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마켓

<래디컬 마켓 Radical Markets>, 에릭 포즈너, 글렌 웨일 공저, 출판사 부키

앞으론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 갈 수 없다고 한다. 석학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대를 ‘軸의 轉換(Future of Everything)’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는 동안 전염병(아테네 역병)을 겪으면서 스파르타에게 전쟁에 지고 만다. 

이런 혼란한 시대(BC 8세기~3세기)에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및 수많은 철학자들이 나타났고, 동양에서도 부다, 공자, 노자 등 여러 철학자들이 탄생하였다. 그러면서 그리스 시대가 지고 로마시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 코로나가 우리를 ‘軸의 轉換’ 상태에 놓이게 하여 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적절한 시스템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차에 래디컬 마켓이라는 책을 마주하게 되었고, 내가 평소 생각했던 것과 맥이 닿아 있는 면이 있어 정독을 하였다. 

래디컬 마켓이란 책의 저자는 세계적 법학자인 시카고대 에릭 포즈너 교수와 프린스턴대에서 1년 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수석 연구원 글렌 웨일이다. 이들은 협업을 통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까지 파헤쳐 보다 공정한 시장과 사회를 재설계하는 매커니즘인 래디컬 마켓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매우 특별한 정치경제사회학 책 <래디컬 마켓(Radical Markets)>을 세상에 내놓았다. 래디컬(radical)는 뿌리(radix)로부터 파생되었다. 그래서 래디컬은 근본적인, 기본적인, 급진적인, 과격하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근본적인 물음과 동시에 과격하고 급진적인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최대 화두는 불평등,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되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상위 1%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대는 8%였는데, 최근 2019년는 16%까지 올라갔다. 또한 세대 간 부의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성장에는 불평등이 따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평등이 커지면 경제 활력이 감소하는 것이 문제이다. 경제 활력 위축을 초래하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다소 급진적인 방법을 제안한 책 ‘래디컬 마켓’을 소개 한다. 저자들은 “불평등 해소와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선 사회제도의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누구에게는 근본적이라기보다 급진적으로 보이는 주장인데 이중에서도 4가지 주장이 눈에 띄어 이를 언급하고자 한다. 

- 공동소유 자기평가제
부에 대한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로서,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가격을 스스로 책정 공표하되 반드시 해당 가격 기준으로 세금을 납부하자는 주장이다. 대신 그 가격 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를 원하는 구매 희망자가 나타날 경우 반드시 해당 부동산을 매각해야만 한다. 너무 싸게 평가하면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너무 높게 평가할 경우 세금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 세제를 통해 소유권에서 사용권으로 새로운 시장질서로 자리 잡으면 투자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고 배분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동 소유 자기 평가제가 도입되면 국민 소득의 약 20%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주장한다. 이 돈의 절반만으로도 미국 국민 1인당 연 5,300달러 기본소득 제공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이는 소득 분배 개선에 통해 불평등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제곱투표제
민주국가는 투표로 중요사항을 결정한다. 그 방식은 대다수가 1인 1표와 다수결제 투표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에 치명적 단점이 있다. 소수집단을 보호할 수 없고 엉뚱한 사람이 인기를 얻을 때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히틀러도 정당한 투표에 의해 선출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제곱 투표제’이다. 매년 국민들에게 일정 크레딧을 부여하되 관심 없는 분야에는 투표하지 않고 대신 관심이 높은 사안에 몰아서 투표를 하게 하는 것이다. 단 크레딧을 투표로 전환하려면 반드시 제곱으로 사용해야 한다. 2표를 행사하고 싶으면 4개의 크레딧을, 3표를 투표하고 싶으면 9개의 크레딧을 써야 한다. 제곱 투표를 하면 개인의 선호 강도를 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열정적인 소수가 무관심한 다수를 투표를 통해 이길 수 있어 다수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다. 저자는 제곱 투표 방식을 정치만이 아니라 집단적 의사 결정 분야에 효과적이며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기관투자자 견제
로마제국 이래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르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바로 기관투자자들이다. 예를 들면, 블랙룩 뱅가드, 피델리티, 스테이트 스트리트 등과 같은 회사들이다. 이들은 미국 주가 시가 총액의 1/4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 주식시장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왜 눈에 뜨이지 않을까? 그들은 분산투자와 패시브 투자를 병행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로 인해 소비자가 인상, 투자와 고용감소, 임금하락 등 산업 전반에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요 기업에 대주주가 되었고, 자기네 이익을 위해 가격 경쟁을 하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사라지면 서비스와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고 임금은 떨어지게 된다. 저자는 “기관투자자들의 산업內 분산투자를 금지하고 산업間 분산만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한 항공사 주식은 원하는 만큼 보유할 수 있지만 대신 다른 항공사 주식은 취득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주식보유상한제를 도입하면 부를 취득할 수 있고 그 만큼 창출한 부가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 데이터 공급가치 인정
데이터 제공에 따른 해택을 받자는 것이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공지능, 머신 런닝 원천인 데이터를 갖고 있는 IT기업들이다. 이들은 귀한 자산인 데이터를 공짜로 얻고 이를 토대로 엄청난 부를 만드는데, 막상 이를 생산한 데이터 생산자인 일반인들이 데이터 생산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데이터 공급 활동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적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균형 시장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데이터 공급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앞의 혁신적(래디컬)인 제안들은 가능할까? 읽는 나도 의문시된다. 이 책의 주장은 매우 도발적이며,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저자들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실천해 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소규모 단위로 제도를 시험해 가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자는 것이다. 이 방법이 새로운 사회로 전환 즉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아니 자본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데 중요한 영감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축의 전환에 의한 공정 사회로의 전환을 꿈꾸어 본다.

김종일(독성학 박사, 비앤에이치웍스(화장품 개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