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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실려온 선물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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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3월 10일 (수) 23:56:07 [조회수 :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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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지난해 거두지 못했던 비닐과 풀덤불을 정리하고 깨끗이 갈아놓은 밭도 더러 보인다. 아마 한두 주 정도 지나면 올해의 첫 작물로 감자를 심는 때가 되기에 더욱 부지런한 손놀림이 보일 것이다. 그에 따라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밭으로 향하고 있다. 작년 여름 내내 비가 와서 손을 못썼던 밭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다 겨울이 되어 누렇게 변해 남아있는데 이제 그 풀들을 시간을 내어 거둬내고 갈아엎어야 한다. 누구는 무경운 농법, 무투입 농법을 한다고 하지만, 농법에 대한 뚜렷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엄두를 못낼 농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조금 있으면 부지런히 밭정리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매년 그렇지만 농사를 짓든 짓지 않든 풀은 자연발생적으로 자란다. 꼭 밭이 아니어도 풀은 어디든지 흙과 수분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민다. 경칩이 지난 지금 누렇게 동면했던 풀들은 어느 사이에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고 봄나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그중에 일찍 머리를 디민 풀은 닭들의 먹잇감이 되고, 어떤 풀은 고양이들의 섬유소 섭취에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풀들은 일주일 후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쑥쑥 올라올 것이다. 그렇게 풀의 생명력은 질기고도 질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풀들의 성향을 반만이라도 닮는다면 양아치 농부라는 별명이 붙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요, 시작은 거창하나 끝은 미약한 것이 풀베는 작업이었으니 올해는 그 풀들로부터 자유를 얻어 보자.

작년까지 쓰던 예초기가 말썽이었다. 시동을 걸때마다 거의 백번은 스위치를 당겼다. 그러다보니 풀을 베기도 전에 이미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었다. 예초기에 수도없이 궁시렁궁시렁 거려보지만 예초기가 말을 들을 턱이 있겠는가. 떠드는 내 입과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기에 그렇게 초장에 힘을 빼고 겨우 시동이 걸리면 두서너 시간 예초를 했다. 시동을 건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작심하여 풀을 베었던 것이다. 그런 가상함이 매년 있어왔다. 그래서 예초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으나 또 주머니 사정이 궁한지라 번번이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마을 반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농협 조합원 대상으로 소여리 1구에 3대의 예초기를 50%씩 지원해준다는 희소식이었다. 비록 나는 조합원이 아니었지만 동생이 조합원으로 있었기에 그 기회를 얻은 것이다. 추첨은 3월 7일 주일 오후 6시에 마을회관에서 진행을 하는데 참석하지 않는 조합원은 추첨에서 제외된다는 엄포가 있었다. 괜시리 걱정이 되었다. 혹 추첨일을 잊을까봐도 그렇고 혹 약속이 생길까봐도 그랬다. 그래서 알람 예약으로 나의 흐릿한 기억력을 되살리려 했다. 

주일에 문자가 왔다. 이번엔 이장님이었다. 6시 10분까지 오란다. 마음이 설렜다. 시간이 더디 가는 듯 했다. 몇 번이고 시계에 눈을 돌렸는데 겨우 10분, 5분… 지났을 뿐이었다. 마을회관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여 해놓은 알람이 드디어 울렸다. 반가웠다.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고 마을회관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겠어? 하며. 너무 일찍 가면 괜히 마음이 들키는 것 같아 일부러 연탄재를 싣고 내려갔다. 마을회관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6시니 아직 10분이 남았다. 그 사이 연탄재를 버리고 돌아왔다. 마을회관 문이 열려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수린내에 사는 반장과 유 선생님도 왔다. 당신네들도 예초기가 필요해서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에 들어가서 머릿수를 세니 허걱, 이장님을 제외하고 9명이다. 순간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경쟁률이 3대 1인 것이다. 그야말로 ‘헐’이었다. 무언가에 응모를 했다가 당첨이 된 사례는 여지껏 없었다. 초등학교 6년을 다녀도 그 흔한 보물찾기 한번 행운을 얻지 못한 나였기에 귀한 예초기는 언감생심이 아니던가. 거기다가 실제 지원자는 2명 더 즉 모두 11명인데 2명은 오지 않았으니 추첨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11명이든 9명이든 높은 경쟁률은 마찬가지다. 대학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것만큼 떨렸다. 예초기 그것이 뭐라고!

이장님이 즉석에서 제비뽑기 용지를 만들었다. 두 번 접힌 노란종이 9장이 박카스 박스 안에서 섞이는 순간, 산양재 아주머니들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바닥 가운데에 박스가 놓이자마자 그녀들은 차례를 지키지도 않고 잽싸게 달려가 박스 속에서 노란 추첨 용지를 꺼냈다. 그런 뒤 연세가 드신 분들이 먼저 뽑고 난 뒤 내 차례가 되었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벌렁벌렁 하였다. 앞서 뽑은 아주머니들이 서로들 안됐다고 낙심하는 소리가 들여왔다. 그런데 우리 동네 수린내의 반장과 유 선생님은 됐다고 조용히 말하였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제 나를 포함해 두 명이 펼치면 되었는데, 한명은 안됐다고 했다. 이제 나와 젊은 사람의 결과만 남았다. 1대를 놓고 50대 50의 확률이다.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4등분한 노란 종이를 살며시 폈다. 오! 종이 위에 예쁘게 쓰여진 글씨가 보였다. 펼쳐진 면에는 "예초기"라는 세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아싸라비아~~~~. 당첨이다. 크하하하하~~~~ 얼씨구 좋구나. 우리 수린내에서 3명이 지원했는데 공교롭게도 3명 모두 뽑혔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일이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투덜거렸다. 수린내에서 모두 뽑혔다면서 다시 추첨을 해야 한다고 선동(?)을 하였다. 본인이 되면 가만히 있을 양반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 반장님. 착해도 너무 착하셔서 자신은 포기한다고 한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래서 반장이 기꺼이 포기한 예초기 1대를 두고 나와 유 선생님을 제외한 남아있는 마을 사람들은 다시 제비뽑기를 하였는데, 앞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좀 많았던 아주머니는 다행히(?) 이번에도 안됐다. 욕심을 부리시더니… 살짝 꼬소미를 문 느낌은 밉상스러운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드러나는 감정이었다. 

생각지 않게 귀한 선물이 봄바람을 타고 왔다. 꼭 필요한 것을 얻었으니 기분이 엄청 좋다. 물론 예초기 값의 반은 내가 부담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4월 중순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노오란 새순들이 온 천지에 수놓을 때다. 더불어 대지에도 파릇한 풀들이 아우성을 치며 솟아올라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다. 작년엔 여러모로 전장에서 패했으나 올해의 풀과의 전쟁은 초반부터 나의 승리로 점쳐진다. 성능 좋은 신형 예초기가 있으니 기다려라 풀들아! 역전의 용사가 납신다. 오너라 풀들아! 한방에 누울 준비를 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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