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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에 대한 집행유예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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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23일 (토) 00:00:05
최종편집 : 2021년 01월 23일 (토) 01:14:51 [조회수 : 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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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성악을 시작하기 전 까지는 저도 나름 날씬한 몸매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노래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저의 ‘인격’또한 날로 그 존재감을 더해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성악가들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커다란 덩치는 소리 이전에 무대를 꽉 채우는 힘이 있었고 특히, 머리 크기는 충만한 공명의 상징이어서 남녀 할 것 없이 가뜩이나 큰 머리에 파마를 하고 여자들은 사자 머리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악과 사람들이 모인 음대 언덕을 ‘모여라 꿈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사가 되고 나서도 뱃살이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든 이의 정성 때문에 남는 음식을 아까워했을 뿐 그렇게 식탐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건장하신 아버지와 일 년 사이에 ‘확찐자’가 되어서 어느새 저 보다 더 큰 체구를 갖게 된 중학생 아들을 바라보며 가족력과 대사증후군을 과학적 변명거리로 삼아 보지만 제가 보기에도 좀 과하다 싶은 제 뱃살은 목회자로서 커다란 고민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부목 생활을 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살을 빼서 일 년 동안 10키로 정도를 감량했지만 나이 때문인지 애먼 팔다리만 가늘어질 뿐 뱃살은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요즘도 아침에 양치질을 할 때 세면대나 욕실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거품이 제 배 위에 살포시 떨어지면 또 다시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참상의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우울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합니다.

요즘 사무엘서 새벽 강해설교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설교는 제사장 엘리의 죽음에 관한 장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삼상 4장 18절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강단에서 이 구절을 읽을 때 저도 모르게 양복 앞단추를 곱게 여미게 됩니다. 뱃살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상황인데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 굳이 엘리의 체중 문제까지는 말할 필요는 없진 않았냐고 마음속으로 항변해 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의 집에서 한 베드로의 증언대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십니다. 또한 사무엘상 16장에서 사울 대신 다윗을 택하신 하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여호와께서 보시는 그 중심이 뱃살이 아닐진대 성경은 왜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법한 엘리의 비대함을 걸고넘어지는 것일까요? 그런 억울한 심정으로 원문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사무엘상 2장부터 4장을 관통하는 단어는 ‘카베드’입니다. 앞서 엘리를 묘사했던 ‘비대한’에 해당하는 ‘웨카베드’의 원형 ‘카베드’는 ‘무겁다’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 상태 동사로서 ‘중히 여기다’라는 뜻을 가지기도 해서 삼상 2장 29절에서 “너희는 어찌하여...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라고 엘리를 꾸짖으실 때 쓰이기도 했습니다. ‘카베드’의 파생 명사 ‘카보드’는 ‘영광’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유복자인 ‘이가봇(이-카보드)’의 이름 또한 ‘영광이 어디에 갔는가?’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말로 사무엘상 2~4장을 읽는 사람들은 이 구절들을 읽으며 엘리의 비대함과 엘리의 죄악 그리고 ‘영광’과 ‘영광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의미로 지은 아이의 이름 을 쉽게 연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아이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던 엘리의 ‘비대함’이 하나님의 것을 편취하려 해서‘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의 죽음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취하고자 했고 하나님 보다 자기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뱃살은 죄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뱃살에 대한 무죄 선고로 끝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죄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법이 죄의 실행을 벌한다면 종교는 죄의 원인을 찾아 어루만집니다. 오늘날 엘리와 같이 제사장 역할을 하는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편취하려 들며 자신의 욕망을 살찌우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높은 자리에 서로 오르려 하고 교회 건물과 교인 수, 재산과 멋진 차 등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적인 영화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다 자신의 아들을 더 중히 여겨 세습과 편법적인 목회 대물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셔야 할 교회 더럽히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모두가 엘리의 후예들입니다. 목회만 잘 하면 된다? 아닙니다. 엘리도 오랫동안 나름 제사장 직무를 잘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고 해서, 당장 심판 받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익숙해져 동조하거나, 두려워 묵인하거나, 절망해서 교회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죄 없다 여김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전 교회로 커다란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잘 알려진 한 목사님의 화보집이었습니다. 고급지고 두꺼운 종이에 올 컬러로 된 것으로 제가 본 그 어떤 책보다 비싸보였습니다. 내용은 더 화려했습니다. 자신의 공적과 여러 행사 사진, 그리고 사모님과 동행하여 세계의 관광 명소를 여행한 사진들로 가득했습니다.

신대원 첫 학기 때 유명한 원로 목사님이 갑자기 학교에 오셨습니다. 모든 교수들이 반강제적으로 수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담당 교수님의 그 무력하고 절망스럽고 비굴했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학원생들이 세미나실에 모였습니다. 더 깊은 가르침이 있다면 그나마 좋았을 것인데 그 자리에서 그 목사님은 본인이 사관학교에서 무개차를 타고 사열을 받는 영상을 신학대학 대학원생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너희들도 나 같이 목회하면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영광의 그리스도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무르셨건만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르는 모범을 보여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 엘리 일가와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있으니 이야 말로 ‘이가봇’이라 탄식할 일 아니겠습니까? 아이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엘리에게 전해졌듯이 순수하게 교회를 사랑하고 진리 안에서 깨어 있는 하나님의 작은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준엄한 진노와 새로운 희망이 선포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뱃살에 대한 완전한 무죄 선고는 아닐 것입니다. 이 지겨운 타락상을 견뎌 내기 위해서라도, 절망하지 않고, 저항하고, 참된 교회를 이루어 가며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저 스스로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들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뱃살은 무조건 빼고 볼 일입니다. 그래서 저의 뱃살에게 준엄한 선고를 내립니다.

“유죄! 죄 값은 이미 니가 받고 있으니 다 빠지는 그날 까지 집행유예에 처한다.”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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