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월 6일은 주현일이다. 새해와 함께 찾아온 주현일은 온 그리스도교 교회가 함께 지키는 축제일이다. 이날부터 주현절(Epiphany)이 시작하는데, 사순절이 시작하는 성회수요일 전날까지이다. ‘주현’으로 옮긴 라틴어 ‘에피파니’는 ‘epi’(upon)와 ‘phaino’(show)가 합쳐진 말로, 나타남(appearance) 또는 현현(顯現)이라는 뜻이다.

주현일의 주인공은 단연 동방박사들이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의 신분을 페르시아 출신 매기(Magi)라고 하였다. 동방에서 온 그들 덕분에 “서양 사람들은 종교를 연구(Study)하기를 좋아하고, 동양 사람들은 종교를 살기(Live)를 더 좋아 한다”는 말을 더 실감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별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길을 떠났고, 마침내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였다.

유대인도 모르는 ‘유대인의 왕’을 경배한 동방박사들에 대한 뒷이야기가 성탄절을 거듭하면서 전설처럼 반복되고 신화같이 포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고대 세계에서 별을 헤아려 징조를 분별하려는 시도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하였다.

베들레헴에는 예수가 태어난 동굴 위에 세운 탄생교회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주후 324년에 베들레헴을 순례한 후 건축한 것이다. 탄생교회는 510년 대지진과 사마리아인의 폭동으로 타버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531년 두 번째 교회를 세웠다. 그 후 온갖 전쟁 통에도 불구하고 무려 1500년 가까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범하면서 모든 교회를 허물 때, 벽에 그려진 자기 조상들의 모습을 한 동방박사를 보고 오히려 참배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력 다이어그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두 개의 사이클로 그린다. 탄생과 관련해 ‘대림절-성탄절-주현절’이 전반기 주님의 반년이라면,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 ‘사순절-부활절-성령강림절’은 후반기 주님의 반년으로 부른다.

주현절의 시작은 언제나 1월 6일로 고정되었지만, 사순절의 출발은 부활일에 따라 이동하기에 주현절기는 해마다 변해 4주간부터 9주간까지 들쑥날쑥하다. 주현절의 시작 주일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고, 마지막 주일은 예수님의 산상변화를 기억한다. 이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드러낸 방식과 배경은 강과 산처럼 다양하다.

헨리 나우웬은 주현절을 가리켜 “사랑과 마주친 계절”이라고 고백하였다. 교회력에서 주현절은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의 세상을 방문하셨다는 소식이다. ‘주현’은 마치 신년에 왕이 지방을 순시하듯,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따듯한 심방을 맞이하는 날인 것이다. 주현절은 다름 아닌 인간의 구분과 조건을 넘어서 찾아오신 하나님의 현재인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계시(啓示)하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이해하였다. ‘이 세상의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나님’(고전 1:21)을 자기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성경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주현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는지를 살펴보는 때이다. 바로 내 삶의 가장 작은 영역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아는 풍성한 지혜에 이르기까지, 그 믿음이 나날이 자라나고 성장하는 절기인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현현이 갖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