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는 곳에 증오는 있을 수 없는거야
 
<화염>, 와즈디 무아와드, 최준호 임재일 옮김, 지만지드라마

목회자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심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인류에게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던 개념이었다. 역사를 보면 인류는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간직하고 살았던 것 같다. 화가 미켈란젤로의 작품 ‘최후의 심판’ 을 비롯해서 수많은 예술작품 안에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나 있다. 사랑과 심판이 공존할 수 있는가? 

성서 요한복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심판이라는 개념과 조금 다른 것이 나온다. 읽어 보면 이렇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요한3,19, 새번역)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 것이 이미 심판이라는 성서의 이 구절은, “악은 선에 맞서는 또 하나의 세력이 아니라 선이 부재한 것이 악이다.” 라는 어거스틴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결국 근원적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선이라는 것 아닌가? 달리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선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그토록 충만하고 강력하다는 것이 아닌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소설(문학분류 상 희곡에 속한다), ‘화염’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한다. 그것도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소설 ‘화염’은 레바논 태생 캐나다 퀘벡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가 10여년에 걸쳐 쓴 4부작 비극 중 두 번째 작품이다. 그의 고향 레바논에서 일어났던 1980년 내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중동의 작은 국가 레바논은 그 수도가 한때 중동의 파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하지만 19세기 레바논은 현대판 십자군 전쟁이라 할 만큼 비참한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인구가 반씩을 차지하는 작은 나라는 쉼없는 종교내전을 겪어야 했다. 전쟁을 부추키는 강대국들이 뒤에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주인공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캐나다에서 레바논으로 길을 떠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부와 또 다른 형제를 찾기 위해서 였다. 어머니는 그 둘에게 편지를 전해달라 했다. 어머니 고향 레바논에서 두 남매는 베일에 쌓였던 어머니의 비참한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내전에 휘말린 그들의 어머니 나왈이 혁명군 전사가 된 것도, 감옥에서 고문 기술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신들이 태어난 것도 말이다. 그리고 남매는 더 큰 어머니의 비밀에 다가간다.

두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 안전한 삶을 살던 나왈은 어느날 발뒤꿈치에 특별한 문신을 한 남자를 발견하고 뛰쳐 달려간다. 실은 그녀에게는 첫째 아이가 있었다. 원수지간이었던 이웃 마을 청년과의 사랑 끝에 태어난 아기였다. 비록 아기는 태어나자 마자 고아원에 보내 졌지만 말이다. 평생 찾아 다녔던 첫째 아들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러나 나왈은 얼어 붙고 만다. 감옥에서 자신을 성폭행 했던 고문 기술자가 거기에 있었다. 아기는 반군에게 넘겨져 소년병으로 고문 기술자로 길러졌던 것이다. 

‘화염’은 그 스토리가 주는 충격과 강렬함으로 인해 영화와 연극으로 많이 만들어 졌다.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영화는 쌍둥이 남매가 자신들의 생부이자 형제인 고문 기술자 남자에게 어머니의 편지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편지 속 어머니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영화는 끝이 나지만 관객 대부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양해를 구하며 마지막을 인용한다.

“이건 고문가가 아니라 내 아들에게 하는 말이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영원히 사랑할거야. 네가 태어 났을 때 내가 해 준 약속이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영원히 사랑할거야. 평생동안 찾아 다녔단다.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너를 알아 보았단다. 잘생긴 아이더구나. 너를 내 사랑으로 감싸준다. 기운을 내거라. 너는 사랑으로 태어 났단다.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너의 어머니, 72번 죄수로부터” 

책장을 덮고도 떠나질 않는 나왈의 대사가 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사랑이 있는 곳에 증오는 있을 수 없는 거야.” 

백광흠 목사(한무리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