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에서 365일 부대찌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하는 미국인 부대찌개 마니아 울프 슈레더씨를 보았다. 게임해설가 겸 유투버인 그는 11년 전 한국에 처음 와서 먹었던 부대찌개의 맛과 매력에 반했다고 한다.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는 미국인들이 잘 먹지 않는 스팸이 들어가서 거부감이 있었지만 부대찌개의 냄새와 맛이 너무 좋아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방송을 보니 갑자기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져서 아내와 함께 동네 부대찌개 집을 찾아가서 점심을 먹었다. 소고기를 우려낸 육수에 햄과 소시지, 두부와 김치, 대파와 가래떡, 베이키드 빈스와 라면, 그리고 소스가 잘 조합된 부대찌개의 맛이 괜찮았지만 슈레더씨처럼 매일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찾아간 식당이 맛있는 부대찌개집이 아니었나 보다.

부대찌개는 4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간 한국전쟁 이후 그 비참했던 시절에 굻어죽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찌꺼기 음식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이 주는 2가지 고통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먹는 문제였다. 생존을 위해 뭐라도 먹어야 하는 그 시절에 유일하게 먹을 것이 넘쳐났던 공간은 미군부대였다. 제대로 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쓰레기는 구원의 먹을거리였다. 특히 일 년에 고기 한번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당시 한국인 대다수에게 미군들이 씹다 버려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던 햄과 소시지는 천국에서 내려온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였지만 구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미군 부대에 드나들면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뒷돈을 주고 몰래 빼 내와야 했다. 이렇게 못하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몰래 미군 부대에 들어가 훔쳐다 먹기도 했다. 잔반에는 고깃덩어리도 있고, 햄, 소시지 등도 있었을 것이다. 케첩에 버무려진 샐러드도 있었을 것이고 빵조각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솥에 넣고 끓여서 먹었다. 미군을 당시에 유엔군이라 하였는데, 그 이름을 따서 ‘유엔탕’이라고도 하였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름은 ‘꿀꿀이죽’이다. 미군부대의 잔반을 가져와 끓였던 ‘꿀꿀이죽’은 서민들보다 더 가난한 고아, 실향민, 부랑아, 일용직 노동자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1960년대에 들면서 꿀꿀이죽의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다. 잔반은 버려지고 미군부대에서 불법으로 몰래 빼내오는 햄과 소시지로 찌개를 끓였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군부대에 흔했던 스팸을 비롯한 햄과 소시지를 좋아했다. 이미 양념이 되어 있어 잠깐 물에 넣어 끓이거나 구우면 금방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은 양의 재료로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기 위해서 물을 붓고 찌개로 끓여 먹은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햄과 소시지만 넣던 찌개에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김치나 각종 재료들을 넣어 끓여 먹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음식이 바로 부대찌개였다. 

1950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군부대가 있었던 의정부와 문산, 동두천, 그리고 서울의 이태원과 남영동, 그리고 평택 오산캠프 주변의 송탄에서 부대찌개집이 생겨났다.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후 존슨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엄밀히 구분하면 존슨탕은 부대찌개의 사촌정도라고 할 수 있다. 부대찌개가 사골을 우려낸 육수가 들어가 김치와 라면이 들어가는 얼큰한 맛이라고 한다면 존슨탕은 부대찌개와 달리 감자와 양배추 그리고 치즈가 들어가서 담백한 맛이 나는 차이가 있다. 부대찌개와 존슨탕, 또는 존슨부대찌개 등으로 불리다가 1990년대에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지금은 부대찌개에 라면사리가 당연히 들어가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부대찌개에 라면사리가 들어가지 않았다. 라면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63년이었고, 초창기에는 값도 무척 비싸서 부대찌개에 넣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미군부대 주변에서 성업하던 부대찌개가 본격적으로 대중 음식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부대찌개에 반드시 들어가는 프랑크 소시지를 1986년 롯데햄에서 만들자 부대찌개가 대중화되었다. 라면이 부대찌개에 대중적으로 들어가게 된 것도 이때 즈음이다.

전쟁의 배고픔 속에서 탄생한 부대찌개는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 있는 외식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부대찌개는 서양의 햄과 소시지와 우리나라의 김치와 고추장 된장이 만난 한국 최초의 퓨전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후 비참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임에도 한국인들은 부대찌개에 깊은 향수를 느낀다. 이제는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맛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대표적 음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