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하마의 Friday for Feminism- 다섯 번째 이야기 

질문을 만들면 답은 반드시 있다. -아렌트를 기억하며

최근 독일에서 <경계를 넘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스스로 칭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코로나 통제를 비판하는 우익 단체들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칭했을까?

한나 아렌트는 1961년에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이 전 세계에 생방송 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썼다. 그는 아이히만이 인격장애도 악마적인 인간도 아닌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죄는 바로 <생각하지 않음, thoughtlessness>이었다고 지적한다.

▲ 그림 “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권리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의무다“ 한나 아렌트.

아이히만이 생각이 없었던 사람일까? 도대체 생각하지 않은 인간이 가능하단 말인가? 생각은 사람이 살아있는 한,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우리 생존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는 수많은 유대인을 홀로코스트로 보내는데 최종결정을 했던 고위직 간부가 아니었는가? 

이번 주 초에 한국여성철학회에서 <사랑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세미나를 진행했다. 아렌트가 1929년에 쓴 박사 논문이다. 필자는 발제를 자처했다. 기독교 매체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거스틴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30여 년 전 어거스틴 강독에 참여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주일 동안 꼬박 가슴이 울렁거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려운 책이었다. 당연한듯한 명언들 사이를 한참 헤매다, 결국 나의 은사 선한용 선생님의 <시간과 영원>,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함께 읽으며 생각을 꿰는 실마리를 겨우 찾기 시작했다. “20세기 전반부를 살아온 아렌트는 5세기의 어거스틴을 다시 불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왜 그는 사랑개념에 관심했을까?”, “그의 박사 논문과 <생각없음>을 비판한 것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질문을 만들면 답은 반드시 있다. 질문이 관건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자본주의 팽창이 극대화되던 시대였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했고, 문명인임을 자처했던 제국주의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자원을 도둑질했으며, 여성들을 집에서 노는 가정주부라 부르며, 공장에서, 농장에서 무임금, 저임금으로 부려먹었다. 독일 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는 노동자, 식민지, 여성을 착취해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 그림 직조공의 봉기(캐테 콜비츠, 1895~98) ⑤봉기(스팟 우드 갤러리). 자본가의 집앞에서 달려간 직조공들은 그의 집 문턱도 넘지 못하고 분노하고 있다. 20세기 초의 인간의 삶의 비극을 담고 있다.

이런 식의 제국주의 팽창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야만의 시대를 열었다. 거리를 채운 고아, 부랑자 이야기를 쓴 찰스 디킨즈나,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전쟁으로 자식을 잃고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콜비츠의 작품 속에서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처럼 아렌트가 목격한 것은 이성적인 인간이 전쟁의 야만으로 치닫는 것, 권력가들이 합법적으로 약자들을 등쳐먹는 것. 폭력과 약탈이 삶의 상식으로 통용되었던 세계였다. 

아렌트는 인간의 이성 이야기가 아니라, 어거스틴의 사랑이야기를 가져온다. 태생적으로 사랑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어떻게 불행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20세기 초의 이야기며 지금 우리가 관심하는 이야기다. 아렌트에게 생각함이란 그 시대의 정신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파워와 부유함을 향해 치달으며 양극화되는 사회를 향해 어거스틴의 언어를 빌어 아렌트는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왜 어떤 사랑은 우리를 불행의 악순환으로 몰아넣는가?’ 
‘왜 신을 사랑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이웃사랑으로 귀결되는가?’ 

발표를 맡은 월요일 아침 선한용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밥은 먹었냐?”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마라” 구순을 바라보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어거스틴 관련 발표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폴 틸리히의 조식신학에 나온 어거스틴 부분을 봐야 하는데..”라며 말을 이으셨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줄 치며 공부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어요. 이 어려운 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학생들을 울리고 웃기며 영혼까지 흔드셨어요? 3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대화를 하다니 기적 같아요.” 

어거스틴은 사랑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 대상과 닮아간다고 통찰한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간다는 말이다. 사람을 사랑한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갈수록, 이웃을 사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이웃이란 이방인, 여성, 고아, 타자, 정치적 소수자들이 아닌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어거스틴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다.***

▲ 그림 @ 본헤럴드 , 2018년 선한용교수님의 강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