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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참 간사하다. 이전에 좋아했던 음식맛이 시간이 지나면 별로인 경우가 있다. 그렇게 입맛이 변하는 이유는 왕성히 분비되던 각종 호르몬이 노화에 따라 사그라지면서 여러 감각이 둔해지는데 미각도 마찬가지로 둔해지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짜장면이 그렇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맛이 있었던 짜장면이 이제는 그저 그렇다. 정말 맛있는, 아니 내 입맛에 맞는 짜장면을 먹어 본지 오래되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집은 너무 달고, 어떤 집은 너무 짜다. 오히려 집에서 라면처럼 끓여먹는 짜장 라면이 더 맛있는 경우가 많다.
1970-80년대 학생들의 최고 외식메뉴는 짜장면이었다. 먹기 전부터 풍기는 고소한 고기냄새는 먹성 좋던 젊은 10대들에게는 환희이자 고문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짜장면의 그 고기냄새 가득한 라드(돼지기름을 정제한 기름)향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돼지에 항생제가 많이 사용되면서 돼지비계에서 나는 고소함의 자리를 역겨움이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게 됐다. 현재 짜장면의 대중성은 여전하지만 1970년대 짜장면의 코와 혀와 목에서 풍겨 나오는 깊고 진한 향은 날아가 버렸다. 돼지기름은 이제 거의 식물성 식용유로 대체됐다. 식용유가 라드보다 7-8배 저렴하기 때문이다. 얌전하고 순한 식물성 기름으로는 거칠고 강한 동물성 기름이 내는 진한 맛을 낼 수 없다. 맛 이전에 향으로 맛을 구분하는 인간에게 향이 사라지자 맛도 사라진 것은 당연하다.
짜장면은 중국말로 자장몐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한국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자장몐, 차오장멘, 자지아미엔, 자장미엔 등 여러 표기가 통일되지 못한 채 쓰이고 있다. 자장몐은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기름에 볶은 장을 얹은 면’이 된다.
자장몐은 베이징과 산둥 옌타이의 음식이다. 특히 베이징의 자장몐은 서민들이 여름에 즐겨 먹는 면요리이다. 베이징의 자장몐과 산둥의 자장몐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면에 얹는 면장에서 갈린다. 베이징의 면장은 주로 황장(黃醬)을 이용한다. 콩을 발효시킨 것으로 우리의 된장과 비슷한 맛을 내지만 색이 더 검고, 맛은 짜고 고소하다. 반면에 산둥의 면장은 첨면장(甜面酱)이다. 줄여서 첨장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요리에서 단맛을 내는데 많이 사용되는, 밀가루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짜지 않은 검은색 장이다. 베이징 오리구이요리를 찍어 먹는 장이 바로 이 단맛을 내는 첨면장이다.
사실 장은 짜장면의 본질이다. 검은 색 짜장이 없다면 짜장면이 아니다. 중국식 자장몐은 황장을 사용하는 베이징식, 첨면장을 사용하는 산둥 푸잔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두 가지 장을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황장, 첨면장 같은 중국식 면장이 아닌 한국식 춘장을 사용한다. 중국에는 춘장이라는 장이 없다. 짜장면이 중국을 기원으로 하면서도 한국식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춘장에 있다.
1960년대에는 짜장, 면장, 춘장이라는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됐지만 1967년 식품위생법이 발효되면서 춘장으로 처음 문서화되었다. 현재 80%이상의 중국집 짜장으로 사용되는 춘장은 ‘사자표 춘장’이다. 1948년 화교 왕송산 씨가 첨몐장에 캐러멜과 밀가루를 혼합한 것을 "사자표 춘장"으로 브랜드화한 것이 그 시작이다. 춘장의 질보다는 춘장을 이용한 요리솜씨와 재료의 사용이 짜장면 수준의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주방장의 손맛만큼, 주인의 양심만큼 짜장의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국식 자장면의 종류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간짜장, 일반짜장, 유니짜장이다. 간짜장은 면에 짜장을 붓고 비빈다. 일반짜장은 걸쭉한 죽처럼 비벼진다. 간짜장은 황장을 얹은 중국의 자장몐처럼 면에 붙지 않고 면을 살짝 감싼 듯 짜장이 비벼진 면과 야채가 상호 독립적이면서도 보완적이다. 수분이 적은 짜장 덕에 면발의 탄력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야채로 낸 단맛도 캐러멜 소스 및 조미료와 설탕, 물엿으로 간을 해서 내는 일반짜장의 단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야채나 돼지고기를 넣고 면장을 볶아 면 위에 짜장을 올리는 중국식 자장몐에 가깝다. 간짜장은 마른 짜장, 즉 물기가 없는 짜장면을 뜻한다. 중국에 짜장면의 원형이 있지만 짜장면이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과 마찬가지로, 간짜장이란 말과 요리법도 중국식 요리법이 한국식으로 변한 경우다.
일반짜장은 간짜장과 비교할 때 면발이 훨씬 부드럽다. 동일한 면을 사용하고 주문과 동시에 만든 면에 음식을 테이블에 내오기 직전 짜장 소스를 얹은 것뿐이다. 부드러워진 면발의 직접적 원인은 짜장소스에 들어있는 전분이다. 전분이 들어가면 맛이 눅눅해지고 식감이 진해지며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짜장면뿐 아니라 한국식 중국요리에는 전분이 많이 들어간다. 전분에 물을 풀어 걸쭉하게 만든 후 넣는 기술은 한국식 중국요리의 모태인 중국 산둥요리의 핵심 조리기법으로, ‘거우치엔’이라 부른다. 이 기법은 요리가 천천히 식게 하는 역할을 하고, 또 요리가 다 식었을 때에도 재료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그 수분이 재료의 맛과 섞여 요리의 맛이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요리를 먹는 중국인에게 요리의 맛을 지속시키는 거우치엔 조리법은 매력적이다. 그 기술은 또한 배달용으로 중국요리를 많이 먹는 한국문화에도 적합한 기술이다.
유니짜장은 돼지고기는 물론, 면을 제외한 감자, 양파 같은 모든 재료를 잘게 다져 넣어 짜장과 섞은 뒤 면에 부어 먹는 요리다. 돼지고기는 물론, 면을 제외한 감자, 양파 같은 모든 재료를 잘게 다져 넣어 짜장과 섞은 뒤 면에 부어 먹는 요리다.
자장면이 느끼해질 무렵 양파를 한 입 베어물면 입안이 상쾌해진다. 단무지를 먹으면 달달한 맛과 신맛이 개운하게 입맛을 정리해주고 새로운 미감을 선보인다. 한국의 중국식당에서는 짜장면과 짬뽕은 물론 양파와 단무지도 빠지지 않는다. 흔치는 않지만 김치나 깍두기를 내놓는 집도 더러 있다. 중국인들이 요리에 즐겨 넣어 먹는 양파, 일본의 대중음식에 빠지지 않는 다꾸앙(단무지),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 꼭 올라가는 김치까지 한국의 중국식당은 한, 중, 일 삼국의 역사가 남긴 음식의 변종 결합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국물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는 한국인들이기에 국물 없는 면요리는 한국에서 마이너에 속하거나 외래의 음식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국물 없는 면인 짜장면은 우리에게 독특한 음식체계이다. 그러나 전국 2만 4천 개의 중국음식점에서 하루 평균 600만 그릇씩 팔려나간다는 짜장면은 우리의 국물 없는 대중식이다. 중국의 첨면장이나 황장을 얹은 자장몐이 국물 없는 밥이라면, 단맛이 나면서 걸쭉하며 비비기 좋고 먹기에 편한 한국의 짜장면은 국밥에 해당한다. 새롭게 형성된 음식문화체계인 한국의 자장면은 국물 같은 걸쭉함을 얻고 중국의 자장몐과는 다른 대한민국의 면이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