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철도원 삼대> 황석영 저, 창비, 2020)

철도원 삼대는 그동안 우리 문학계에서는 빠져 있었던 일제강점기 항일노동운동사를 다룬 서사적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한 노동자의 굴뚝농성으로부터 근현대 백여 년에 걸친 노동운동사의 숨은 뿌리를 소환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공장이 밀집한 영등포 지역에서 전개되는 이이철, 이일철 형제의 항일노동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사를 개괄하고 있어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손자 이진오의 굴뚝농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굴뚝농성장 페트병에 적어 둔 죽은 사람의 현신이 나타나서 옛말하듯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렇게 현재와 과거로 넘나듦을 통하여 지금 굴뚝농성을 벌이는 노동자와 할아버지세대 항일노동운동가들의 활동을 소환 대비하면서 철도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가족의 일상과 고난사를 드라마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일제 시대 철도 공작창에서 설비 수리를 하는 이백만과, 그의 아들인 기관수로 근무하다가 해방후 전평활동을 하고 월북한 이일철, 일찍부터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고 노동쟁의와 항일운동을 하다 옥사한 이이철, 그리고 금속노조의 지도부로서 부당한 해고에 대항하여 굴뚝농성을 벌이는 손자 이진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특히 이백만의 배우자 주안 댁이 죽은 후에도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고 식구들을 챙기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이일철의 배우자 신금이는 시아버지 이백만부터 손자 이진오까지 4대가 다 지나는 동안 온갖 고난 속에서도 든든한 안주인으로서 식구들을 살뜰히 챙기는 한편 이이철과 박선옥 등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을 조용히 지원해주는 모습은 가슴 뭉클했다. 또 일경의 치밀한 감찰과 잔학한 고문 장면 그리고 항일노동운동가의 비밀사수와 접선 과정을 실감나게 자세히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두가지 생각이 겹쳐 지나가서 마음이 불편했다. 하나는 우리는 일제강점기 초반 독립운동사는 어느 정도 알지만, 30년대 이후 후반기 항일무장투쟁사와 항일노동운동사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수많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꽃다운 젊은이들이 산화해 가며 치열하게 일제와 싸웠지만, 당시의 항일운동은 ‘당연히’ 사회주의와 결부되어 있었고, 분단과 냉전과 전쟁의 결과로 남쪽의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조국을 위해 산화해 간 그분들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비극의 역사이다.

또 하나는 최근 아파트경비노동자 실태 분석 및 조직화 지원사업을 하면서 체험한 느낌 때문이다. 근로기준법도 적용 안 되는 경비노동자, 24시간 맞교대라는 전근대적 근무제도, 3개월 초단기계약으로 인한 만성적 고용불안,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임금수준 그리고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의 원인인 경비용역업체의 난립과 경쟁적 최저입찰관행, 비민주적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 일제강점기나 지금이나 말단의 취약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의 다수인 말단노동자에게는 그들의 ‘갑’만 바뀌었을 뿐 노동 수탈구조는 여전하고 그 수법은 더 다양해지고 세련되어졌다.

그래도 작가의 다음 말이 위안이 되었다 “고통의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건은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세상은 아주 느리게 천천히 변화해 갈 것이지만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고 싶지 않다.”

신영배 집사 (평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