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책
눈을 감고 보는 길
최태관  |  교수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03월 12일 (금) 00:01:02
최종편집 : 2021년 03월 12일 (금) 00:07:41 [조회수 : 306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눈을 감고 보는 길

<정채봉 에세이>, 정채봉 지음, 출판사 샘터

누구에게나 인생의 근원이 되는 샘이 있다. 정채봉작가의 샘은 바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힘이 들거나 고통스러울 때에 찾아가 볼 때가 있는지 생각했다. 그간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왔는지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저자가 말한 바다를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의 태 안에 있던 근원적 공간까지 이어지는 바다.’

아파트와 도로가 생기면서 사라져버린 동산이 생각이 났다. 그 동산은 형과 친구들과 함께 삼팔선을 긋고 전쟁놀이하던 집 가까이에 있는 산이다. 언젠가 겨울 그곳에서 놀다가 삐라를 주워서 집에 오던 기억이 났다. 기억은 그렇게 우리를 치유하나 보다.

정채봉 작가의 책은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몇 주 전부터 20주기 기념 책이 나왔다며 아내가 말했다. 궁금함에 물어보니 ‘정채봉 작가’란다. 그의 책을 한번 볼까 하고 책장에 서니 아내도 최근에 읽었는지 바로 눈앞에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그 책이 ‘눈을 감고 보는 길’이다. 그래서 작가의 말대로 눈을 감아보았다. 눈앞에 척박한 모니터가 있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 길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저자가 보여주는 길은 상처가 있으나 그 상처가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힘이다. 삶의 의미는 작가의 말처럼 껍질을 벗겨도 계속 이어지는 조그마한 양파의 모습에서도 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투병 과정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프지만, 상처가 있지만 살아있다는 것이다. 상처라는 게 만지면 만질수록 낫지 않고 더 아프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너무 고통스러울지라도 상처가 그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안식처라는 사실을...’ 작가에게 간암 진단과 입원 수술로 이어지는 시간이 삶이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눈을 감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길임을 느끼게 한다.

나의 길은 아직 보이지 않고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그 고통이 가늠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조금 희망이 생겼다. 비록 상처는 생기더라도 눈을 감고 앞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 책을 보니 그 책 제목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우리 신앙인들은 눈을 감고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께 길을 묻고 그 길을 가기 위해 몸부림치며 삶의 현장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의 에세이를 대하며 페이지마다 가득 차 있는 삶의 세계가 참으로 경이롭다.

작가가 오래전 영화이지만 그 감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영화내용을 써 내려간 부분 <아름다운 인생이여 p47>에서는 영화가 생각나 나도 그처럼 인생은 아름다워 OST– Barcarolle(호프만의 뱃노래, La Vita E Bella)를 찾아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상상력이 창조한 희망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삶의 의지를 꺾고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는 탱크가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되었듯이, 우리에게 인생은 다양한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이 된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보여주는 시인의 재치는 희망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회용 컵과 같이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상처와 함께 다시 회복되는 새 살과 같은 것임을 느끼게 한다.

또한 마음 깊은 곳에 갖고 살아야 하는 소중한 기억과 같이 상처에서 희망을 보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다시 내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내 삶의 끝자락에서 이 시선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이해를 과거와 현재의 것의 ‘지평융합’이라고 했다. 지평융합에서 인간은 타자와 관계된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과거는 기억이 되어 오늘의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경험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소중한 순간이 된다. 작가는 자기 삶의 변화를 그렇게 말한다. “나도 이제야 알았다. 시시각각으로 시간은 흐르지만 늙음은 한 달 치씩 그때그때 표시 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은 삭정이에 눈이 쌓이듯 모아둔 채 있다가 어느 순간에 폭삭 한꺼번에 나이 든 표시가 난다는 것을”(58) 그 만큼 삶의 상처는 곧 새로운 성숙한 자아를 만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작가는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을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처음의 마음을 찾아가는 것(83)이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많은 숨겨져 있는 것들이 맞이해줄 것 같은 희망(84)이 아닐까? 작가가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꿈 꿀 수 있는 희망의 세계이다. 정호승의 〈눈부처〉, 이사미 이쿠요의 〈알을 품은 여우〉, 우리의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구리 료헤이 〈우동 한 그릇〉, 오규원 시인의 〈그다음 오늘이 할 일은〉,  <남편에게 보내는 한 아내의 편지〉의 글은 지금껏 우리가 잊고 있었던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리킨다.

야금야금 희망을 갈아먹는 현실의 유혹들에 대항하는 힘은 곧 우리 자신을 회복하는 길에 있음을 작가는 말한다. “지엽적인 존재가 아니라 원천적인 존재를, 닳아지는 삶이 아니라, 닦아가는 삶을...,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적인 삶이 아니라 본질적이며 심성적인 느낌으로 현실의 탁류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할 이는 우리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145)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한 교수에 대한 기억이 눈길을 끌었다. 박**는 철학교수였던 친구가 고향바다로 되돌아가서 평범한 어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 그는 바다로 갔을까? 작가는 바다가 주는 고향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다에서 그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0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있다. ‘주님, 아직도 태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바다를 내게 허락하소서. 짙푸른 순수가 얼굴인 바다의 단순성을 본받게 하시고 파도 노래 밖에는 들어 있는 것이 없는 바다의 가슴을 닮게 하소서. 홍수가 들어도 넘치지 않는 겸손과 가뭄이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알게 하시고 항시 움직임으로 썩지 않는 생명 또한 배우게 하소서.’(30) 간암이라는 사실을 목도하고 그가 하는 기도는 삶 속에서 깨달아 가야하는 삶의 여정을 노래하고 있으니 사뭇 병마와 싸워가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기도와 같은 느낌이다. 영생을 노래하고 죽음마저 내포한 그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었겠구나! 생각한다. 상처가 희망이 되어 삶의 꽃을 피우는 모습이다. 희망이 곧 삶인 이유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꽃피울 수 있는 길로 안내한다. 그는 희망 없는 현대의 불행의 원인을 ‘감탄사를 잃어버린 데’에 있다고 한다. 희망이 사라지고 현실만 남아있는 일상의 공간이다. 우리가 감탄사를 회복하는 곳에 곧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일상에 사라진 아이들, 씨랜드 참사에서 희생된 아이들, 성수대교에서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아픔에 자신의 내적 고통과 어우러진다. 어쩌면 눈을 감으면 볼 수 있는 그 길에서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2014년 4월 16일 그날이 문뜩 떠오른다.
“오늘 이 땅의 어른들은 울어야 한다. 때 묻은 아이들이 운다고 그 눈물을 선하게 받아 줄 신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돌맹이 가슴이 아닌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눈물이 있는 나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울어야 한다.”

눈을 감으면 그 길에서 보이는 그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작가는 지금껏 상처, 희망의 길을 보면서 인간이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길을 동심의 길이라고 부른다.(155)

“고향에는 마법의 신비가 있다. 이상한 편안함이 있다. 그렇다 일급호텔의 안락함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어떤 권력의 의자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감비로움과 같은 것! 이것이 돌담이 무너져 있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며 두엄 냄새가 흐르는 우리의 초라한 고향에 있는 신비인 것이다” 눈을 감으면 우리의 기억이 안내해가며 보이는 그 길이 동심의 길이요 고향의 길일 것이다. 그래서 정채봉 작가의 수필은 삶의 고즈넉함과 삶의 향수를 담아 낼 수 있어 좋다. 때로는 상처로 가득하고 절망으로 가득한 우리의 현실에서 동심을 회복하고 조금씩 자신을 발견해 가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께서 나라는 사람한테 맡겨주신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곧 나라는 사람은 내 몸의 청지기인 거예요. 청지기는 마땅히 주인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여 맡겨주신 것을 주인의 마음에 들게 써야지 자기가 마치 주인인양 함부로 오만하게 굴다가는 쫓겨나기 마련입니다.(이한택 신부님의 강론 중에서)(191).”

최태관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7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