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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기”, “불멸의 다이아몬드”로 다시
김영준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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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24일 (일) 00:09:09
최종편집 : 2021년 01월 24일 (일) 00:10:30 [조회수 : 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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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기”, “불멸의 다이아몬드”로 다시

<불멸의 다이아몬드>, 리처드 로어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년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서른 살 청년이다.(겔1:1) 서른 살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제사를 주관해야 했다. 그러나 성전은 무너졌고 에스겔은 바빌로니아로 끌려왔다. 

“서러운 서른” 청년의 최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도 없고, 일할 공간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에스겔은 스스로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서른 살 청년, 나는 누구인가? 제사장 가문의 후예이기 때문에 여전히 제사장인가? 예루살렘을 떠나 바빌로니아에 우뚝한 마르둑 신전 아래 연명하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가? 보통은 직무와 직위로 자신이 누구인지 판단한다. 직무와 직위로 정체성을 판단한다면, 에스겔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리어드 로어(Richard Rohr, 1943~)는 직무나 직위는 정체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 직무나 직위가 아니라,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성전이 파괴되어 제사를 집전할 수 없지만,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했던 조상들처럼 바빌로니아 하늘 아래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한다. 예루살렘도 바빌로니아도 하늘 아래 아닌가.  

바빌로니아 하늘 아래에서 에스겔은 “가짜 자기”를 죽여야 했다. 제사장 가문의 엘리트 청년이라는 “가짜 자기”를 죽여야 했다. 싸구려 선민의식에 빠져 살았던 “가짜 자기”를 죽여야 했다. 우상과 교합해 아랫도리 비틀거리는 유대인이라는 “가짜 자기”를 죽여야 했다. 온갖 장식으로 치렁치렁한 제사장 옷에 덮인 허울뿐인 “가짜 자기”를 죽여야 했다. 두껍고 무거운 돌벽으로 위장 돼 있던 안보이데올로기라는 “가짜 자기”를 죽여야 했다.

“가짜 자기”를 죽이고, “진짜 자기”로 다시 태어난 에스겔은 환상 속으로 초대된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겔1:1) 환상은 미래를 여는 문이다. 환상은 현실을 극복하는 시작이다.

제사장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은 ‘생물’과 ‘바퀴’였다. “그 생물들은 어디든지, 영이 가고자 하면, 그 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다. 바퀴들도 그들과 함께 떠올랐는데, 생물들의 영이 바퀴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겔1:20) 돌로 지어진 성전 대신 살아 숨쉬는 ‘생물’, 땅에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성전 대신, 그 영기 가고자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바퀴’를 환상 속에 본다. 

바빌로니아에 무너지기 전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적 가치였지만, 이젠 아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은 땅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죽은 공간일 뿐이었다. 환상을 보며 이전에 절대적 가치였던 “가짜 자기”를 다시 확인하고 “진짜 자기”가 되어, 유배된 이스라엘 공동체를 “진짜 자기”로 다시 세워가는 제사장으로 에스겔은 다시 태어난다. 땅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지만, 살아 움직이는 바퀴 달린 성전 같은 사람들이 하늘 아래 어디에나 건축될 것이다.(고전3:16)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에 사는 생명체 중 인류를 정밀타격했다. 방역을 위한 보건당국과 의료진의 헌신,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로 우리 공동체는 이나마 안녕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원시종교로 내몰리고 있다. 신천지 같은 이단의 밀회장소와 BTJ 같은 열광주의자들이 모이는 센터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크고 작은 예배당들이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예배당이 우상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혹은 예배를 빙자한 헌금 수익이 기독교회의 최고신으로 높임 받는 건 아닐까. 욕심으로 세운 우상을 하나님의 복으로 오해하는 우리 “가짜 자기”가 무너지고 있다.

김영준 목사(민들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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