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차별금지법은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 것입니다
변영권  |  목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02월 15일 (월) 13:30:10
최종편집 : 2021년 02월 15일 (월) 13:34:36 [조회수 : 147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차별금지법은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 것입니다 

 

   
변영권 목사

중학교를 졸업하고 정들었던 서대문을 떠나 강남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원래 다니던 교회가 거리가 멀어서 다니기 힘들어졌을 때, 새로 사귄 같은 반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서 한동안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강남의 대형 교회였고, 중고등부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교회였습니다. 주일에 학생 예배를 마치면 15명 정도씩 나뉘어서 성경 공부를 했었는데 한 번은 우리 반 선생님이 창세기에 나오는 술 취한 노아에 관한 본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함은 저주를 받아 흑인의 조상이 되었고, 셈과 야벳은 우리 같은 백인들의 조상이 되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흑인들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보다도, "우리 백인"이라는 말이 더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이었지만 내가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 저주받은 인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날 이후로는 성경 공부는 잘 가지 않게 되었고, 결국 버스 노선을 좀 알게 되면서 다시 원래 다니던 서대문의 교회로 출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어떤 차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당시 교회에 만연했던 일반적인 해석을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성경 공부 자리에 흑인 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그 선생님은 "흑인은 저주받은 함의 후손"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몇 해 전에 들은 탈식민주의 성서 비평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만일 그 당사자가, 예를 들어 출애굽기를 읽을 때 우리 교회에 이집트 사람이 앉아 있다면 우리는 성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이 앉아 있다면 우리는 복음서의 반유대주의적 본문들을 어떻게 함께 읽을 수 있을까요? 점차 이주 노동자들, 결혼 이민자들이 많아지는 요즘 시대에, 이런 문제는 단순히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제 목회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시각장애인 어르신과 장애인 활동 보조인이 같이 교회에 나오신 적이 있습니다. 봄이 되어서 교회 어른들을 모시고 단풍 구경을 가려고 하는데, 이 권사님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앞이 안 보이시는데 단풍 구경 가자고 하면 조금 불편해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시각장애인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어디를 가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면서 비장애인인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분이셨으니까요. 그 시각장애인 권사님을 통해 저를 비롯한 다른 교인들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을 경험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이동할 때 안내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 교회의 공간이 어떤 부분이 불편하게 여겨질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자폐인도 있습니다.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한 어르신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 한 사람을 우리 교회의 가족으로 맞이할 때마다, 우리의 생각이 넓어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말과 행동에 담겨 있는 편견과 교회의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차별적인 구조들이 드러나고 무너집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 교회는 그런 식으로 변해왔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았고, 그래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그 다양한 이웃들 가운데 성 소수자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상상해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배우며 자라셨을까요? 아마 신약 성서는 없었을 테니, 친구들과 회당에 가서 회당장이 읽어주는 구약 성서의 말씀들을 배우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구약 성서를 어떻게 읽었길래, 이방인을 몰살시키고, 재앙을 내리고, 나라를 멸망시키고, 질투하고 진노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하느님을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만일 예수님이 구약 성서에서 그런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셨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성서의 몇 구절이 문자적인 의미에서 성 소수자들을 정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성서의 어떤 구절은 노예 제도를 찬성하고, 여성을 차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제가 믿는 하느님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편견과 폭력을 무너뜨리는 분이지 그것을 조장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에 관한 성서 구절들에 대한 저의 생각은 평화교회 연구소에서 발표했던 발제문으로 대신합니다. https://blog.naver.com/taemen6/220754700691 )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우리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불법적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차별이 잘못된 것이며, 성 소수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의 평등한 이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한 법입니다. 저는 예전에 어느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교회는 어떤 곳인가"가 아니라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앞으로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곳은 차별 없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차별금지법은 교회가 좀 더 교회다운 곳이 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3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세례요한 (101.235.185.184)
2021-02-23 08:46:26
위 글을 인용해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교회는 어떤 곳인가"가 아니라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인간은 이미 무엇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 만물의 영장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재창조물로 지음받은 존재로 결정된것입니다.
무엇이 되고자 한다는 것자체가 불자들의 고민입니다.
기독교진리를 불자들의 수행정도로 폄하시키는 논법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령의 전으로 이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규정된 교회입니다.
결정되고 규정된 인간과교회를 무엇인가 새롭게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만들어가는 신, 만들어가는 인간, 만들어가는 교회가 되려는 시도입니다.
만들어 진신이 우상이듯이 만들어가는 인간역시 사단일뿐입니다.
교회가 인간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면 로타리 클럽이나 라이온스클럽보다 훨씬 유약한 단체일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니 간단명료하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회복하면 됩니다.
교회는 그의 몸으로 이 일을 수행하면 됩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시녀들이 철학으로 언어로 머무 많이 치장하여
정작 그분의 얼굴이 전혀 안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면 좋겠습니다.
리플달기
5 0
둘째아담의 자손 (101.235.185.184)
2021-02-23 08:31:48
변목사님글을 잘읽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잘못 이해하고 계신듯하여 몇자적어본다
차별금지법은
무차별금지법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성경의 의도는 만물이 다 차별된 창조의 질서이다
차별된 법은 평등에 위배됨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이다
하나님과 천사, 창조주와 피조물,동물과 사람, 남자와 여자,
이성섹스와 동성섹스는 엄히 차별화된 법이다,
존재론적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차별된 것이다
차별되다는 말보다 서로 다른 존재일뿐이다.
서로다른 존재에대한 인정과 존중으로 멈추어야한다
선이 무너지고 벽을 깨트려 서로 하나 됨을 강조한다면 이는 비성경적이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이 된다
루시엘과 하나님은 창조주와 피조물, 태초부터 차별된 존재다
인간과 동물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다
루시엘이 하나님과 동등 되려 할 때 사단이 되는 것이다
이 근본적 질서를 차별금지법으로 동등화시키려는 세계적 추세는
인간이 사단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차려야 할 진리 같은 궤변이 이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는 논리에만 함몰되지 말고
성경의 먼저고 하나님이 먼저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성소수자들은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체적 장애인일 뿐이다
장애인들은 장애우로 대접해야지 건강한 사람들 까지 싸잡아서
하나로 묶어 그러므로 동성애결혼 항문성교까지 합범화 하는 것은 사단의 속임에 자신을 던지는 죄악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샬롬~~
리플달기
2 0
이민희 (183.109.138.25)
2021-02-17 22:09:08
정신차리소 ~!!!!
목사는성경의진리를말해야하고성경의진리를수호해야할사명이있습니다성경을부정하는것은나를위해살찢고피흘리신우리주님을부정하는것입니다차별금지법은교회를파괴하고성경을불법서적으로만드는악법입니다늦기전에회개하고돌아서십시오무엇이옳은지어떤것이주님이기뻐하는것인지잠시후면알것입니다지금숨쉬고사는이시간이나의잘못을알고회개하고돌이킬수있는마지막기회임을잊지마십시오
리플달기
5 9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