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純粹)에 이르고 싶다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녹색평론사 엮음, 2008년 개정판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동화작가요 생명운동가였던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가 있다. 지근거리에 있는 덕분에 선생님이 그리울 때면, 혹은 마음이 울적할 때면 선생님의 생가를 찾아 빌뱅이 언덕에 올라 깊은 상념에 젖어들곤 한다. 

작년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이 고맙게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매년 시행하는 몽실언니 도서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선생님과 관련된 100권의 도서를 지원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권정생 선생님을 책으로만 만난 아쉬움을 이렇게 선생님의 자취가 남겨진 생가와 동화나라를 자주 찾아가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는 우리의 뒤틀려진 심성을 맑게 복구해주는 힘이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는 생명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고, 순수에의 갈망이 서려있다. 무엇보다 권정생 선생님의 육성을 듣고 싶다면 남기신 산문집을 읽어볼 일이다. 그분의 산문을 읽을라치며 바로 옆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점점 뒤틀려져 가는 세상, 본연의 모습에서 점차 변질되어 가는 세상에 대한 선생님의 걱정과 한탄이 가득 배어있다. 책 제목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생 일직교회 종지기의 삶을 사셨던 권정생 선생님은 타락해진 종료의 암울한 모습을 직감하시며 많이 염려하셨음을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때론 깊은 한숨이 느껴지고 때론 격노하셔서 따끔한 한 마디를 내뱉기도 하신다. 가난한 이들과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연민이 권정생 선생님의 사상과 삶을 관통하는 주제로 본다면 작금의 교회는 너무나 부요해져 본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현실의 교회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 가운데 작심하고 하신 말씀들이 ‘우리들의 하느님’이란 글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 이는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김종철 선생님에 의해 책 제목이 되었다.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우리의 본질인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있다는 것을 짚어준다. 

권정생 선생님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바로 이사야서 11장 말씀이다. 이리가 어린양과 뛰놀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들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들이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천국의 모형을 그린 말씀 말이다.
 
이는 분명 순수(純粹)로 돌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세상이리라. 변질된 것은 도려내고 영혼의 새살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 순수로 돌아가 태초의 안식처인 에덴을 거닐고 싶다. 그곳에는 쓰라린 아픔도, 숨 막히는 슬픔도, 고통의 절규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 자리 했던 것은 ‘인간다움’이라는 말이었다. 인간은 본디 서로 기댄 존재가 아니던가! 서로 기댄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인간의 상태란 전적인 신뢰의 상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신뢰가 깨진 것이다. 그 원인은 전적으로 인간의 탐욕이다. 순수함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본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중에서).

우린 꿈꾸어야 한다. 순수(純粹)로 돌아가는 꿈을...

이 혁 목사(의성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