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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는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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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1월 05일 (화) 23:59:21 [조회수 : 5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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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는 적어도 6,000년 이전부터 고대 남아메리카인들에 의해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현재 고고학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와 석기에 묻어있는 전분입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연구한 결과 카리브해 남단의 바하마에서 페루의 북서지방에 이르는 지역에서 고추가 재배되었으며, 에콰도르가 가장 오래된 고추 재배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아메리카의 고추를 유럽으로 전파한 최초의 사람은 콜럼버스이다. 1492년 원주민이 재배하고 있던 고추를 후추라 착각한 콜럼버스는 그것을 유럽으로 가지고 돌아갔다. 그 후 20년이나 지난 뒤에야 그는 그것이 후추와 다른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후나 토양을 가리지 않는 고추의 특성과 후추보다 매운 맛 때문에 고추는 유럽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한편, 동남아시아나 동아시아에도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통해 고추가 도입되었는데, 콜럼버스가 가지고 돌아간 남미산 고추는 동아시아에서도 재배되기 시작한다. 

현재 아시아에 고추를 소개했다고 주장하는 두 나라가 있다. 스페인은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중심으로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에 고추를 소개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포르투갈은 아랍과 인도, 일본에 먼저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소두 개 나라가 아시아로 고추를 전파했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해진 것은 언제일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담배, 호박과 함께 도입되었다는 설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일본이 조선에서 고추를 가져왔다는 기록도 있다.

고추가 우리 문헌에서 최초로 나타난 것은 광해군 6년(1614년)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이다. "남만 후추에는 커다란 독이 있다. 왜인들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들여와서 왜겨자라고 한다“는 말과 함께 고추를 재배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고추는 일본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에 왜겨자라 불렀으며 당시에는 아직 요리에 사용하기보다 소주에 넣어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커다란 독으로 불리던 왜겨자는 서서히 보급되어 1715년에 저술된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남초(南椒)라는 이름과 함께 재배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왜인들은 번초(蕃椒)라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왜초(倭草)라 한다“고 했고, 1766년 유중림이 엮은 <중보살림경제>에는 ”고추 가운데 짧고 껍질이 두꺼운 한 품종이 있어서 이것을 특히 당초(唐椒)라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1850년경에는 이규경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 권10 <번초남과변증설>에는 번초, 고초, 남만초 등의 명칭과 도입경로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담배, 호박과 함께 도입되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다수의 문헌에는 고추가 오히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로부터 일본으로 전래되었다고 나와 있다. 임진왜란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장수였던 가또 기요마사가 조선에서 이 고추를 가져왔다고 한다. “고추는 예전엔 없었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선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고려후추라고 부른다”고 기록했다. 대마도에도 1604년 조선에서 고추가 전래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일본 내의 기록이 다른 건 당시 일본이 통일국가가 아니었기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발발 100여 년 전의 문헌인 <구급간이방>에는 한자 (초)椒에 한글로 ‘고쵸’라고 매우 선명하게 나오고, 1527년에 발간된 <훈몽자회>에서도 고추가 딸기, 머루, 고욤, 감, 달래, 오디, 매실과 함께 고쵸초(椒)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고추장의 역사도 길게는 임진왜란 발발 750년 전인 850년에 발간된 <식의심감>, 1433년에 발간된 <향약집성방>, 1460년에 발간된 <식료찬요>에서 고추장(椒醬)이라는 표현을 해놓은 기록도 나오고 있음을 밝혀냈다. 순창고추장(淳昌椒醬)이 전국에 유명하다는 표현이 이미 1670년대 이후 문헌에서 나오므로 초장은 고추장임에 이의가 없다.

김치에 고추가 쓰인 것은 결구형 배추가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무렵이다. 하지만 그 당시 김치는 지금처럼 붉은 것은 아니었다. 고추가 값싼 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재료 격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 고추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어지면서 배추 사이사이에 양념들이 가득한 양념형의 김치가 완성되어졌다.

조선전기에 발달하던 한식은 조선 후기에 더 발달하는데 그 큰 역할을 고추가 담당한다. 1800년경부터 고추가 식재료로 일상식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1900년대 초에 나온 조리서를 보게 되면 일상식에서 탕이나 국이나 찌개류에 고추를 사용하는 빈도가 60%이상이 되고 또한 고추를 말려서 실고추처럼 가공해서 사용하는 방법 또한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보면 일제 강점기 매운탕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의 양보다 지금 매운탕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의 양이 두배 정도 된다. 지금과 같이 매운맛을 추구하는 것은 상당히 나중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강렬한 매운 맛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이렇듯 고추의 전파에 관한 다양한 학설과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누가 고추를 전해주었느냐가 중요하진 않다. 고추가 이제 한국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잘 먹는 청양고추는 1983년 유청웅박사에 의해 개발된 고추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운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다. 일본인이 쓴 <조선개화사>에는 “조선인을 독살하기 위해 고추를 일본인이 가져왔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일본인하고 체질이 틀려서 오히려 그 맛을 즐기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우리는 매운 것을 즐겨먹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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