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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하박국3장1절~19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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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15일 (월) 13:26:40 [조회수 :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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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중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하박국3장1절~19절

 

1. ‘오늘 우리를 위해서도 역사해 주십시오!’

 

①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메시지성경) ‘하나님, 주님에 대해 전하는 조상들의 말을 듣고, 놀라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들에게 하신 일을 오늘 우리에게도 행해주십시오. 그들을 위해 역사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위해서도 역사해 주십시오. 심판하실지라도, 자비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주께서는 분명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박국은 과거 믿음의 선조들의 구원역사를 붙잡고 그 구원의 역사가 오늘 다시 실현되길 간구한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우리도 ‘성경에서 기록된 말씀이 오늘 나의 삶 가운데서 재현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를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체험’과 ‘기억’이다. 순종을 통한 간증과 그 경험을 잊지 말고 기억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② (3절)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린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 다시 길을 내신다. 옛 구원의 길을 되밟아 오신다. 데만을 지나 남쪽에서 올라오신다. 거룩하신 분께서 바란 산에서 오신다’ 데만은 남쪽 땅이란 뜻이며 바란은 남방 애굽과 미디안 사이에 위치한 광야를 가리킨다. 북방에서 내려온 바벨론제국의 침공에 대항해서 남방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예고한다. ‘하늘이 그분의 광휘로 번쩍이고, 그분을 찬양하는 소리가 땅을 울린다’ 어둠은 빛의 부재(不在)다. 빛이 오면 어둠은 소멸한다. 태양이 동편에서 떠올라서 밤의 어둠을 몰아내듯이, 남방 애굽에서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북방 바벨론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노래한다. 반복되는 ‘셀라(:סלה)’는 ‘목소리를 높이다’, ‘찬양하다’, ‘멈춰서 들으라’는 뜻이다. 아멘’과 일맥상통한다. 아멘은 ‘의지하다’, ‘믿다’, ‘의뢰하다’, ‘그렇다’는 의미다.

 

③ (4절~7절)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 눈앞에 현실은 절망적인 어둠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빛 곧 감춰진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다. ‘온역(전염병)과 불덩이’는 재앙과 재난을 가리키는 은유다. ‘그 앞에서 행하며...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삼라만상을 주관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가 서신즉, 그가 보신즉... 영원한 산과 무궁한 작은 산’은 대제국과 권력자의 몰락이다.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열국의 흥망성쇠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한임을 선포한다. (메시지성경) (7절) ‘내가보니, 모두가 근심에 빠졌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옛 광야의 적들, 구산과 미디안이 그분의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라며, 잔뜩 겁에 질려 있다’ 하나님의 권능을 대적들은 먼저 알고 마음이 녹아내리듯 두려워 떨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백성은 모르고 있었다.

 

 

2.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① (8절~10절)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나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 과거 출애굽 구원역사 가운데 벌어진 ‘홍해’와 ‘요단강’의 기적을 회상하며 소환한다. 바다와 강물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가로막을 수 없다. 도리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까닭이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은 인생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시는 분이다. 이 믿음이 있으면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주님, 나의 불행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주님, 내가 만난 삶의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② (11절~13절) “주의 나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

에 멈추었나이다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둘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 (메시지성경) ‘주의 번쩍이는 활이 그들을 멈춰 세웠고, 주의 번개 같은 창이 그들을 꿰찔렀습니다. 노한 주께서 사악한 민족들을 내리밟으셨습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려, 특별히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려, 주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크신 팔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주의 백성과 기름 받은 자’는 혈통이나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가리킨다. (시103:13~18)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언약과 법도를 준행하는 자다.

 

③ (14절~15절)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 (메시지성경) ‘주님은 사악한 왕을 혼쭐나도록 패 주시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를 홀딱 발가벗기셨으며, 잘린 머리를 그의 창에 꽂으시고서 그의 군대를 날려 버리셨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그들, 결국 상어 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핍박하던 이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의의 최후승리를 증거 한다. 약육강식의 원리로 약한 자를 삼키는 행위, 곧 교만한 자를 꺾으시는 일이 하나님의 특기(特技)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세력이 있다. 그러나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하나님께서 친히 판가름하시고 마침내 손을 높이 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3.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①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려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 (메시지성경) ‘그 소리를 들을 때 내 배가 떨렸고, 입술이 떨려 말을 더듬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다가 자빠졌습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낙심한 이유는 뭘까?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겠지만 그때까지 바벨론제국에 의한 혹독한 고난을 먼저 통과하는 과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광야시험을 통과해야 했듯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때까지 고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성숙을 위한 ‘통과의례(通過儀禮, Les Rites de Passage)’와 성장을 위한 ‘성장통(growing pain)’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난 없이 영광도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도 없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려면 먼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수고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의 격언처럼 좋은 일에도 방해가 많이 따르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려면 핍박과 훼방이 먼저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전에 시험이 찾아오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기 전에 반드시 고난이 있다.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메시지성경) ‘저는 물러나 앉아 기다립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닥칠 운명의 날을 기다립니다.’ 하박국은 남은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오래참고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오는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맡기신 분께서는 감당할 힘과 지혜를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② (17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 일반적으로 기쁨과 감사는 언제 하나?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포도나무열매가 많고 감람나무 소출이 많고 밭에 식물이 넘치고 외양간에 소가 가득할 때다. 풍성한 열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도 귀하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영광으로 착각하거나 망각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하지만 하박국은 ‘때문에’의 믿음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을 증거 한다. ‘비록’은 ‘때문에’를 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을 전한다.

▶ 왜 ‘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이 필요할까? 우리의 삶에서는 풍성한 열매가 가득한 때도 있지만 아무 열매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는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은 까닭이다. 하박국이 전하는 믿음이 있으면 변화무쌍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일상의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이다. 어떤 순간에도 기쁨과 감사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지혜다. 만일 이 믿음이 없다면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에게 이 믿음을 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재난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구하기보다 재난을 견디고 이겨 낼 수 있는 믿음을 구하는 것이 지혜다. 이 재난이 지나간 후에 도 또 다른 재난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고 더 큰 재난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때문에’의 믿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으로 성숙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화과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면 무화과가 없으면 기쁨과 감사도 함께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불평과 슬픔이 넘친다. 믿음의 필요한 순간은 평안할 때가 아니라 나의 한계를 넘는 문제 앞에서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순간에 중심이 드러난다.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 반석 위에 지은 집인지 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 그 공력이 판가름 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더디고 작지만 튼튼한’ 반석위에 지은 집을 바라면서도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을 선호한다. ‘빨리, 크게, 쉽게’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길보다 넓은 길을 선택한다. 전대미문의 재난 앞에서 한국교회의 무너짐이 심각한 이유가 바로여기에 있다.

 

③ (18절~19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 하박국의 신앙고백이다. 하박국은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메시지성경) ‘나, 하나님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리라. 나의 구원자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뛰놀리라. 나, 하나님의 통치와 승리를 믿고 용기를 얻어 기운을 차리네.’ 하박국의 ‘그 믿음’ 때문이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믿음’, ‘죽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 ‘의의 최후승리를 믿는 믿음’이다. 지금은 비록 쓰디쓴 실패를 당하고 극심한 고난을 만났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우리를, 드라마틱하게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소망을 잃지 않았다. 하박국의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다. 하박국의 믿음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는 이 믿음을 담고 있다. ‘예수를 구주로 삼은 이’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진수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에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 오늘 우리는 하박국 같은 실존을 살고 있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는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회초리다. 매를 달게 맡고 빨리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 지혜다. 재난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지금은 하박국의 믿음이 필요한 때다. 아직 가야할 고난의 길이 남아 있고 아직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맛보며 절망 중에 희망을 노래하며 나가자! 하박국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고 하박국의 찬송이 우리의 찬송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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