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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중요하다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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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3월 24일 (수) 23:31:49
최종편집 : 2021년 05월 26일 (수) 21:51:37 [조회수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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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장에서 한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고,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한 율법사가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왜 그들이 알고자 했던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마 22:38) 외에 둘째까지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누가복음 10장에 가면 영생의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답한 후 그가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묻자 30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그 유명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이웃이 누구인가를 설명하셨다. 

이렇게 이웃 사랑을 길게 언급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보다 이웃 사랑에 더 역점을 두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을까?

예수님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산상보훈에서 하나님 사랑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이웃 사랑만을 말씀하셨다. 특히 마태복음 5장 43-48절과 병행구인 누가복음 6장 27-36절에서는 이웃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23-24)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물을 제단에 드린다는 것은 예배, 즉 하나님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형제와의 화목은 이웃 사랑이다. 상식적으로 하나님 사랑이 우선인데, 여기서 예수님은 이웃 사랑을 우선시키셨다. 왜 그랬을까?

마태복음 25장 32-46절에서 예수님은 이보다 더 분명하게 이웃 사랑을 하나님 사랑에 우선시키셨다. 그 비유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이웃 사랑이 바로 하나님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심판의 날에 임금이 모든 민족을 두 부류로 나누고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한다. 그들은 임금이 주리고 목마를 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고 임금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돌보았기 때문이란다. 

천국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런 일을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임금은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에 들어가라고 명한다. 그들은 임금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물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임금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었는데 이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한다. 그러자 임금은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의외의 말씀이다.

이 비유 이야기는 과장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이웃만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과장법을 즐겨 사용하셨다. 예를 들면,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라는 말씀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법이다. 이 임금의 이야기도 이웃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법적 표현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과장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을까?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전통을 무시하고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전통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0-13)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의미하는 ‘고르반’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데에, 즉 하나님 사랑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부모에게는 드리지 않았다. 그들의 하나님 사랑은 가상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사랑에 몰두한 나머지 인간 사랑을 무시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하나님과 인간을 구분하고 하늘, 남자, 하나님을 중시하는 한편, 땅, 여자, 인간은 멸시해왔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인간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로 다루었다. 

이렇게 인간을 외면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인간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뿐 아니라 인간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에 얽매인 당대의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일이었다. 20세기에 와서 해체주의가 대두했는데,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기존 사고체계를 해체하셨다. 그러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행 24:5)라고 불렀다.

요한1서의 기록자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4:20-21)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셨을 때 예수님은 명령을 받는 사람에게 그 명령을 이행할 능력이 있다고 보신 것이 분명하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은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인간의 능력을 인정하시면서 인간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을 폄하하는 우리는 인간을 외면한 유대인들과 유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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