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법 제도와 일제강점기 형사 재판

(<근대 사법 제도와 일제강점기 형사 재판>, 국가기록원, 2017년)

이 자료집은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하의 사법 제도를 되돌아보기 위해서 발간되었다. 글쓴이는 ‘조선 후기의 사법 제도와 개혁론’을 시작으로, 1890년대 이후 대한제국의 법제 개혁과 일제에 의한 근대적 사법 제도 도입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고찰하고, “울분이나 분노의 감정을 보류하고 냉정하게” 일제강점기의 형사 재판 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부록에 첨부한 관련 법규와 자료들을 통해서, 일제가 ‘법치’를 강조하면서도 조선인에게 실시했던 교묘한 차별 정책의 실상을 밝힘으로써, 학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제가 ‘문명의 혜택’을 베풀었다기보다는 근대적 사법 제도를 통해서 3·1 운동을 탄압하고 조선인의 일상생활까지 구속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평자의 관심을 끈 것은 오늘날 개혁의 대상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 검찰의 뿌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비교의 대상으로서 과거와 타자의 사례를 추적·고찰하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글쓴이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사법 제도는 신분에 따라 매우 불평등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과 사법이 분리·독립되어 있지 않아서 자격 미달의 행정 관리들이 사법권을 남용하거나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물적 증거보다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전근대적인 수사·재판 관행으로 말미암아 ‘고신(拷訊)’이라 불린 고문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원성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사법 제도 개혁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 필수 불가결했고, 개화파의 주요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였지만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개항장에서 영사재판권을 행사하고, 동학 농민군의 재판에도 관여했던 일본은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의 사법 제도 개혁을 주도하였다. 이는 “한국의 사법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적개심이나 저항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제”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서구 열강의 거류민들이 누리고 있던 치외법권을 철폐하는 데에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통감부는 1907년 한국의 법부와 재판소에 일본인 판·검사를 배치하고, 민·형사 소송 절차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고 고문을 폐지하였다. ｢정미7조약｣으로 내정(內政)까지 장악한 일본은 ｢재판소설치법｣, ｢민형소송규칙｣ 등을 제정하여, 3심의 심급제도, 공소시효 제도, 전임 법관 임용을 통한 행정과 사법의 분리 등 근대적 사법 체계의 틀을 마련하였다. 

일제는 일본의 사법 제도를 ‘의용(擬用)’하면서 한국의 사법 제도를 근대화하였지만, “한국인의 문명 수준이 떨어지므로 일본인과 동등하게 취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조선태형령｣ 등 한국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몇 가지 특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예심 제도이다. 이는 예심 판사가 사건을 공판에 회부할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미리 심리하는 제도로서, 검찰이나 사법경찰관이 현행범 등 제한된 경우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강제 수사를 할 수 없도록 하여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 등 수사기관에 예심 판사에 준하는 강제 처분권을 부여함으로써 예심 제도가 원래의 목적인 인권 보호가 아니라 인권 탄압의 도구로 변용되었다.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각종 조서에 예심 판사의 조서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부여하였고, 예심 청구 여부도 검사의 재량에 맡겼다. 게다가 조선에서 검사와 사법경찰은 일본 ｢형사소송법｣ 규정에 의거해서 예심 판사처럼 피의자를 무기한 구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차별 정책의 결과는 자의적이고 불법적인 체포와 구금, 법 조항을 무시한 끔찍한 고문 등 일제 헌병경찰의 폭압이었다. 

갑오개혁의 결과로 1895년 3월 25일 법부(法部) 산하에 처음 설치된 ‘검사국’은, 일제의 식민지배 시작과 함께 각급 법원에 병치되어 식민지 조선에서 법질서를 유지하고 식민지배 체제를 옹호하는 권력의 첨병으로서 역할을 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사에게는 그에 걸맞은 권한이 부여되었는데,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검찰의 몇몇 권한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수사에 관한 강제 처분권, 예심 청구 및 기소 여부에 관한 재량권, 수사 주체로서 작성한 조서의 증거 능력과 같은 것 말이다. 

박윤덕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