을 아담이라 하고 그의 갈비를 취해 그의 배필을 만들어 주시고 그와 함께 가정이 창조된 것이다 교회보다 먼저 창조된 가정, 교회보다 먼저 창조된 사람, 교회보다 먼저 창조된 자연, 이렇게 창조의 순위를 역추적하다 보면 문득 우리는 신앙이 지나치게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형식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내와 꽃집에 갔을 때 오십이 넘은 아내가 이렇게 꽃을 좋아하고 마치 꽃과 일체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몹시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무심하게 가족을 대하고, 가장 편안하다고 가장 함부로 대했던 시간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안개꽃을 한 아름 받아든 아내의 미소에서 그동안 마음의 가득한 안개가 걷히는 듯 했다. 사랑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오늘 내 곁에 있는 가족을 향해 사랑의 꽃이 되길 희망한다. 잠시라도 그에게 하얀 꽃다발이 되어 그의 행복한 미소가 되어 다가가길 다시 기도해본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고전13:12-13)


융능(隆陵)에서

뒤주에 갇힌 지아비를 바라보는 혜경궁 홍씨의 눈물을 보았네 정조가 나란히 눕힌 부모의 봉분 위로 얼룩진 편지로 남은 것을 보았네 막 출산한 여인의 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융능과 건능 사이 아비의 멍든 손톱을 닦는 아들의 손길이 국화로 피는 것을 보았네 힘이 넘쳐 힘을 쓸 수 없었던 왕가의 무덤이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산책로가 되는 것을 보았네 

무덤 이름에 
융(隆)을 깔수록
죽음이 선명하게 보였네

Faith Essay _ 왕족의 묘를 능(陵)이라 부른다. 화성 안녕리에 자리한 융능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봉분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합장된 무덤을 일컫는다. 문득 무덤의 이름을 생각하게 된다. 참혹한 죽음 후 흙더미에 씌워진 이름, 높여 칭송하자고 ‘융능’이라 붙였으리라. 부모의 곁에 봉분(封墳)이 마련된 정조 부부의 무덤 ‘건릉’(健陵)이나 죽음을 기억하는 자들이 붙여 준 이름이다. 그런데 아무리 무덤에 융(隆)을 깔아도 허망한 인생을 어찌하랴, 그 효심은 가상하지만 무덤 앞에 좀 더 겸손한 이름을 붙였으면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더러 생명보다 신념을 더 소중히 여긴다. 이념이라는 잣대로, 혹은 종교라는 굴레로 함부로 평화를 저울질하고 생명을 경홀히 여기는 세태를 돌아보며 죽음 후에 곱게 단장한 무덤이 무슨 소용인가?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이 땅에 소풍와서 단 하루라도 하늘의 삶을 사는 복된 소망을 가져 보는 일, 무덤의 이름보다 자기 생명의 ‘이름’이 하늘에 닿도록, 오늘도 좀 덜 치열하고 좀 덜 바빴으면 기도하고 기도해본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


▷시로 듣는 신앙에세이 시리즈3 
 한국 시인의 영성을 따라 묵상하는 시와 에세이 『땅에다 쓴 시』

제1부 믿음 편
갈릴리 바다의 물빛을
박목월

갈릴리 바다의 물빛을
나는 본 일이 없지만
어머니 눈동자에
넘치는 바다.
땅에 글씨를 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는 본 일이 없지만
믿음으로써
하얗게 마르신 어머니.
원광(圓光)은
천사가 쓰는 것이지만
어머니 뒷모습에
서리는 광채.
아들의 눈에만 선연하게 보이는.

Faith Essay_ 박목월 시편들 중에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과 섭리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머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한국 선교초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갈릴리 바다를 보고, 어머니 뒷모습에서 광채를 보는 서정적 자아에게 어머니는 창조주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대속자이자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메타포로서 표현하고 있다. 신앙의 중보자인 어머니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믿음이 일체화되어 가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남들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천사가 쓰는 원광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신앙적 동일성이 철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 눈동자에 넘치는 갈릴리 바다를 본다는 것은 절대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을 자기의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2세들에게 어떻게 비추어 지고 있을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문득 사도 바울의 외침이 크게 들린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진범(眞犯)
구 상

날로 범죄는 늘고
흉악해 가는데
진범엔 손을 못 댄다

여기 시체가 있다
여기 흉기가 있다
여기 목격자가 있다
그리고 온 몸을 떨며 범행을 시인하는
자백이 있다

그러나 저들을 조롱하는 진범은
따로 있다
그 앞에선 모두가 무릎을 꿇고
판사(判事)랑은 쪽도 못 쓴다

저 춤추는 황금 송아지

그 번쩍대는 몸뚱아리에
새 십계판을 던질 
의인은 없는가


 Faith Essay_ 시인 구상은 해방직후 등단한 이래 줄곧 기독교세계관을 바탕으로 60년 시를 써왔다. 때로는 그의 시는 신앙인의 정서를 헤아리기도 하다가 세속적으로 타락하는 모습에 비판을 가하는 철저한 기독교 영성을 추구하는 시인이었다. 작품 「진범(眞犯)」은 현대사회의 죄와 악을 고발하며 그 원흉은 다름 아닌 맘몬에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법관도, 심지어 종교인까지 황금송아지(물질)앞에 무릎을 꿇는 공범의 모습이 있다. 이 작품을 썼을 당시와 지금은 반 백 년이 훨씬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약한 자들의 범행은 고발하면서 강한 자들은 돈의 권력 아래 숨어 있다. 최근 기독교 일부가 정치에 매몰되고 매관매직의 부정이 밝혀져도 맘몬의 힘으로 진범을 가리는 모순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 기복(祈福)이 나쁘다고 할 수 없으나 그 기복이 어디를 향하는 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오직 자신의 부요, 출세, 명예, 권력을 위한 기도의 행위라면 그것은 곧 황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우리의 신앙 안에 침투한 가짜 신(神), 가짜 신념(信念)의 우상 앞에 모세의 심정으로 돌판을 던져야 할 때는 아닌가 돌아보게 되는 시편이다. 일찍이 성경은 인간의 물신숭배를 경고한 바 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간 사이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32:4) 이어 모세가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출32:10~11)는 진정한 의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돌아보게 되는 시다.


꽃이 피는 너에게
김수복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은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Faith Essay_  ‘꽃으로 피는 나무 밑에는 가장 슬픈 눈동자가 있다’는 시인의 상상력은 죽음으로 상징되는 절망과 희생과 상처의 내적 자양분을 통해 사랑의 대상을 꽃으로 피워내고 있는 시다. 잘 자란 무성한 나무 밑에는 근원적인 슬픔과 희생이라는 사랑의 시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케 해주는 이 시의 힘은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래는 아름다운 슬픔을 지니게 된다. 시인은 화려한 생애에 가려진 소멸에 대한 헌사(獻詞)를 통해 숭고한 사랑의 내면과 외적 표현이 마치 저녁노을에 비친 꽃처럼 아름답게 피워내고 있다. 슬픔이 묻어 있지 않는 사랑은 덜 익은 사랑일지 모른다. 깊이 배인 그리움이 있어야 사랑이 사랑으로서 향기가 나는 법이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로 읽히기도 한다. 우리의 신앙도 사랑의 예수를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 감히 세상에 사랑을 노래할 수 있으랴. 주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땅에다 쓴 시 
최문자

나는 
땅바닥에 대고 시를 썼다 
돌짝도 흙덩이도 부서진 사금파리고 
그대로 찍혀 나오는 
울퉁불퉁했던 삶 
삐뚤삐뚤 한글 자모가 나가고 
미어진 종이 위에서 
연필은 몇 자 못 쓰고 부러졌다 
지금지금 흙부스러기가 씹혔다 
숨기고 있던 내 부스러기들이 씹혔다 

더 이상 세상에 매달리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땅바닥에 와 있었다. 
죽은 꽃잎에 대고 
죽은 사과알에 대고 
작은 새의 죽은 눈언저리에 대고 
꾹꾹 눌러썼다 
에스겔서의 골짜기 마른 뼈처럼 
우두둑 우두둑 
무릎 관절 맞추며 붙이며 
죽은 것들이 일어섰다

나는 흙바닥에 대고 시를 쓴다. 
죽음도 사랑도 절망도 솟구치며 찍혀 나오는 
미어지는 종이 위에 꾹꾹 놀러 쓴다
몇 자 못 쓰고 부러지는 연필 끝에 
침 대신 두근거리는 피를 바른다
시에서 늘 피린내가 풍겼다


Faith Essay_ 인간은 흙의 존재다.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고 산다. 그러한 인간에게 허락된 땅위에 예수는 사랑과 용서를 써주셨다. 시인이 땅에다 쓴 시는 굵거나 가늘거나 크거나 작거나 삶의 조약돌이나 모래사이 예수가 쓰신 생명의 노래를 다시 노래하고 있다. 세상의 터전위에 꾹꾹 눌러쓴 우리의 시는 어쩌면 침 대신 피가 묻어있을지 모른다는 자기반성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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