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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시대 플라스틱 빼기(<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양철북)
유미호  |  ecom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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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06일 (수) 16:52:54
최종편집 : 2021년 01월 06일 (수) 16:54:11 [조회수 : 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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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시대 플라스틱 빼기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양철북)  
  
   
 
세상이 풍요한 탓에 세상이 쓰레기가 넘친다. 플라스틱이 연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소비를 허락하지 않는다. 더구나 1인 가구와 언택트 소비의 증가는 온 세상이 쓰레기라는 재앙 앞에서 플라스틱 중독을 염려하게 하고 있다.
 
어디서 온 것들일까? 쓰레기를 들여다보면 일회용이거나 오래 쓰기 힘든 것(싼 게 비지떡),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끼어온 것(과대포장), 다른 이에겐 쓸모가 있을 것(잉여물품)을 욕심으로 구해서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필요를 넘어선 소비가 낳은 것들이다. 특히 플라스틱이 심각한데, 생산된 것의 70%가 그냥 버려져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도전장을 낸 가족이 있는데, ‘나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란 책을 쓴 산드라 가족이다. 이들은 ‘플라스틱 행성’이란 영화를 보고, 다소 무모해 보이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 도전한다. 막상 시작하고 막막해하는 모습은 플라스틱에 깊이 의존해 있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기독교 환경(교육)운동의 길을 30년 걸어오면서 몇 차례 붙잡았다가 이내 내려놓았던 과제가 비닐 플라스틱 문제였다.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어 ‘없이 살아보자’ 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생태적 관점에서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해도 그 의지와 상관없이 불합리에 빠질 위험이 가장 커 보였다. 
 
그러나 산드라 가족은 달랐다. 비닐봉투와 페트병 정도 안 쓰면 되겠지 생각했던 결심이, 집안 가득 쌓여있던 플라스틱 제품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비닐 포장제품이고, 유리나 스테인리스 그릇조차 뚜껑은 플라스틱인 것을 알았을 때는 포기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힘든 면도 있었지만 손수 살림을 하면서 플라스틱을 줄였고 알맞은 것들을 찾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었던 건, 함께 하는 가족과 삶의 지혜를 나눠준 이웃들이 있어서다. 
 
“단지 포장이 종이냐, 비닐이냐 하는 게 문제가 아냐. 그런 물건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생활방식의 문제다”라는 친구의 조언으로 보듯, 이들의 2년간의 실험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단지 자신들 앞에서 플라스틱을 치우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시큰둥한 주변 사람까지 건강과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며 바뀌게 했다. 한 가족의 플라스틱프리(Plastic-Free)를 향한 날갯짓이 처음엔 다섯 명이 일으킨 바람이었지만, 지금은 그에 자극받은 이마다 적잖은 플라스틱 거부 물결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는 새와 바다 생명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스스로 플라스틱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왜냐면 플라스틱은 신앙적으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창 3:19)’ 생명의 순환과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사는 것(요 10:10)’을 가로막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재활용되는 것이니까 분리배출하면 되지’ 하면서 계속 쓴다면 ‘필요’ 이상의 것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한’ 것을 탐하는 것으로, 우리는 물론 지구를 더 심한 고통 중에 신음하게 할 것이다. 
 
코로나와 긴 장마 때문인지 하나뿐인 지구가 더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렸음을 직감한다. 에너지, 식량, 물, 물자 등 모든 것을 끊임없이 소비해서 버리려고 하는 소비중독증, ‘어플루엔자(Afluenza, 풍요를 뜻하는 'Affluent'와 감기 바이러스를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 신조어) 때문이다. 
 
시급히 치료해야 한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는 늦는다. 완전한 치료가 아니어도 된다. 조금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조금 내려놓으면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에 다가설 수 있다.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너무 크다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신 말씀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조금 덜어내자. 그저 쓰레기일 뿐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는 낡은 물건이 있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관심을 두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다시 관심을 주고 사용해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치유력이 높아져 진정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이 얼마나 주어져야 충분할까?” 오랫동안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필요를 알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는 질문을 바꾸었다. 필요를 제한하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비록 답이 늦더라도 제대로 답하게 되면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혹자는 “대형 승용차가 아니라 존중이, 옷이 가득한 옷장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자 장비가 아니라 인생을 가치 있게 할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체성, 일체감, 공동체, 도전, 인정, 사랑, 즐거움. 마음과 영혼의 풍요로움 등.
 
신축년 새 마음으로 시도해보자. 완벽할 필요 없다. 그냥 함께 길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나님 지으신 모든 생명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함께 누리는 것이 목적이니. 마음속 깊숙한 곳에 심어두신 거룩한 씨앗에 이는 작은 울림이면 족하다.
 
일회용부터 하나씩 줄이고, 작은 정원(텃밭)을 가꾸며 ‘살림’의 마음을 키워가 보자. 내 가까이에서 식물의 이름을 10가지 이상 알게 하는 것,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의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지구와 우리의 면역력을 키워줄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넘쳐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로 함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고통을 느낀다는 건 회복으로 가는 좋은 신호이다. 설령 지금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고 있더라도 ‘자신이 쓰고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머잖아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 믿는다. 오늘 필요하지 않은 것을 찾아 서서히 이별을 연습해보자. 어느 날 꼭 필요한 것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사는 나 자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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