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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의 왕이 빛으로 오셨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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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09일 (토) 23:23:58
최종편집 : 2021년 01월 10일 (일) 14:55:22 [조회수 :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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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9장 1-4절

평강의 왕이 빛으로 오셨다

 

가. 평강의 왕이 빛으로 오셨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 본문은 메시아가 빛으로 와서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한다는 말씀이다. 성경은 빛과 어둠의 싸움이 하나님 나라 운동의 기본양식임을 보여준다. 창조이야기는 하나님이 빛을 만드셔서 혼돈과 공허와 짙은 흑암 가운데 있었던 땅을 보시기에 좋게 만드신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빛과 어둠의 싸움은 세상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평강의 왕이 빛으로 오셨다.

* 이 예언의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의 선포를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시작하셨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마4:14)을 이루려는 행보였다.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예언된 메시아라고 분명이 밝히셨다.

* 예수님은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하늘의 빛이시다. 요한은 그를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하였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이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본문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과 후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의 인류의 희망이다.

 

나. 어둠의 세력에 굴복하면 안 된다.

1절,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아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본문에서 흑암은 악한 세력에 의해 고통 받는 상황을 말한다. 그래서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 흑암이 없으리로다”라고 하면서 흑암과 고통을 연계시켰다. 물론 빛과 어둠은 선과 악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악의 세력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을 다룬다.

* 스불론과 납달리는 외세에 정복되어 지파의 순수성도 지킬 수 없었다. 주권을 빼앗긴 땅은 곤핍하게 되었고 폭력과 무법만이 판을 치고 있었다.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했던 말을 참조하라. 예수님은 이렇게 서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땅에서 빛을 비추는 사역을 시작하셨다.

* 악한 세력은 백성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세력에 동조해도 안 되고 굴복해도 안 된다. 악한 세력에 동조하여 함께 약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악한 세력에 굴복하여 체념해도 안 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말을 참조하라.

 

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기대하라.

3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 성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기대하고 악에 맞서 싸워야 한다. 여기서 ‘창성하게 하다’(사역능동)와 ‘즐거움을 더하게 하다’(사역능동)는 세상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그의 뜻에 따라, 그리고 그의 능력에 의해 아름답게 된다.

*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기대하는 성도들은 악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빛을 들고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한다. 어둠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빛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빛을 발해야 한다. 이사야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라고 하였다. 이처럼 빛을 발하며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다.

* 본헤퍼는 히틀러의 폭정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던 독일에서 어둠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시 ‘선한 능력으로’에서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라고 하였다.

 

라. 빛이 충만한 곳은 영화롭게 된다.

1절b,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 하나님의 빛이 충만한 곳에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충만한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된다. 그리고 어둠의 세력에 의해 고통을 받던 백성들이 무거운 짐을 벗고 평강을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꺽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다”(4절)라고 하였다.

* 하나님의 빛은 어둠을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 즉 예수님의 정신이 어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2:18).

* 하나님의 빛으로, 예수님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곳에 평화가 찾아온다. 여호와의 전의 산 ‘시온’(치욘, 빛)에 빛이 있어야 평화의 마을 ‘예루살렘’에 평화가 있다(미4장 참조). 교회와 성도가 빛이 되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참 평강을 회복되게 한다. 빛이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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