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적 고독으로부터 배우기

<소로의 문장들>, 박명숙 엮고 옮김, 마음산책, 2020년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확산되기 시작하던 작년 봄에는 사스, 메르스에 이어 거의 5년 주기로 등장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논의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생물학자 중의 한 사람인 최재천 교수의 글과 영상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고, 일반 대중들은 코로나19의 주요 원인이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야생동물 수렵 행위와 매매 및 취식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며 사회적 거리두기 뿐 아니라 생태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및 생태적 전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요구된 제약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거리를 두면서 이전보다 천천히 살아갈 기회를 얻은 듯 했다. 이러한 비자발적인 계기를 통해 사람들은 비인간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인간과 자연의 경계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불분명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대표작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 1854)’을 찾는 사람들이 보였다. 생태주의자, 시인, 작가, 사회비평가, 노예폐지론자 등으로 알려진 소로는 우리나라에서 사랑 받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의 대표작인 ‘월든’은 90년대 초반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된 이래로 2020년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월든 그림책에서부터 필사책, 심지어는 월든을 주석해 놓은 책도 있다. 26개월 간 이어진 소로의 자가 격리 생활이 코로나19로 인한 우리의 상황과 중첩된 것도 있겠지만, 과학기술과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일어난 지금의 한계상황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드러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백신과 치료제의 출시가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언텍트에서 컨텍트로 다시 이동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만반의 준비를 이미 마친 것처럼 보인다. 인류세(Anthropocene)를 초래한 인류의 관성은 생각보다 강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는 생태적인 것에서 성장 중심의 논의로 회귀하고 있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컨택트 종목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그동안 눌러왔던 욕망을 분출할 준비를 벌써 끝낸 듯하다. 약 1년 간 우리 사회가 겪은 어려움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것 같다. 잠깐이나마 활발하게 논의되던 생태담론은 이제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의 인기에 가려져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서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의 가치는 자주 언급되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코로나19의 종식이 아직 확실시되지 않았지만 사회는 과열되고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를 일반화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개인들의 욕망과 실천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냉철한 판단과 성찰을 위한 계기가 부재한 현실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빈약하고 정신적 가르침을 제공해야 할 종교는 시대에 한참 뒤쳐져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종교의 이면이 드러나 이들의 합리성과 도덕성이 평균이하임이 드러났다. 이제는 사회 일반이 종교를 염려하고 걱정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작년 12월에 출간 된, 소로의 글을 엮어 놓은 책 ‘소로의 문장들’의 구성과 내용은 흥미롭다. 엮고 번역한 박명숙 선생은 소로의 글에서 ‘걷기와 여행’, ‘자연과 시간’, ‘삶의 기술’, ‘계절’, ‘단순한 삶과 고독’, ‘우정’, ‘글쓰기 기술’, ‘일과 배움’, ‘시민과 정부’ 관련된 보물과 같은 말들을 모아두었다. “나는 내 삶의 보화를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주고 싶다. 진정으로 나의 재능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다.(234-235)”는 구절은 소로의 소망과 엮은이의 의도를 잘 나타낸다. 이 책을 구분하고 있는 주제만 보더라도 우리 현대인들의 관심사와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성찰이 결핍된 삶을 살아가도록 쫓기고 있으며, 어느 하나 깊이 들여다 볼 여유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소로의 저서들은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소로의 저작에서 힐링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글의 분위기로 인해 일부 독자들은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다른 작품들은 대중에게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소로의 문장들’은 소로의 책과 편지 등 열아홉 작품에서 발췌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엮은 책이라는 성격으로 인해 글의 맥락과 저자의 의도를 놓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로의 통찰력 있는 문장들을 만나 그의 사유 속으로 안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더 크다. 

또 소로의 작품을 읽으며 무심코 지나갔던, 그 당시에는 모르고 스쳤던 보석 같은 문장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소로의 문장들’은 소로를 읽어 본 사람뿐 아니라 아직 소로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좋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소로의 오랜 독자는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며 그의 문장들과 연결된 예전의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며, 소로를 이제 막 접한 사람들에게는 걷기에서 시민불복종에 이르는 소로의 넓은 사유적-실천적 행보를 통해 개인 내면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시민적 가치에 대한 통찰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로의 사유를 통해 현대적 삶의 불안과 소외 너머를 볼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갈망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여 소로의 여러 작품을 섬세하게 읽고 선별하여 번역한 엮은이의 수고와 정성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김신영 박사(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