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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기독교의 미래
이강무  |  lkmlh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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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16일 (화) 10:59:43 [조회수 :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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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살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 가는 대신 오전 내내 혼자 방에 앉아 모니터 앞에서 비대면 수업을 마치고 할머니 손에 점심을 먹은 후 학원엘 갑니다. 네 곳의 학원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이젠 스마트폰으로 자기가 보고픈 것을 보며 놉니다. 저녁 늦게 직장을 다녀 온 부모 역시 샤워를 마친 후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각자 잠자리에 듭니다.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는 우리 일상의 모습을 더욱 빠르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급하게 변화시킨 세 가지의 요인이 있습니다. 전쟁과 팬데믹(전염병)과 혁명입니다. 그 중 14세기 중엽 중세시대에 유럽을 휩쓴 최악의 대재앙 ‘페스트(흑사병)’는 전 유럽인구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고 그로인해 중세의 몰락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영주와 농노 두 계급이 존재하였습니다. 영주들은 부를 누리며 농노들을 부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하여 수많은 농노들이 죽게 되고, 그로인해 농노들의 노동력이 비싸져 영주들이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농노들의 몸값이 올라가자 영주농노계급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또한 중세 팬더믹은 신관이 무너지고 왕권이 강화되는 사회를 가져왔습니다. 성전중심의 신앙에서 일상중심의 신앙으로 삶의 형태가 바뀌는 모습이지요. 팬데믹으로 인하여 민심이 두 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신에게 의지하는 무리이고 하나는 과학에 의지하는 무리들입니다. 결과는 신을 의지하는 이들보다 과학을 의지하는 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신에게 기원하던 자들의 약 45%가 사망하였고, 과학과 의학에 의존 하던 이들은 약 30%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중세 성전중심의 거룩한 성전을 떠나 일상중심의 과학과 의학과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은행업으로 큰 부를 이룬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근대적 세계관이 앞당겨지고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이어서 종교개혁이 이루어지지요.

     그 후 세계는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과 같은 지식정보화사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엔 튜링머신(turing machine)이었습니다. 거대한 크기의 이 컴퓨터는 창고에 보관해 두고 작동해야 했습니다. 그 다음 PC(개인용 컴퓨터)가 나왔지요. 역시 책상에 두고 사용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소유와 독점은 가능해졌습니다. 그 다음 랩탑(노트북) 컴퓨터가 나왔지요. 이제 가지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사용권한이 강화되고 주도권이 사용자 쪽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스마트 폰이 등장하여 몸에 휴대하고 걸어 다니며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컴퓨터는 급속도록 발전되고 사람들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외국인 친구와 이메일로 간신히 주고받던 교제가 이제는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하여 언제고 문자나 화상으로 무료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줌으로 여러 명이 함께 비대면 화상회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미래 과학자들에 의하면 앞으론 우리가 병원에 가는 대신 내 컴퓨터 속의 나의 아바타가 대신 의사를 만나면 된답니다. 바쁜데 내가 갈 필요 없고 아바타가 의사와 면담을 하고 의사가 아바타에게 처방전을 내어주면 아바타가 약국에 연락하여 약이 택배로 보내온답니다. 지금도 원격조정으로 밥을 짓고 로봇청소기로 집안청소를 할 수 있듯이 앞으론 냉장고가 나의 식단을 관리한답니다. 밤 10시 이후엔 냉장고 문이 스스로 잠겨 다이어트 하도록 하고, 냉장고에 보충할 필요한 식료품이 있으면 냉장고가 슈퍼마켓에 메시지를 보내면 택배로 물건이 도착하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운전기사 없이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운전하고 주유도 태양전지를 이용해 자동차 스스로 알아서 충전하는 시대가 온답니다.

     이러한 급변하는 문화혁명의 지식정보화시대에 기독교인들의 심성은 어떻게 바뀔까요?

     코로나 19로 인하여 많은 신앙인들이 비대면 예배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교회 안 가는 것이 불안하였으나 이젠 집에 앉아 마음에 맞는 목사의 설교를 골라 듣는 것이 편하고 즐겁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90세가 다 되신 장모님을 방문했더니 성경책을 앞에 펴 놓고 텔레비전 설교를 듣고 계십니다. 하나만 듣는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시며 하루 종일 보고 계십니다. 비대면 예배는 교회 가기 힘든 노인들에게 매우 편리하게 되었고, 젊은이들도 이젠 비대면 예배가 더욱 편리해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이 힘든 일이었으나 이젠 교회 가는 대신 가보고 싶은 곳을 여행하며 실컷 놀다가 여유가 되면 그때 유트브를 켜 놓고 비대면 설교를 듣는 것이 추세이고 대세이며 습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성도들이 교회에 안 가는 이유는 전염병이 옮을 염려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급격히 다가와 익숙해진 비대면 전자문명과 개인주의로 변한 사람들의 심성 때문입니다. 그동안 개신교회는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중세시대의 성당처럼 성전중심의 신앙으로 신도들을 옥죄었지요. 심리적으로 억압상태에 있던 신도들이 코로나19로 개인주의적 삶이 앞당겨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일상중심의 삶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르네상스, 새로운 문화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이지요.

     앞으로 불신자들의 전도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 코로나 19가 처음 터졌을 때 신천지 대구이단교회에서 방역에 협조하지 않아 확진자가 급증하였고 이로 인해 사회적 큰 물의를 일으켰지요. 그 때만해도 기존교회들은 아직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신천지만 나무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전광훈 목사와 그 교회 교인들의 방역 비협조로 인하여 코로나가 확산되었을 때, 기독교는 침묵하며 눈치만보다가 늦게야 수습하려고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단속하였지요. 그것으로 끝났으면 다행인데 그러나 그 후 이 곳 저곳 방역에 비협조적인 정통교단의 선교단체에서 코로나의 확산을 일으키고 지금까지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모르는 어린아이라면 몰라도 이젠 그 누구도 방역 안전에 대해서는 기독교인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방역대책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하는 기독교인들의 독단적인 신앙의 행위를 두려워하기까지 하며 심지어 기독교인들의 접근을 금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나오라고 전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흑사병의 발병 후 중세 기독교회가 문을 닫았듯이 코로나19 이후 이젠 기독교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사요 선교사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니고 그동안 교리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 온 우리 기독교인들 자신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19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경고의 메시지인지도 모릅니다.

     금방 교회 문을 닫게 되진 않을 것입니다. 기존 교인들 중 믿음이 있는 분들은 여전히 교회를 나오든가 교회 간 수평이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처럼 많은 교인들이 출석하진 않을 것이고, 절반정도 출석하다가 그분들이 늙어서 교회에 오지 못할 처지가 될 때까지 서서히 교인 수가 줄어들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최고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교회가 큰 각성과 변혁을 이루지 못하고 이 상태로 계속 나간다면 아마도 지금 세대가 지나갈 즈음(약30년 후)에 교회는 중세교회처럼 텅빈 건물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교회에 실망하고 출석하지 않는 분들이더라도 그들은 아직 교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트브 등 통신매체를 통하여 자기교회가 무얼 하는지 틈틈이 관찰할 것입니다. 은혜로운 설교나 성경공부는 텔레비전 기독교방송 채널에 들어가면 내로라하는 사람들(유명한 목사, 신학자)의 훌륭한 설교나 강의가 줄을 서 있지요. 성도들은 이제 담임목사의 설교가 아니라도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것입니다. 다만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은 자기교회가 나와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살펴보는 일입니다. 만일 교회가 사회를 위해 공동체적 헌신과 희생과 사랑의 행위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공동체의 유익에 비협조적이거나 반한다면 그들은 실망하고 여기저기 방송의 채널을 돌리며 그냥 비대면 시청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유럽의 중세교회가 묻을 닫았지만 그래도 전세계적으로 NGO 사역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유럽인들이고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전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의 사랑을 몸으로 물질로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텅 비어도 예수님의 성령의 역사는 세상 곳곳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회가 텅 비어도 예수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서 오신분이 아니고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요18:38)

                              -주포리 수도자의 집에서-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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