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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출신 교황 칼리스투스(Callistus) 이야기최초 로마교회 분열 원인 제공자, 노예 출신 감독되자 반대파 다른 주교 뽑아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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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13일 (월) 00:00:00 [조회수 : 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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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부터 로마 주교 정통성 계승 변질 된듯


유세비우스(Eusebius, 263-339년)의 교회사를 약 20년 동안 틈틈히 읽어 오고 있다. 그는 최초의 교회사가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얼마전 이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유세비우스가 로마교회(교구)를 최초로 분열시킨 장본인인 히폴리투스(Hippolytus, ?~236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적지않은 언급을 하고 있으나 그의 반대편인 칼리스투스(Callistus, Callixtus, ?~222년)에 대해서는 짧은 한 문장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회의 전통(전승)은 3세기 초 칼리스투스가 로마의 <주교>[감독]으로 선출되자 이에 반발한 반대파들이 히폴리투스를 로마의 <주교>[감독]으로 뽑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큰 사건을 유세비우스가 몰랐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약 30년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로마에서 두번째로 발생했고, 여기에 대해서는 그가 그의 교회사에서 상세히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이 [두번째] 사건은 로마 <주교>[감독] 코르넬리우스에게 반기를 들었던 노바티아누스(노바티안) 문제를 말한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히폴리투스를 최초의 대립교황(Antipope), 노바티아누스를 두번째 대립교황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유세비우스는 전자와는 다르게 후자에 대해서는 그의 교회사에서 대단히 혹평을 하고 있다. 최근 한스 큉 신부의 ‘그리스도교-본질과 역사’를 읽다가 칼리스투스가 노예 출신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 가톨릭대사전 <//www.newadvent.org/cathen/index.html>
에 Callistus I을 검색하여 그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그가 노예 출신의 교황이었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가톨릭대사전과 전 가톨릭대학 교회사 교수 김성태신부의 ‘세계교회사 I’과 아우구스트 프란츤 신부의 ‘교회사’와 H.R 드롭너 신부의 ‘교부학’과 베네딕도 수도회 아빠스(수도원장) 이형우 신부의 역주 ‘히뽈리뚜스 사도전승’(분도출판사)도 역시 칼리스투스에 대해 다루면서도 고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노예 출신의 교황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필자가 아는 한 천주교회의 뼈아프고 부끄러우며 슬픈 과거를 그래도 제일 솔직하게 고백하는 곳은 독일 천주교회이고 그 다음이 미국 천주교회이다. 이들과 비교할 때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너무 엉성할 뿐만 아니라 수준 미달이다.

<이제부터 미국가톨릭대사전의 칼리스투스 1세의 내용을 번역 요약하여 소개하려고 하니 혹시 오역이나 내용 전달의 오류가 있다면 본보로 연락하여 주기 바란다.>

미국가톨릭대사전은 유세비우스 등의 기록을 인용하여 칼리스투스가 223년까지 5년동안 <교황>[로마 감독]직을 맡은 후 순교자로서 영광스럽게 죽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순교의 증거로서 내세우는 유일한 것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고대문서인 듯 하다. 그래서 한스 큉 신부도 그의 ‘그리스도교-본질과 역사’<409 쪽에서>에서 5세기 이후부터 위조된 순교록들이 로마에서 적지 않게 생겨났다고 말한다. 미국가톨릭대사전도 그가 교황으로 있었던 시기에는 로마 황제의 박해가 일시 중단된 평화의 시기였다고 인정한다.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 제6권 21장에서 칼리스투스가 로마 <주교>[감독]으로 있을 당시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의 어머니 맘메아가 고결하고도 뛰어난 그리스도인이었고, 28장에서는 당시 황제의 집안이 주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의 13년간의 통치 기간이 끝난 후 다시 박해가 시작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칼리스투스가 순교자라는 언급은 결코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에우세비오"(유세비우스) 란에서 "또한 303년부터 재삼 증보되어 325년에 10권으로 완성한 <교회사>는 그리스도교 승리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호교적인 목적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며, 수많은 귀중한 문서. 저서 발췌를 수록, 고대 교회사를 아는 데 없어선 안되는 사료의 보물창고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미국가톨릭대사전은 칼리스투스의 유골이 9세기에 발굴되어 옮겨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그의 신랄한 적들이었던 몬타니스트 터툴리안(<테르툴리아누스.>240년경 사망<추정>)과 최초의 대립교황 히폴리투스의 저작들에서 나오지만 그들의 비방이 아마도 사실들에 기초했을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히폴리투스의 ‘철학총론’에 근거하여 칼리스투스가 로마 황제의 집안의 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카르포포루스의 노예(종)였다고 말한다. 이어서 카르포포루스가 칼리스투스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맡겼는데, 그 돈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과부들이 맡긴 것으로 카르포포루스가 이를 가지고 은행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모두 칼리스투스가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후 칼리스투스가 도망을 쳤고, 그의 주인이 그를 붙잡기 위해 포르투스로 뒤따라갔다고 한다. 거기에서 한 배에 타고 있었던 칼리스투스를 발견한 그의 주인이 조그만 배를 타고 그에게로 접근하니, 그 노예는 바다로 뛰어들었으나 바다에서 붙잡혀 해변가로 끌려갔다고 언급한다. 그리하여 그는 노예들을 위한 형벌인 맷돌 돌리는 노역에 넘겨졌으나, 그가 아직도 그의 명의로 돈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은 (그리스도인)형제들이 그를 풀어줄 것을 호소하여 풀려났으나 그에겐 한 푼도 없는 것이 곧 드러났었다고 말한다.

<지면관계상 내용 소개를 건너뛴다.>

미국 가톨릭대사전은 칼리스투스가 무식하고 문맹이었지만 뇌물로 <교황>[로마 감독] 제피리누스를 사로잡아 커다란 영향력을 획득했다고 밝힌다. 그들은 제피리누스가 신학적으로 정통고대교부 이레네우스의 제자인 유식한 히폴리투스보다 칼리스투스에게 신뢰감을 두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히폴리투스는 칼리스투스를 양태론자라고 비난했고 후자는 전자를 2신론자라고 비난했다고 밝힌다.>

로마교회의 명성과 위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 제5권 28장에서 작자미상의 저서를 인용하여 정통교리가 제피리누스 시대부터 서서히 왜곡되어 왔다고 암시<하려는듯 하다>[하고 있다]. 그러다가 제6권 29장을 통해 로마 <주교>[감독] 파비아누스 때부터 확실하게 정통 교리로 회복되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보인다. 제6권 39장에는 파비아누스가 결국 로마에서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당대 로마<주교>[감독] : 빅토리우스 → 제피리누스 → 칼리스투스 → 우르바누스 → 폰티아누스 → 안테루스 → 파비아누스)

※천주교회는 로마 감독을 모두 ‘교황’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실제 로마 <주교>[감독이]<가> 교황으로 불리운 것은 7세기 이후이다.

필자 주 / 위 글 중 <...>는 교회연합신문 발행인 강춘오가 제 멋대로 내 원고를 삭제시킨 부분이고 [...]는 강춘오가 자기 마음대로 내 원고에 만들어 넣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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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로마황제 집안의 노예였던 그는 여러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신분이 해방되었고 후에 그리스도교에 입교했다. 타고난 관대함으로 성직자와 평 신도들의 절대다수의 지지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223년경 로마의 트레스테베레에서 지역반란이 일어났을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성인은 베드로 이후 최초로 순교한 교황이다. 네이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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