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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동반자, 목사와 장로들에게...
오재영  |  ojy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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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14일 (목) 01:50:22
최종편집 : 2021년 01월 14일 (목) 13:51:39 [조회수 :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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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에서 객기부리는 이들...

여러해 전 삼남연회의 어느 미 자립교회 목사께서 감독회장에 입후보하여 많은 이들의 口舌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를 폄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문에는 신도들도 전혀 없는 감리사직도 감당키 어려운 교회로 단지 장정(章程)에 제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거액의 공탁금까지 준비하여 후보등록을 했다. 

그 후 주변의 권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선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해프닝으로 끝이 난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 인하여 속칭 문 0 0 법이라는 미 자립의 線이 입법으로 확정되어 오늘까지 감리사와 감독, 감독회장의 자격까지 제재를 받는 법제화가 됐다. 어쨌든 그 사건은 교단에 속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함께 시사 하는바가 컸다. 비단 교회만이 아닌, 역사가 증명하듯, 발전하지 못하는 조직의 구태의연함은 예나 지금이나 그 행태에 전혀 변화가 없다. 

헤겔(Hegel)의 표현대로 “인간은 歷史에 대하여 기록 할 줄만 알지 그 역사에서 배울 줄을 모른다.” 성숙이 무엇인가? 성숙의 표시는 나쁜 행위를 식별하고 인정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때로 깊은 생각과 준비가 없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실패와 시련의 깊은 수렁에 빠졌을지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아픔까지 소중한 경험으로 알아 더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보완하는 재건의 과정에서 그에 따르는 고통까지도 받아들일 겸허한 자세를 소유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가 겪은 그 실패의 아픔은 과연 헛된 것들일까?

또다시 지난 감독과 감독회장의 선거결과에 대하여 불법을 외치며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선거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으나 감독이나 감독회장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원하는 그 聖職에 대하여 어떤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등장을 하였는가? 오늘 이 위기의 시대에 원하는 그 職이야말로 본인 개인의 名聲을 위함이 아닌,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온 몸과 영혼을 관제와 같이 부어드려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러므로 본인이 원하는 그 직은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과 신분상승(身分上昇)이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자리여서는 안 된다. 그동안 남다른 은혜로 살아온 그 은혜를 사역의 마지막 정점에서 교단을 위하여 낮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빚 진자의 심정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 섬김을 뒷받침 할 만 한 준비와 함께 격에 맞는 신앙적 인품(人稟)을 갖추고 출발해야한다. 동시에 본인들이 선출되므로 교단의 위상과 더불어 교단 안에 속한 130여만의 성도들과 1만 여명의 선, 후배 동역자를 비롯하여 1만 5천여 명의 평신도지도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이라야 한다. 지난 선거에 등장한 이들에게 이러한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도대체가 식사는 모르겠으나 거론하기도 불편한 ‘봉투’는 무슨 소리며 본인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대부분 함량미달의 인사들로 자기 속한 연회의 감독지위에 오르기도 쉽지 않은 한낱 신앙의 객기(客氣)에 지나지 않는 모습들이다. 이들의 이러한 착각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선거의 부정을 논하는 이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하나같이 선교의 대상들인 이교도들에게 들려질 소문의 두려움을 모르는, 오직 보이는 대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앙인으로서의 가장 소중한 본질의 문제에 관하여는 백치에 가까운 이들로. 이제는 설득하기도 버거운 허욕과 오만에 도취되어 시대적 변화는 물론 역사에 귀먹고 눈멀어 독선과 아집에 매여 있는 이들이다. 그리 될 리도 없으나 혹여 본인들이 지지하는 이나 본인들이 그 자리에 오르면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가? 모두가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가엾은 이들이다.  

평신도 지도자들인 長老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도대체가 신앙의 연륜이 얼마인데 그리 변화들이 없는가? 모여서 후보자들과 교단의 미래에 대한 변(辯)을 듣고 간단한 식사든 다과면 끝이지 봉투는 무슨 말인가?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설령 건넨다하여도 그 손을 보는 즉시 정중히 충고하여 바로잡지 못하고 뒤에 돌아 義를 빙자하여 고발의 대열에 참여하는가? 참으로 이런 인사들이야말로 교단 발전의 암적(癌的) 존재다. 이러한 장로들이 千이되고 萬이되면 교단이 발전할까? 아니다 오히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가도 새듯, 교단 위상을 추락시키는 추태(醜態)만 늘어날 것이다. 즉시 그 손과 발걸음 들 거두라 본인들이 섬기는 교회와  관계된 이들과 미래 자녀들의 영혼을 위하여... 

 

오늘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상황.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광풍으로 지구촌 모두가 위기라며 모든 이들이 생존의 위협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도 편향된 이념과 아마추어의 국가 經營에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이 넘쳐나는데, 그들에게 소망을 제시해야할 우리의 사역의 현장조차도 지금 초토화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오늘의 역병(疫病)의 위기는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조짐이다. 역병의 前과 後가 나누어 질것이며, 과거 극심한 가뭄에 生水근원의 우물은 존재하나 건수(乾水)에 의존하든 모든 우물들이 차례로 생수의 근원 우물 외에는 모두가 소멸되듯, 그동안 순수한 복음에서 벗어나 이데올로기의 理念을 따르든 모든 거짓 것들이 자신의 부름 받음이 확실하여 올곧게 말씀을 따라 그 길을 걸어온 이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모습들은 너무도 참담하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신학교와 교수들, 정원에 미달되었다며 재차 모집하는 신학교. 이러한 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는 과정은 전혀 어려운길이 아니다. 일반 삼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실력으로 필요한 과정만 거치면 누구나 손쉽게 자기구원의 확신과 자기부인(自己否認)없이도 목사라는 이름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목사라는 직분에 맞는 그 길을 따름은 누구나 아무렇게나 갈수 있는 길이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부르신 주님께서 앞서가신 그 十字架의 길을 자기 죽이는 삶으로 채워가는 목사만이 가능하다. 지금도 여전히神學校를 졸업하고 제도권 안수를 받기만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교회와 교단의 미래는 더욱 암담할 뿐이다.

 

존재하는 목사, 소멸되는 목사...

이제 우리는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자기스스로 이 위기의 시대에 주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스스로에게 진솔한 물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왜 목사로 살고 있는가? 누구의 필요를 위하여 이일을 하는가? 하나님의 필요를 위함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의 필요에 따른 자신의 유익 때문인가? 지금 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목사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것을 위한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하나님과 목사직을 이용하고 있는가? 나에게 목사직은 여전히 召命인가, 아니면 내가속한 가족의 가장된 책임을 위함인가, 그도 아니면 이 직위를 이용하여 나의 세속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신 유월절 전날 밤 이제 날이 밝으면 왕이 되리라는 착각 속에 미래 자신의 지위 때문에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고 경계하는 한심한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신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弟子인줄 알리라...” 오늘 우리들의 이 모습들을 보고 이교도들이 예수님의 弟子라 할까? 사도바울도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몸을 불사른다 하여도 그에게 사랑(愛)이 없으면 그것은 한낱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고 하셨다. 지금 그 사랑의 메마름이 문제다.

누구도 본인들에게 감독이나 감독회장에 등장하라 손잡아 끌고 등 떠밀어낸 이들 없건만 스스로 등장하여 갖은 미사여구(美辭麗句)동원하드니 이제는 교단의 위상을 허무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추태들을 부리고 있다. 이 모습들이 그동안 숨겨놓았던 본인들의 민낯인가? 자신들의 행위에 따르는 주님의 공의와 심판을 안다면 이쯤에서 그 위선적인 행동들을 중단하라 그것이 그나마 본인이 남은 세월 그런대로 사는 길이다. - 마라나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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