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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보다 용서가 우선이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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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27일 (토) 23:39:27 [조회수 : 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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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11절

정죄보다 용서가 우선이다

 

가. 법은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4절,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의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 본문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하여 간음의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을 때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며 물리치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정죄보다 용서를 택하셨다. 정죄보다 용서가 죄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데에 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은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율법(노모스)은 ‘분배하다’(네모)에서 유래한 말이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게 위하여 법을 집행하되 빈부귀천 없이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 간음의 현장에서 여성만 끌고 온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함께 간음한 남성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공정하지 않다. 또한 간음의 현장에서 들켰다는 이유만으로 그 여성만 죄인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들켰거나 안 들켰거나 누구나 죄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내편무죄 네편유죄” 등은 공정하지 않다. 법은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나. 정죄가 능사는 아니다.

5절,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율법은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용도를 1)법의 집행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용도, 2)죄를 깨우쳐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신학적 용도, 3)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규범적 용도 등으로 정리하였다. 죄와 법이 있는 한 정죄는 어쩔 수 없지만 정죄가 전부는 아니다.

* 정죄와 권면은 다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정죄하는 데 익숙하였고, 예수님은 권면하는 데 익숙하셨다. 정죄는 미움에서 시작되고 권면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정죄는 사람을 죽이고 권면은 사람을 살린다. 죄는 깨우치되 사랑으로 권면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정죄하는 사람은 남의 단점을 보는 데에 익숙한 반면에 권면하는 사람은 장점까지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단점을 보는 것은 본능이고 장점을 보는 것은 재능이다”라고 하였다(소노 아야코). 정죄가 능사가 아니다. 권면의 지혜를 익혀라.

 

다. 먼저 자신의 양심을 일깨워라.

7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예수님은 어찌하는 것이 옳으냐고 답변을 재촉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할 수 없다. 이에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모두 물러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이다.

* 남을 정죄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양심을 일깨워야 한다. 양심이 마비되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자신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진정한 양심(쉰에이데시스)은 하나님과 함께 보고 함께 아는 것을 말한다.

*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라고 하셨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혹하면 안 된다. 남의 죄는 졸보기로 보고 자신의 죄는 돋보기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양심을 일깨워야 바른 판단이 가능하다.

 

라. 정죄보다 용서가 더 힘이 있다.

1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 하나님의 뜻은 단지 정죄하고 벌주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죄인을 의인이 되게 하는 데에 있다. 주님의 복음도 마찬가지다. 복음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죄보다는 용서하고 권면하는 것이 더 힘이 있다. 물론 벌이 무서워서 죄를 멀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격적 변화는 징벌만 가지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 예수님은 정죄하고 벌을 주는 대신 용서하고 권면하는 길을 택하였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요지다. 그 여인은 분명 철저하게 변화되었을 것이다. 정죄보다 용서가 더 힘이 있다는 증거는 많다. 용서를 통한 변화의 증거들을 참조하라.

* 또한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라고 하셨다. 용서는 힘들다. 그러나 용서에는 하늘의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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