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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한국교회의 갱신-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황병배  |  교수(협성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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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12일 (화) 17:41:06
최종편집 : 2021년 01월 12일 (화) 17:54:55 [조회수 :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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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한국교회의 갱신

-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황병배 (협성대학교 교수, 선교학)

 

   
 

한글초록

본 논문은 코로나 19의 충격 속에서 코로나 19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면서 쓰였다. 코로나 19로 인한 현 상황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끝난다 해도 인류는 ‘포스트 코로나’ 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스스로 갱신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를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코로나 19의 확산과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을 서술하고, 전통교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교회론으로서의 선교적 교회론을 요약한 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갱신해야 할 영역을 8가지로 제언하였다. 그것은 1)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2) 예식으로서의 예배에서 삶으로서의 예배로; 3) 연역적 전도에서 귀납적 전도로; 4)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5) 개교회주의에서 공교회 연합으로; 6) 시공제약(時空制約)에서 시공해방(時空解放)으로; 7) 이원론적 사고에서 통전적 선교로; 8) 군중에서 선교사로의 전환이다. 이 8가지 영역이 성공적으로 실천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한국교회에게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I. 들어가는 말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 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11일 팬데믹(pandemic, 감염병 세계유행)을 선포했으나 9월 27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33,306,001명, 사망자는 1,007,410명에 달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약 30여만 명의 사람들이 새롭게 확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더 강력한 변종들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소멸은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어쩌면 이제부터 인류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바이러스와 동거해야할지 모른다.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은 인류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만 해도 ‘비대면’(untact) 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모일 수 있었고, 여행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서나 ‘집합금지명령’이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고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 간 이동도 크게 위축되어 인산인해를 이뤘던 공항은 한산하기만 하다. 마이너스 성장이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불과 9개월 만에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의 경제지표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경제전문가들은 올해 각국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고지하고 있다. 큰 경기장에 관중 없이 하는 스포츠 경기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상점에 들어갈 때 마다 체온을 측정하고, 본인의 연락처를 기록하고, 정보제공에 동의해야만 하는 작금의 현실을 누가 꿈이라도 꿨겠는가! 실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의 경제, 정치, 기술, 문화, 의학, 과학, 교육, 종교 등 모든 영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으로 중세 봉건경제가 무너지고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인류는 또 한 번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새로운 시대의 문턱 앞에서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이 모든 환난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그것이 지나간 자리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코로나 이후,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의 새로운 선교 환경을 준비해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막2:22),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며 먼저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 그러한 갱신의 노력이 있을 때 교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수행해야 할 갱신의 영역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먼저 2장에서 코로나 19의 확산과 한국교회의 위기문제를 살펴보고, 3장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대안적 교회론으로서 선교적 교회론을 요약한 후, 4장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갱신해야 할 영역을 8가지로 제언하고자 한다.

 

 

II. 코로나 19의 확산과 한국교회의 위기

 

코로나 바이러스는 입자 표면의 돌기형태가 크라운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라고 명명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동물과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로 공식적으로는 2019년 12월 30일 중국 우한 중심병원에서 처음 보고 되었는데 주변 국가들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 북 남미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다. 결국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emic)을 선포하고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이 바이러스의 대 유행을 막기 위해 협력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양한 변종을 일으키며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 되었고, 이로 인해 전 세계 모든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의학, 종교 등 모든 영역이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지난 9개월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가히 전 지구적이고 전면적이고 파괴적이었다. 국경이 폐쇄하거나 외국인의 입국을 거부한 국가들이 생겨나고, 실업자들이 속출하고, 폐업하는 상점들이 크게 늘어났다. 윤홍식은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종종 1930년대의 대공황 혹은 2008년의 금융위기에 비교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수요하락이나 자본, 자원, 노동의 공급부족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감염병이라는 단일한 요인이 정치, 경제,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19 이전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의 위기를 ‘대봉쇄’(The Great Lockdown)라고 했고,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도 대폐쇄(The Great Shutdown)라고 명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2020년 세계경제성장률을 –3%로 전망했고, 미래학자들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세계 각국의 자국중심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제이슨 셍커(Jason Schenker)도 그의 책,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직업, 교육, 에너지, 금융, 통화정책, 재정정책, 부동산, 농업, 공급망, 미디어, 국제관계, 국가안보, 정치, 리더십, 여행 등 모든 영역에서 코로나 19 이전과는 다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일상에서는 비대면(untact)과 부동성(immobility) 등 과거에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것들이 표준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지난 9개월 동안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큰 도전을 받아왔다. 종교집회가 금지되고, 대그룹 예배는 물론 소그룹 모임도 봉쇄되었다. 성전(聖殿)의 현장성(現場性)이 크게 약회되면서 교회 출석인원이 현저히 떨어졌고 비대면의 일상화로 지역교회의 전도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전멸 수준에 이른 개척교회들이 부지기수이고 교회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해외선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교회의 재정악화로 선교사 후원이 갑자기 중단되거나 선교지가 폐쇄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조사에 의하면 해외체류 선교사 중 41.3%가 선교후원금이 줄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이동이 쉽지 않아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들이나 선교지에 남아있는 선교사들이나 거의 감금수준에 놓여 있다.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위기감과 패배의식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신천지가 코로나 19 전파의 숙주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교회와 국민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이단 신천지를 비판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이단성이 결국 사회문제를 일으켰다고 비판했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전 국민에게 민폐를 끼친 신천지 집단의 폐쇄성과 이기적 집단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탁지일 부산장신대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단들의 사회적 역기능 노출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19와 신천지 문제로 인해 분출된 국가적 차원의 염려와 분노는, 포스트 코로나 19(Post Covid-19) 세상에서의 이단예방과 대처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신자들은 교리는 잘 몰라도 신천지와 우리 동네 교회는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조치로 신천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산되던 코로나 19 사태도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 했다.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검사방법과 신속한 검사결과 및 철저한 관리체계는 많은 나라 지도자들과 의료 전문인들의 칭송을 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나왔지만 그 수는 50명대 이하로 충분히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확산 되기 시작했다. 특히 개신교회들의 대면예배를 통해 집단 감염자들이 연속적으로 나오자 한국 언론들은 개신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꼭 현장 예배를 강행해야 하는가’라는 논리였다. 물론 개신교회들 중에는 빠르게 비대면(온라인)예배로 전환한 교회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교회들은 대면예배를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독교 보수 단체들을 중심으로 광화문 집회와 전광훈 목사가 담임하는 사랑제일교회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들이 나오게 되었고 이들의 행태가 신천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이면서 개신교회 전체가 지탄받기 시작했다. 불신자들은 ‘개신교회와 신천지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제일교회 및 여타 개신교회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19가 빠르게 재확산되자 정부는 교회들의 대면예배를 전면 금지하고 비대면 온라인 예배만 허락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로 인해 전국의 지역교회들은 다시 한 번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III.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론: 선교적 교회론

 

선교적 교회에 대한 담론은 1970년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으로부터 시작되어 데럴 구더(Darrell Guder) 등 일단의 북미신학자들을 거쳐 세계적인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2000년대 초 부터 선교적 교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이 관심을 받게 된 이유들로는 1) 한국교회의 심각한 정체와 쇠퇴; 2) 교회의 세속화; 3) 교회의 양극화; 4) 교회의 게토(ghetto)화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최근에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한국의 모든 교회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금지명령 등으로 대면모임 자체가 제한되거나 불가능해지고 전통교회의 한계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선교적 교회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교회중심에서 하나님나라 중심으로,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건물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직자 중심에서 하나님의 백성 중심으로, 과거 양적성장과 개교회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에 기초한 교회와 선교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먼저 지역사회를 선교지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지역사회에 하나님이 교회를 보내셨음을 믿는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 공동체이고,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통해 통전적 선교사역을 수행하며 이를 위해 성도들을 군중에서 사역자로 훈련시켜 세상(지역사회)으로 파송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적 교회론은 전통교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한 번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예고하고 있다. 다음은 선교적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필수 요소들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림1] 선교적 교회의 7 핵심요소

   
 

 

IV.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제언

 

최근 한국 개신교계 8개 언론사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종교별 신뢰도 변화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63.3%가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가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특히 ‘더 나빠졌다’는 응답 대다수가 19~29세(72.6%)의 젊은 세대와 학생(72.6%)들이었다. 반면, 불교와 가톨릭에 대한 신뢰도는 이전과 “비슷하다”는 응답이 각각 86.8%, 83.0%로 나타나 코로나 19로 인한 개신교의 신뢰도 저하가 심각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응답자들의 74%는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개신교의 대응이 잘못되었다고도 답했다. 이는 개신교 교회를 중심으로 확진자들이 잇따라 나오고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집회 등 보수 기독교 단체에 대한 불신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전쟁 직후에도, 군부독재 시대에도, 그리고 70년대 가파른 경제성장 속에서도 교회는 늘 억압받는 민중들, 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런데 이제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염려와 근심이 되었다. 지역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교회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갱신해야할 영역은 무엇인가? 연구자는 이 질문에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다음 8가지로 답하고자 한다.

 

1.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를 에클레시아(ecclesia)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부름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가 강조되어 온 것이다. 이것은 교회 중심적 교회론으로 교회가 모든 것의 주체로 여겨진다. 선교의 주체도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도 교회와 동일 시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들이 곧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교회이고, 그 교회가 곧 천국이고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이런 교회 중심적 교회론은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주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모이는 교회를 강조하다 보니 교회의 외형적 사이즈는 커졌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성도들의 질적 성장은 양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질적성장이 양적성장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제자훈련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총동원 주일 혹은 새신자 초청주일 등 일회성 전도행사에 치중하다 보니 등록만 하고 실제로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름만 교인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이것은 최근 사랑제일교회가 정부에 제출한 교인명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사랑제일교회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교적상의 교인수와 실제 출석 교인수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교단의 공식적인 통계조차 믿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만큼 허수가 많다는 의미이다.

또한 교회의 게토(ghetto)화도 문제이다. 지역마다 교회들이 수 십 혹은 수 백 개 일지라도 지역사회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교회들은 많지 않다. 지역 주민들의 눈에는 교회는 전도는 하지만 지역사회에는 관심이 없는 매우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것은 교회와 지역사회의 단절을 가속화시키고, 단절이 가속화될수록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소통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19의 방역에서 한국사회는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비대면 예배로 전환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그러나 교회는 예배는 반드시 모여서 대면으로 드려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다가 교회 발 집단감염이 늘어나고 정부가 강제로 대면예배를 전면 금지하자 그제야 어쩔 수 없이 비대면 예배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로부터의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반면 가톨릭이나 불교는 정부의 강제조치가 있기 전에 먼저 선제적으로 대면모임을 금지하거나 자제하면서 개신교와 다른 길을 갔다. 결과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신교의 신뢰도는 추락한 반면 가톨릭이나 불교의 신뢰도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교회의 게토화는 지역사회의 요구를 거절하고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모이는 교회’를 강조하면서 양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흩어지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 볼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Being called)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Being sent)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교회 안에 갇혀있는 군중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보냄받은 선교사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 즉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 안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 교회와 세상의 담은 사라지고 교회는 비로소 지역사회를 위한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역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 겉은 화려하지만 텅 빈 예배당만 있는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이는 교회’에서 지역사회 이웃들 속으로 ‘흩어지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본회퍼의 주장대로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예식으로서의 예배에서 삶으로서의 예배로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 소통하는 장(場)이다. 이를 위해서 예식(ritual)도 필요하고 만남의 장소(place)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예식과 장소를 교회건물 안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께 예배 장소에 대해서 물었을 때, 예수는 장소가 아니라 심령의 문제가 중요함을 가르치셨다(요 20-24).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진정한 예배는 형식적인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다(사1:13-17). 따라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이 진정한 예배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없는 예식은 공허할 뿐이며 하나님께는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사1:14).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성전으로서의 교회건물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중요시 해 왔다. 주일예배를 비롯해서 모든 공적인 예배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 왔고, 그런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이번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타 종교들이 대면예식을 일시 정지하거나 연장했을 때에도 개신교회가 대면예배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그분은 교회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교회 밖 세상 어디에든 계시는 분이다. 그분은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예식으로서의 예배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교회 밖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삶으로서의 예배도 기뻐 받으시는 분이다(롬12:1) 이번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을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정직하고 신실한 삶이었다. 폴 스티븐슨(Paul Stevens)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나머지 6일 동안의 세상에서의 삶이라고 했다. 세상에서의 6일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성전 안에서의 예배가 의미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영적 제사가 되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 왔는데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그것이 더욱 심화되었다. 한국교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예배를 교회건물 안에서 드리는 예전으로만 국한한다면, 그리고 삶으로서의 예배를 등한시 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

 

3. 연역적 전도에서 귀납적 전도로

복음전도는 주님이 주신 명령이다(마28:19-20). 그러나 그 방법은 상황에 맞는 적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조지 헌터(George Hunter)는 전도의 방법을 ‘연역적인(Deductive) 방법’과 ‘귀납적인(Inductive)방법’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전자를 ‘로마식 전도법’, 후자를 ‘켈트식 전도법’이라 불렀다. 연역적인 복음전도는 ‘복음선포→영접→수용’의 순서를 따른다. 즉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그 중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을 교회공동체가 수용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귀납적인 복음전도는 ‘관계형성→대화와 사역→믿음과 헌신으로의 초청’ 순서를 따른다. 즉 먼저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사역하면서 구도자의 질문에 응답하고 서서히 교회공동체로의 헌신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따른다. 위의 두 방법 중에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와 환경과 사람의 수용성(receptivity)에 따라 어떤 방법이 더 적합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코로나 19 이전에는 성도들이 자유롭게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복음을 듣고 영접한 사람을 교회로 초청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길거리에서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전도지를 나눠주던 과거의 일상이 이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연역적인 방법보다는 귀납적인 방법이 더 적합한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복음을 듣는 사람의 수용성(receptivity)도 복음을 전하는데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복음의 수용성이란 복음을 받아들이는 정도를 뜻하는데 그것은 개인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에 의하면, 복음의 수용성은 어떤 큰 변화를 경험하거나 충격을 받았을 때, 혹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될수록 높아진다. 즉 복음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으면서 우울증과 무기력 등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의 수용성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복음에 귀 기울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방법이 그들에게 적합하지 못하다면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비대면(untact)과 부동성(immobility)이 뉴노멀(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노방전도 같은 연역적 방법보다는 관계전도 같은 귀납적 방법이 더 적합할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직장, 학교, 마을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불신자들을 우선적으로 전도하되 전화, 인터넷, SNS 등 비대면 통신매체들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4.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선교의 주체는 교회인가, 하나님인가? 교회가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선교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교회 중심적 선교를 해 왔다. 교회가 선교지를 개척하고,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가 선교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너무 교만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만한 교회는 지역사회 안으로 성육신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겸손히 낮춰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다(빌2:5-8). 세상의 낮고 천한 자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셨고,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다(엡5:23-25). 따라서 교회는 그분과 같이 겸손히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되고 세상 밖에 존재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공동체로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선교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성부가 성자를 보내심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오늘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고 계시는 것이다(요20:21).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종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참여자(participant)요 대리인(agent)이다. 즉 “교회는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특수한 도구이다.” 이것을 인지할 때, 교회는 겸손해질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겸손한 교회공동체를 찾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필요를 외면한 채 교회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집단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과 함께 하는 겸손한 공동체를 원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육신의 자세를 가지고 지역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5. 개교회주의에서 공교회연합으로

개교회주의는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이루는데 공헌한 면도 있지만, 교회들의 연합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으로도 작용해 왔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최종목표는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마6:10).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백성들의 공동체로 개체교회의 양적성장이 그 존재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더 큰 하나님의 나라(통치)를 위한 비전을 함께 공유하면서 견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개신교는 가톨릭과 달리 수많은 교단과 교파들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늘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물론 개신교 특성상 신학에 따라 서로의 입장이 다를 수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일제에 항거해서 만세운동을 일으켰을 때, 한국교회는 타종교와도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개신교 내 타 교단이나 교파들과 연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번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방식도 가톨릭이나 불교와 달리 개신교는 신학과 개체 교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다보니 자중지란(自中之亂)처럼 보여지고 신뢰도와 사회적 영향력은 더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만약 지역교회들이 평상시에 개교회주의를 탈피하고 연합을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면 이런 위급 상황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도영은 한국교회가 공동체성과 공교회성과 공공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공동체성이란 개체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들 간의 연합을 뜻하는 것이고, 공교회성이란 지역교회들 간의 연합을 의미하고, 공공성이란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연합을 뜻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개교회 안에서의 공동체성은 강하나 교회들 간의 공교회성이나 지역사회 안에서의 공공성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항상 지역사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한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긴박한 요구와 사회적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응답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를 벗어버리고 공교회연합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6. 시공제약(時空制約)에서 시공해방(時空解放)으로

코로나 19 이전에 교회의 사역과 활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제약들이 매우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이것은 과학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과거 90년대 한국교회는 케이블이나 위성을 이용해 영상예배를 도입하고 지교회 정책을 강화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형교회에 국한되었다. 방송시설에는 많은 자본과 전문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케이블TV 방송이 허용되고 더 많은 교회들이 방송을 통해 예배와 설교실황을 방영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 교회 교인들이 아니어도, 특정 교회에 가지 않아도 누구나 기독교 케이블TV를 통해 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거나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라디오와는 달리 시청자들이 화면을 통해 현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장의 생동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다. 또한 이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기독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대형교회와 유명 목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역교회들이 공평하게 수혜를 받지는 못했다. 방송 송출에는 많은 경비가 소요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소형교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이 활성화 되면서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예배와 설교를 송출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스마트 폰 기능의 발달로 누구든지 자신의 설교를 전 세계 불특정 다수에게 송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예배 시간과 장소에 대한 제약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전 세계 어디서나 언제라도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이 연결되는 곳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을 수도 있고, 자신의 설교를 송출할 수 도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코로나 19를 지나면서 우리는 이것을 실감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조치로 지역교회들의 예배가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성도들은 교회에 나올 수 없게 되었지만, 대형교회 소형교회 구분 없이 인터넷 혹은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교회의 예배와 설교를 송출하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적은 경비로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 혹은 시청이 가능할 뿐 아니라, 설교자와 시청자들 간의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 대형교회들의 위성TV 혹은 케이블 TV방송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교육계, 문화계, 산업계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물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고, 공연이나 전시회도 유트브(youtube)를 통해 방영되며, 자동차 전시회나 모델 하우스도 인터넷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도 굉장히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이것은 게임, 의료, 교육, 문화 영역에서 특히 적극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상현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상 세계에 접속하여 실제 세계에서처럼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증강현실은 실제 존재하는 현실 공간에 홀로그램 등 가상물체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모두 시공간과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현실의 모든 대상 뿐 아니라 가상환경의 모든 대상들과도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가상현실/증강현실도 산업, 문화, 군사, 교육, 종교 등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역교회가 교회건물 안에서의 현장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것이며 예배, 제자교육, 기도회 등 각종 종교 활동도 온라인에서 가능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국 개신교 8개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불신자들 가운데 67.8%가 교회들의 온라인 종교활동에 찬성했고, 응답자 중 개신교인들도 66.1%나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온라인 매체를 통한 종교 활동이 더욱 가속화되고 보편화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이전에 예배 시간과 장소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코로나 19를 지나면서 비대면 예배가 보편화되고 사람들은 구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모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신의 형편에 맞춰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아무 때나 영상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다. 점차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대되고 보편화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과거 시공제약의 시대에 머무르지 말고 시공간이 해방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예배, 기도회, 제자훈련 등 과거에는 반드시 대면(tact)로 했던 과정들을 비대면(untact)으로 전환하거나 둘을 병행해서 시도할 필요가 있다.

 

7. 이원론적 사고에서 통전적 선교로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는 한국교회의 신학을 대표하는 두 흐름이다. 에큐메니칼은 교회의 대 사회적 책임과 사회구원을 중시하는 반면, 복음주의는 개인구원과 복음증거를 강조한다. 에큐메니칼이 사회개혁과 사회참여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인구원과 복음전도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면, 복음주의는 개인구원과 복음전도에 집중하다보니 사회참여와 사회개혁에 소홀히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이 둘의 간극이 많이 좁혀졌다. 우리는 이것을 로잔대회나 WCC의 선언문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21세기 기독교 선교신학의 전체적인 흐름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선교를 탈피하고 이 둘 모두를 하나로 포괄하는 통전적인 선교(holistic mission)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통전적 선교는 영적인 요구 뿐 아니라 정의, 평화, 평등, 분배, 자유, 정의 등 각종 사회적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답한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19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교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자기중심적이고 성장중심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크고 화려한 교회건물들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와 필요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진실된 모습니다. 그것은 지역사회와 단절된 교회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러한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복음전도냐 아니면 사회참여냐의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 둘 모두를 하나로 포괄하는 총체적인 선교에 매진해야 한다.

 

8. 군중에서 선교사로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들은 교회 안의 군중으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은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는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초대교회에는 ‘평신도’라는 개념이 없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laos)로 서로를 받아들였다. 단지 기능상의 구분(functional distinction)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교회의 일을 전적으로 맡은 사람을 성직자(kleros)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평신도(laikos)로 나누게 되었고, 이것이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계급처럼 고착되었다. 즉, 소수의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다수의 피지배계급인 평신도들로 구분된 것이다. 이것은 존재론적인 구분(ontological distinction)으로 초대교회 때의 기능적 구분(functional distinction)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였다. 존재론적 구분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체성 자체가 다르다고 보는 것이고, 기능적 구분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같으나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기능’(function)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까지 교회 안에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성직자 그룹과 그렇지 않은 평신도 그룹이 극명하게 구분되었다. 비록 루터가 만인사제론으로 평신도를 해방시킨다고 했지만, 수천 년 동안 이어온 교회제도가 한순간에 바뀌기는 쉽지 않았다. 진정한 평신도의 해방은 신학적 해방이나 제도적 해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사에 따라 사역을 함께 나눌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통교회는 평신도를 군중으로 남겨둔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군중을 시역자로 만든다. 여기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제자훈련과정’이다. 이 훈련과정을 통해 군중으로 남아있던 평신도들이 사역자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으로 나가 은사를 따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적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장기간 사회적거리두기와 집합금지명령이 지속됨에 따라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 가운데 군중으로 남아 있던 사람들은 신앙이 약해지거나 신앙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제자훈련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제자훈련도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 등 비대면 통신수단을 이용한다면 효과적인 제자훈련이 가능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일반 교육영역에서도 비대면 교육이 보편화될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비대면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강화된 제자훈련과정을 통해 더 강건한 제자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산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한국교회에는 소망이 있을 것이다.

 

 

V. 나가는 말

 

본 논문은 코로나 19의 충격 속에서 코로나 19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면서 쓰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과거 팬더믹(pandemic)을 불러왔던 전염병들의 기록을 보면, 흑사병(1346-1353년)은 8년동안 약7500만~2억명, 스페인 독감(1918년) 때에는 1년동안 약2~5천만명, 홍콩독감(1968년) 때에도 1년동안 약 100만명이 사망했다. 이를 볼 때, 코로나 19로 인한 현 상황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끝난다 해도 인류는 ‘포스트 코로나’ 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정체의 길에 들어서서, 2000년대 초부터는 그 수와 영향력에서 심각한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던 중, 코로나 19를 만나 그 쇠퇴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예배, 교육, 친교, 사역, 소그룹, 전도, 타문화권 선교 등 어느 것 하나 침체되지 않은 영역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 따라서 본 논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스스로 갱신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를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코로나 19의 확산과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을 서술하고, 전통교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교회론인 선교적 교회론을 요약한 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갱신해야 할 영역을 8가지로 제언하였다. 그것은 1)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2) 예식으로서의 예배에서 삶으로서의 예배로; 3) 연역적 전도에서 귀납적 전도로; 4)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5) 개교회주의에서 공교회연합으로; 6) 시공제약(時空制約)에서 시공해방(時空解放)으로; 7) 이원론적 사고에서 통전적 선교로; 8) 군중에서 선교사로의 전환이다. 이 8가지 영역이 성공적으로 실천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한국교회에게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 본 논문은 '선교신학'(제60집)에 발표한 논문임

<이 게시에는 원문의 각주를 생략했음을 알립니다 -당당뉴스>

 

주제어

 

코로나 19,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 갱신, 선교적 교회, 하나님의 선교. 통전적 선교

COVID 19, Post-Corona, Korean Church Renewal, Missional Church, missio Dei,

Holistic Mission

 

Abstract

 

 

Advent of the Post-Corona Era and Renewal of the Korean Church

- From the Perspective of Missional Ecclesiology

 

Hwang, Byungbae

(Professor, Hyupsung University)

 

This paper was written while looking forward at the post-corona era amid the impact of COVID 19. Even if COVID 19 is over, human society will not be able to easily return to what it was before COVID 19. Rather, we will face the challenge of a new era called ‘Post-Corona.’ Therefore, the researcher studied what areas Korean churches should renew themselves for the post-corona era from the perspective of missional ecclesiology. To this end, first, the researcher described the spread of COVID 19 and the crisis situation of Korean churches, summarized the missional ecclesiology as an alternative ecclesiology that can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raditional churches, and then proposed eight areas that Korean churches need to renew for the post-corona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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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un.com/site/ data/html_dir/2020/07/06/2020070602583.html (2020년 9월 14일 접속).

“사랑제일교회 확진자들 도주, 난동, 무단이탈 잇따라.” <한겨레> (2020년 8월 20일자). 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58630.html (2020년 9월 18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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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1-01-13 00:40:16
非대면예배敎를 만들어 대면예배敎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면 군중이 환호할 것이고, 허구헌날 대면예배 씹어봐야 군중의 욕설만 더 커질 것인즉 그대들이야말로 한국기독교의 역적이다!
기독교인 중 대면예배를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비대면예배를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기존예배방식에 탈피한 가나안모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非대면예배교를 만들기 싫으면 차라리 가나안모임이나 가져라. 가나안모임은 기존 기독교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자기 방식의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

죽어도 대면예배가 좋다는 사람을 왜 갈구나? 정 대면예배가 싫다면 대면예배는 그냥 내버려두고 비대면예배모임을 가지든지 따로 독립하든지 깨끗하게 할지어다.

예를 들어 절에서 목탁을 치는 데 목탁을 치지 않는 교파가 생겼다고 치자. 그러면 목탁 치지 않는 새교파에서 목탁 치는 기존절을 ‘사이비’로 모는 건 옳을까? 석가모니가 목탁 치라고 한 적이 있는가? 이런 걸로 상대를 비방하는 건 옳지 않다. 목탁 여부로 부처의 가르침을 판단한다면 本末이 顚倒된 것이다. 목탁, 非목탁으로 싸우게 되면 주위에서 손가락질 한다. 목탁, 非목탁 따지는 데 학~~을 떼서 부처가 저 멀리 가버리겠다.

마찬가지로 대면예배, 非대면예배 따지는 데 학~~~을 떼서 예수가 저 멀리 가버리겠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갑자기 非대면예배가 화두로 등장했다. 非대면예배면 어떻고 대면예배면 어떤가? 로마카톨릭에서 독립한 동방정교, 곱트교... 등등에서 보듯이 대면예배 보기 싫으면 非대면예배敎로 독립하면 된다. 무엇 때문에 대면예배 드리는 데 남아서 非대면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코지를 하는가? 이런저런 논리를 갖다 붙여서 대면예배 헐뜯으면 글쓴이가 우려하는 기도교 唾罵현상이 줄어들까? 오히려 글쓴이가 기독교 타매현상에 불을 지른다고 생각 들지 않는가?

非대면예배敎를 만들어 대면예배敎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면 군중이 환호할 것이고, 허구헌날 대면예배 씹어봐야 군중의 욕설만 더 커질 것인즉 그대들이야말로 한국기독교의 역적이다!

가나안모임보다도 용기가 없는 무리들이 자기들이 이때까지 몸담고 있었던 교회에 대해 주위에서 손가락질 한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과 합세하여 이상한 논리로, 어제까지만 해도 대면예배에 대해 “아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기존교회에 침을 뱉어?

일본천황이 힘이 세지니 그 무신 논리를 갖다 붙여 “천황폐하 만세!” 한 선배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볼 줄이야! 무한폐렴 관련 군중의 함성이 세지니 여기에 아부하여 그 무신 논리를 갖다 붙여 “非대면예배 만세!” 하는 용비어천가나 부르다니! 대면예배 드리는 사람 갈구지 말고 그냥 독립해라!

그대들이 떳떳하게 독립하여 비대면예배의 정당성을 입증함으로써 기존 대면예배 드리는 사람들의 큰 코를 납작하게 해주길 바란다. 그외는 다 부질 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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