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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목사의 글을 반박하며
장효진  |  연세대 박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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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2월 10일 (수) 15:29:53
최종편집 : 2021년 02월 10일 (수) 16:04:40 [조회수 : 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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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목사의 글을 반박하며

장효진(연세대 박사원)

 

본 글은 2월 3일 성모 목사의 감신대는 정신차려야 한다」는 글에 대한 일종의 반론이다. 대다수의 목사님들은 서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사유 폭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문제에 더욱 현명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납득할 것이라 믿고 글을 쓴다. 편의를 위해 성모 목사와 같이, 성모 목사의 분류법에 따라 반론함에 양해를 구한다.

 

1. 성모 목사는 글의 서두에서 올해 감신대 정시 지원율이 0.39:1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미달 된 인원에 학비를 곱하고, 또 미달 연수를 곱하면 해마다 12억 원씩 적자를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성모 목사의 셈법엔 따로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셈법이 어떻게 되든 그 문제는 내가 다루려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감신대 동문으로서 모교의 정시 지원율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가슴이 아프고 먹먹할 따름이다. 정말 어머니 감신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런데 이번 미달사태에 대해 갑자기 돈의 논리를 펴는 성모 목사의 글에 조금은 의아함을 느꼈다. 소수의 목회자들은 교인 수가 줄어들 때 줄어드는 헌금을 걱정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모교의 지원자 수가 줄어든 현상에 대해서도 줄어든 수입을 먼저 걱정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했다. 나는 성모 목사가 「감신대는 정신차려야 한다」는 글의 제목에 맞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이리도 한국교회와 신학대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2. 성모 목사는 처음부터 미달사태를 돈의 문제로 생각하기로 작정했기에 우리도 한번 성모 목사를 따라 순수하게 돈의 문제로 교회를 진단해보자. 성모 목사는 감신대의 수입이 줄어들었기에 교수 임용을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또 교직원들의 승진과 그에 따른 임금 상승도 비판한다. 일부 일리 있는 말이다. 그 맞는 말을 교회에도 적용해 보자. 성모 목사의 주장에 따르자면 지금 교회는 교인 수가 줄고, 그에 따라 헌금이 줄고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먼저 담임 목회자의 연봉을 삭감하고, 부 교역자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 이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성모 목사의 주장을 그저 교회에 적용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누구나 교회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교회를 살리는 해법으로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에 사역자 수가 줄어들면 발생하게 될 수많은 문제점을 걱정하며, 사역자 줄이는 것을 교회 살리기 대안이 아니라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할지도 모른다.

 

3. 성모 목사는 학교가 수입이 줄어드는 데 지출을 줄이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학교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교회들에 도와달라고 호소한다고 불평한다. 이에 더해 성모 목사는 신학대학발전기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모르겠다며, 대학을 지원한 교회와 목회자들을 속도 없는 사람인 양 묘사한다.

성모 목사는 시종일관 돈의 문제와 학생 수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다. 마치 소수 목회자들이 헌금 액수와 교인 수에 유독 민감한 것처럼. 그런데 왜 본인의 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감신대를 지원하는 다른 목회자와 교회를 비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본인이 유독 돈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감신대를 지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교의 돈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감신대를 평가할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감신대를 지원하는 동문들의 이유도 다양하다.

학교를 지원하는 목회자들이 순수한 마음이 아닌 교회 돈을 이용해 학교를 상대로 흥정하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그 밖의 학교를 지원하고자 하는 그 뜻과 정성들이 왜 속 없는 행동이 되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4. 이제 성모 목사는 대책에 관해 논한다. 역시 순전히 돈 문제이다. 성모 목사는 먼저 감신대가 연봉상한제를 정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며, 신규 채용자는 다른 연봉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수들 연봉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모 목사의 지적은 언뜻 타당해 보인다. 더구나 위기 상황에는 특히나 더 이러한 질타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돈의 문제만 지적하고 넘어가기에는 본질적인 문제들이 가려진다. 감신대 문제의 핵심은 교수들의 연봉을 낮추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신학 본연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는지에 있다.

대학이 학문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모든 분야를 산학협력단이 장악하게 한다면 그 학교는 명문이 될 수 없다. 순수 학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실용성의 여부와 관계없이 존중하며 지켜나갈 때, 그 대학은 명문으로 도약할 수 있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지 직업 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다. 물론 기업들은 대학에 직업 훈련을 해달라며 장학금을 주기도 하지만 명문대학은 결코 학문 본연의 가치를 져버리지 않는다.

기업들이 산학협력단을 세워 대학에 침투하듯, 목회자들은 대학지원금을 빌미로 감신대에 침투한다. 감신대는 돈이 없어 교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교회는 학교를 지원하는 대신 무엇인가를 학교 측에 요구한다. 그런데 교회는 학문에는 관심이 없다. 감신대가 학문을 연마하는 대학이 되기보다는 직업을 가르치는 일종의 훈련소가 되길 바란다.

신학과 철학, 교육학이라는 매우 오래된 학문을 다루는 우리 대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곳이다. 감신대는 교회에서만 잘 써먹을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세속화 되어 가기만 하는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신학·철학·기독교 교육학의 가치들을 예언자의 정신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우리 대학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모두가 돈을 좇고, 세속의 명예를 좇을 때, 올곧이 한 길을 갈 수 있는 학자, 목회자, 일반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 우리 대학이다.

학생 수, 교인 수가 문제가 아니다. 학교 운영금, 헌금 수입이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감신대와 감리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진정성이다. 우리 대학이 ‘큰 학문’을 한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학교가 인기 없어서 지원율이 떨어졌다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감리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교인 수가 준다고, 헌금이 준다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인기는 순간적인 것이고, 신학과 복음의 가치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세속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신학과 복음의 가치를 지켜나갈 줄 안다면, 우리는 세속에서 인기가 없기에 오히려 멋이 있다.

그런데 성모 목사는 이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감신대와 감리교회가 바로 서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성모 목사에게는 문제의 전부인 듯 보인다. 사람 수가 줄고, 따라서 돈의 액수가 주는 것. 그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과연 신학과 복음의 본질을 붙잡고 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감신대가 위기를 맞이한 것이라면, 그 위기의 근원적인 원인 중 하나는 ‘신학’의 인재들을 배출하는 것에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감신을 졸업한 이들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채 목회자가 되고, 이들은 다시 자신들이 갖지 못한 신학적 소양의 가치를 망각하며 목회에는 신학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합리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감신대와 감리교회가 서로의 신학적 부재를 부추기고, 함께 풀리지 않는 위기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목사 안수를 6개월 만에 받을 수 없다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면, 우리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여러 소양 중 가장 중요한 것, 즉 신학을 충분히 갈고 닦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당연히 목회자가 신학적 소양을 충분히 갈고 닦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모 목사의 감신대를 위한 충정은 이해하겠으나 그가 지적하는 문제와 해법 제시 모두 현재 감신대와 감리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본인 스스로 내포한다. 신학의 부재. 우리 대학을 논하는 성모 목사의 글에는 신학이 부재한다.

 

5. 이어 성모 목사는 감신대의 현재 교원 채용에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서부터는 성모 목사의 저의가 매우 의심스럽다. 성모 목사는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 자기들하고 친한 사람을 채용하려고 별 짓을 다한다”며 일부 세력에 매우 적개심 가득한 말들을 쏟아 낸다. 반면 성모 목사는 “실력이 있는 사람임에도 한 사람만 남아서 추천되지 못하는 일이 두 번이나 벌어졌음에도 고의로 고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또 다른 사람에 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성모 목사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성모 목사는 자신이 실력 있다고 판단한 지원자에 대해서는 감신대가 고의로 그를 뽑지 않았다고 말하고, 자신이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에 대해서는 감신대가 ‘별 짓’을 다해서 뽑은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성모 목사가 감신대 교원 채용 문제와 관련하여 무엇인가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느낌만을 강하게 받을 뿐이다. 적어도 성모 목사의 글이 감신대를 위해 함께 논의를 해보자는 취지의 성격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6. 성모 목사는 이어 이사회를 질타한다. 여기서도 성모 목사는 매우 정치적이다. 성모 목사는 권오서 전 이사장과 박종천 전 총장에 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반면, 현 이사장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다. 나는 성모 목사의 “지난 권오서 이사장, 박종천 총장시절에 했던 컨설팅을 다시 꺼내어 공부 좀 하시라.”라는 주장을 전 이사장과 전 총장에 대한 성모 목사의 호의가 드러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현 이사장에 대한 적대심은 “감사를 이사장이 원하는 사람들 넣으려고 애쓰고, 부결되었으면 포기해야 하는데 다시 또 추천을 하려고 한다”는 말에서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나는 이사회의 문제에 관해 잘 모르지만, 이러한 해석에 근거해서 나는 성모 목사가 애초에 우리 모교를 두고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자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하게 됐다.

 

7. 성모 목사는 감신대 교수진들과 이사진들이 정신을 차리라고, 급속도로 변해가는 교육지형에 최소한도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라고 조언한다. 맞는 말인데 읽고 있자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작 성모 목사 본인은 감신대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을 주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 것인가? 비판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민주주의의 도구이다. 하지만 그 비판이 정치적 의도와 뒤섞여 비판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그 비판은 매우 불건전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교수의 수를 무턱대고 줄이자는 성모 목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장로회신학대학의 예를 보여주고 싶다. 장신대는 비정년직 교수들을 포함해 약 70여 명의 교수들이 신학과를 기반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고, 공부를 마친 동문들에게 여러 자리들을 임시적으로라도 제공하며 연구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나는 학문이란 이런 풍토에서 자라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모 목사의 말은 교회의 재정이 어려울 때 사역자들을 내심 월급쟁이로 취급하며 목회자 수가 많아 어렵다고 말하거나, 부교역자들 월급 먼저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재정 장로를 떠올리게 한다. 돈만 생각하면 일리 있는 말이지만 돈 문제 이면에 있는 모든 목회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재정 장로를 바라보며 생기는 감정이 성모 목사에게서도 느껴진다. 돈 이야기만 하면 교회의 주인 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재정 장로처럼 돈 이야기만 하면 마치 학교의 주인인 것마냥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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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스도의 증인 (101.235.185.184)
2021-02-12 08:18:38
신학교 학생 수도 줄이고 교수도 대폭 줄여야 한다
예산과 돈 문제로 줄이라는 것도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다
신학생을 대폭 줄이고 교수도 왕창 즐여야 하는 이유는
지금이 교부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이는 교회시대에서 흩어지는 교회 시대로 변화되는 시기이다.
지금도 해마다 신학생을 많이 모집하여 더 많은 교수를 세우고
해마다 졸업생을 많이 배출해서 월세 교회만 많이 세우는 한국 교회다,
이런 악순환이 무슨 최고의 선교정책 인 냥 착각 하고 있다.
지금 21세기의 중세 교회 같은 한국 교회는 불필요한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만
우선적으로 내 세우고 있다
지금은 목회자 양육 교회개척으로 모이는교회를 지향하는 선교정책에서 개인적인 증인을 양육하는 흩어지는 교회 정책으로 성숙해져야한다
미래에는 코로나보다 더 나쁜 바이러스 시대가 계속 도래한다고 한다
모이는 교회 정책에서 흩어지는 교회, 개별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증인"을
세우는 데로 전환해야 한다,
증인을 세우기위해 더 많은 신학생 더 많은 월세교회는 불필요하다
개인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증인>이 더 필요한 현실이다.
리플달기
10 2
Dana (68.52.156.157)
2021-02-16 03:27:39
상아탑에 갇힌 신학
이글을 쓴 분에게서 전형적인 상아탑에 갇힌 지식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성모목사가 한 말이 현실적인 분석입니다. 솔직히 목회 현장에 있다보면 신학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신학이 없고 약해서 현재 교회가 위기라고요? 정말 한심하고 한가한 소리하고 있네요. 목회해보세요. 과연 그런 말이 나오는가? 도대체, 신학과 신학대학이 교회와 동떨어진 순수신학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건가요? 차라리 철학에서 신학을 다루시던가요. 교회 떠난 이론적 신학을 이루었다고 합시다. 그것이 교회와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차라리 의학이나 과학은 이론이 발전하고 연구할수록 인류에 도움이 되기라도 합니다. 그런데 신학은요? 말장난인 경우가 너무 많아요. 좀 목회 현장과 교회 현실을 직시하시기를 바랍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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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목사 (101.235.185.184)
2021-02-12 08:30:58
알바목사
놀고먹는 목사
이중,삼중직 목사
선교비로 놀고먹는 목사도 많아요
해외교민 사회 가면 놀고먹는 목사가 왜 이리많은지 ...
호주에도 참 많더라구요
목사 계급장 떼고 생업에 전념하면서 예수의 증인이 된다면
우리 주님께서 더 좋아 하지 않을까?
출교 당할라 말 조심 하그레이~~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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