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사이비 이단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교황의 무류성 고대교부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해, 첫번째 로마주교 사례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6년 11월 14일 (화) 00:00:00 [조회수 : 183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천주교 개혁은 이것부터 미련없이 포기해야


   
▲ 산타 마리아 마죠레성당의 건립 그림 중 일부, 1430년 후로렌스의 마조리노-다-파니키레 作 국립 카폰디몬테미술관. 산타마리아마죠레 성당의 건립에 관한 신비적인 전설을 그린 것이다. 교화 리배리우스가 지팡이로 사원의 흔적을 만들고 그것을 성직자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까지 천주교 신자들을 적지 않게 사귀어보았다. 그들 중에는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정말 좋은 사람(신부+평신도)들도 분명히 있다. 필자도 천주교 신자 출신이며 아직까지 천주교회와 발을 끊지 않고 있다. 그런데 천주교회의 교황과 마리아의 교리들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고 해서 요사이 전화조차 받지 않는 몇몇 신자들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쓴웃음이 저절로 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슬프기까지도 하다. 그들 중에는 순교자 김대건 신부의 제5대손까지 있다. 그와는 나이가 비슷해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처지였다. 이것도 본보에 기고를 시작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의 영적 도덕적 지적 수준과 문제점을 여실히 잘 알 수가 있다. 전 예장 통합측 사이비 이단 상담소장 겸 월간 “교회와 신앙” 발행인 이었던 최삼경목사와 과거 한동안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는 천주교회를 사이비 이단도 아닌 불교 등과 같은 다른 종교로 간주한다. 그러니까 흥미나 관심이 없어서 천주교회에 대한 비판조차 하지 않는다. 분명히 캘빈은 그러지 않았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천주교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이것은 본보 발행인인 강춘오목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천주교회를 문제점이 적지 않은 형제교회로 생각할 뿐 사이비 이단으로까지는 간주하지 않는다.

[필자도 이 부분에 있어서 강목사의 견해와 비슷하다].

<필자도 이 부분에 있어서 강 목사의 견해와 비슷하지만 아직까지는 정통성이 천주교회에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것이 그와 견해가 다르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의 거의 모두(성직자+평신도)는 그들만이 진짜 교회이고 프로테스탄트를 자신들의 모조품 수준으로 생각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주요 기도의 삼덕송 중 신덕송은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정말로 이게 사실이고 진리라면 좋겠다. 왜냐하면 골치아프게 공부나 연구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사이비 이단설에 빠졌던 로마 <주교>[감독](교황)들 중 우선 한 분을 소개하겠다. 아리우스주의(파)는 다 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아리우스주의와 비슷한 사이비 이단들이 고대교회에 있었는데 이들 중 하나를 ‘유사본질주의’(파)라고 한다. 이와 반대되는 정통교리를 ‘동일본질주의’(파)라고 한다. 동일본질주의(니케아 공의회와 그 신조를 추종)는 하느님의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동일하시다는 것이고 유사본질주의는 문자 그대로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유사하실 뿐이라는 것이다. 동일하다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뜻이다.

즉 이렇게 되면 주 예수님께서는 거의 피조물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유사본질주의는 니케아 신조의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다’라는 말이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이의 사용을 배척하고 그 대신에 아들은 아버지와 ‘본질이 유사하다’는 말을 그들의 신조에 집어넣었는데 이것이 358년 시르미움 지역공의회에서 인준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후대에 가서 ‘시르미움의 신성모독’(the blasphemy of Sirmium)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로마 <주교>[감독](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366년 사망)가 이 ‘시르미움의 신성모독’에 서명했느냐, 하지 않았으냐의 문제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트 프란츤 신부는 그의 ‘교회사’(분도출판사)에서 그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고, 김성태 신부는 그의 ‘세계 교회사 1’ 284쪽에서 단지 리베리우스(리베리오)의 이름만을 거론할 뿐이지만 그의 이름 앞에 ‘교황’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리베리오교황사건’란에서 “아리우스파 논쟁이 초대교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을 당시 교황 리베리오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다. 즉 교황 리베리오는 아타나시오를 배척하는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거부하였는데, 이에 따라 교황은 아리우스파였던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로부터 미움을 받아 355년 추방당하였다.

2년 후인 357년 교황 리베리오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아리우스파의 신앙선언에 서명했다고 전해져 교황의 무류성과 관련된 토론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문서가 위조문서라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한 때 교회를 위태롭게 한 논란은 종식되었다”라고 기술함으로써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에는 프로테스탄트 쪽 교회사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보자. 케니스 S. 레토레트 교수는 그의 ‘기독교사上’(생명의 말씀사) 265~266쪽에서 리베리우스가 처음에는 이를 거부하여 당시 황제의 명령에 의해 귀양살이까지 갔었으나 나중에는 결국 굴복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헨리 채드윅교수는 그의 ‘초대교회사’(기독교문서선교회) 173~175쪽에서 위와 비슷한 내용을 서술하면서 결국 리베리우스가 굴복했기 때문에 당시 황제 콘스탄티우스가 그를 358년 유배지에서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고 쓰고 있다.

후스토 L. 곤잘레스 교수는 그의 ‘기독교사상사 1’(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331~332쪽에서 교황 리베리우스가 결국 그것에 서명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천주교회의 예수회 신부 클라우스 샤츠 교수는 그의 ‘보편공의회사’(분도출판사) 48쪽에서 리베리우스가 그것에 서명했다고 간단히 언급하여 그의 배교 행위를 사실화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니케아 신조의 지대한 공헌자인 코르도바의 주교(감독) 호시우스(Bishop Hosius of Cordova)도 리베리우스와 함께 배교했다고 한다. 위 곤잘레스 교수의 스페인어 저서는 남미의 천주교 신학교들에서도 교재로 사용되었다. 유사본질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정통고대교부 에피파니우스가 그의 ‘파나리온’ 73에서 증언하고 있다.

필자 주 / 위 글 중 <...>는 교회연합신문 발행인 강춘오가 제 멋대로 내 원고를 삭제시킨 부분이고 [...]는 강춘오가 자기 마음대로 내 원고에 만들어 넣은 부분이다.
이용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99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