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애도예찬: 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왕은철, 현대문학, 2012년)

“마침표가 쉽게 찍히지 않는 것이, 아니 마침표를 쉽게 찍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애도의 본질이다. 애도는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일지 모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희미해져가는 기억과의 싸움일지 모른다.”(307쪽)

언젠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못미’라는 신조어를 쓰기 시작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의 줄임말이다. 유명연예인들의 인간적인 면모, 굴욕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친근한 이미지를 갖도록 돕는 장치였다. ‘굴욕’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당사자로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있었을 터. ‘진지충’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서는 쿨한 척, 희화화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그들에겐 없었던 것 같다.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에는 무게감이 실리게 되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아니, 누구나 사회와 주변인들의 적절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건강한 사회란 그런 느슨한 연대를 전제로 한다. 안타깝게도, 처참하게 또 억울하게 애먼 일을 당하는 이들이 줄지 않는다. 시민들은 뒤늦게나마 그들의 사연을 접하며 자책한다. 빈소에 방문하거나, 사망현장에 포스트잇으로 비탄과 추모의 메시지를 남기며 애도한다. 우리 사회가 꽤 성숙했다고 체감하는 순간이다. 타인의 고통에 반응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애도예찬>이라는 책을 인상적으로 접한 바 있다. 문학평론가 왕은철이 ‘죽음’과 ‘애도’에 대해 천착한 글을 엮은 것이다. 소설이란 대개 등장인물들이 어떤 사건을 직면하면서, 갈등을 전환해나가는 과정을 담기 마련이다. 극이 절정에 이르게 도와주는 장치 중 하나는 ‘죽음’이다. 위대한 평형장치인 ‘죽음’만큼 인간을 반성하게 하는 것도, 분노하게 하는 것도,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를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죽음’과 ‘애도’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소설들이 주로 소개되어 있는데,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그것이다. <햄릿>은 왕가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비극, 복수극, 이렇게 요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애도예찬>의 접근은 신선했다. 아버지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여기에 주목하니,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버렸다. 그밖에 <애도하는 사람>, <댈러웨이 부인>, <히로시마 내 사랑> 등등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하고 애도하고 비탄의 시간을 보내는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죽음’과 ‘애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양서다.

<애도예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은 자끄 데리다의 명제이다. 진정한 애도는 완성될 수 없다고, 죽을 때까지 이뤄져야 하는 작업이 애도하는 것이라고. 이 말이 참 좋았다. 어떤 정신분열학자들은 고인에 대한 기억을 다 끄집어내기를, 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의 처방을 내린다. 매정하지 않은가. 물론 그런 지점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애도를 거부하는 것, 끝끝내 그를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의 윤리라는 역설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부채의식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탱해주는 것 같다. 기억하자. 애도하자. 희미해져가는 기억과의 싸움, 마침표가 없는 투쟁, 함께라면 가능하다. 

김민호 목사(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