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스팸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12월 15일 (화) 23:44:30 [조회수 : 482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뉴욕에서 부목사로 있었던 때 기억나는 권사님 한 분이 있다. 교회의 관리부장을 하셨던 전 권사님이시다. 은행원으로 은퇴를 하신 전 권사님은 매주 마다 평일날 하루를 교회에 출근하셔서 교회의 이곳저곳을 수리하시는 봉사를 하셨다. 인상좋고 유머있으신 권사님께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스팸이라고 말씀하시며 스팸 한통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는다고 했다. 나 또한 흰쌀밥에 잘 구워진 스팸 몇 조각이면 밥 한그릇 뚝딱 해치웠기에 그분의 스팸사랑에 충분히 공감이 갔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스팸은 ‘싸구려 통조림 햄“일 뿐이었다. 실제로 고기가 너무 저렴하게 판매되었기에 굳이 햄을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스팸을 두 번째로 많이 소비하는 우리나라처럼 스팸이 인기가 있지 않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명절 때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고급스럽게 포장된 스팸 선물세트가 엄청나게 판매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스팸은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스팸은 미국 호멜사에서 1937년 7월 5일 처음 출시되었다. 호멜사의 창업자는 조지 호멜이다. 미국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했던 조지 호멜은 1891년 미네소타 주에 있는 도시, 오스틴에 조지 호멜 컴퍼니라는 육류가공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후에 조지 호멜의 아들 제이 호멜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배우면서 회사의 부사장이 된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1917년 제이 호멜은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상의 이유로 입대를 미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고 있던 미네소타 출신 중 가장 먼저 지원 입대하여 프랑스에 있던 미 육군 88사단 351보병연대의 병참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장교생활을 하면서 제이 호멜은 군수품으로 보급된 고기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고기 안에 뼈가 있어 크기가 크다 보니 혼자 들기도 힘들고 수송에 매우 불편함이 있을 뿐 아니라 여름에는 상온에 잠시만 노출되어도 고기가 상해버린다는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고기에서 뼈를 분리한 후 잘게 다져 상하지 않게 통조림형태로 보관하는 방식으로 가공한 군수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옮기기도 쉽고 상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대 후 제이호멜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고 이 통조림 사업을 시작해보려고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그런데 통조림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비싼 고기를 넣자니 팔기가 힘든 것이었다. 통조림을 비싼 돈 주고 먹을 바에 그냥 고기를 먹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햄을 만들고 남은 부위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럼 단가도 낮아지고 남기는 고기도 없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뼈를 분리하는 과정이 복잡한 돼지 어깨살, 지방이 많이 붙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부위 등 맛은 있지만 팔리지 않는 처치 곤란 부위들을 모두 넣고 갈아버린 후 지방의 산화를 막고 향미를 높여주는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한 뒤 향신료를 넣은 ‘호멜 향신료 햄’(Homel Spiced Ham)을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매력 없는 이름 때문인지 잘 팔리지 않자, 이 햄의 이름을 짓기 위해 100달러를 걸고 콘테스트를 열게 되었는데 호멜 컴퍼니 임원, 랄프 데이누의 형제였던 배우 ‘케니스 데이누’가 스파이스드 햄(Spiced Ham)을 줄여 ‘SPAM'이라는 이름을 제출하게 되는데 이 이름이 최종 채택되며, 1937년 7월 5일 스팸(SPAM)이 공식 출시된다,

1937년 처음 공개된 스팸은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맛에 먹기 좋은 분홍빛까지 띠어 금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더구나 다른 고기 요리들과 달리 미리 양념이 되어 있고 간단히 열만 가하면 먹을 수 있으니 호응이 컸고 특히 저소득 계층에게는 값싼 고기를 맛볼 수 있었으니 더 인기가 많았다.

스팸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였다. 당시 미국은 영국에 무기와 탄약, 식량 등 어마어마한 양의 보급품을 원조하고 있었다. 미국은 제이호멀의 예상대로 고기를 보급하길 원했고 그것도 보급이 쉬운 고기를 원했다. 당연히 스팸은 미국의 어떤 회사보다 보급이 쉬운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기에 미국의 보급품으로 안성마춤이었다. 값싸게 고기를 맛볼 수 있었고 심지어 지방이 많은 부위였기 때문에 열량도 높아 군인들의 체력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스팸을 모든 미군 장병에게 보급하기 시작한다.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은 독일 해군의 잠수함 작전 때문에 제대로 식량을 공급받기 어려웠다. 특히 독일 해군은 영국을 둘러싼 해협에 잠수 함대를 풀어 놓고, 영국으로 가는 연합국 측의 보급선을 닥치는 대로 격침시켜 영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미국은 비행기로 영국에 대규모로 물량을 공급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팸이었다. 처음에는 좀 낯설어했지만 영국인들은 이내 스팸에 맛에 빠져들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이 있는 유럽, 태평양전선 등 모든 곳에 스팸을 비롯한 식량이 보급되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도 미군이 들렸다 하면 스팸이 전파되었다.

이때 호멜 컴퍼니는 일주일에 1500만 톤의 고기를 동맹국으로 수출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스팸이었다. 1944년까지 호멜 컴퍼니의 통조림 식품 90%이상이 전투식량으로 출하되고 1945년 초까지 모든 호멜식품의 65%가 유럽과 태평양 전쟁에서 전투식량으로 소비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생산된 스팸이 양이 무려 1억 3천 3백만 개 정도였다.

전쟁 후에 군에 보급된 많은 스팸의 물량은 미국 내에 풀리게 되었다. 엄청난 양의 스팸이 미국 본토에 쏟아진 것이다. 안 그래도 싼 가격이 더 폭락해 헐값이 되어버렸고 미국에서는 싼 고기에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인식이 완전히 박혀버리게 되었다. 미국에 이렇게 많은 스팸이 공급되었던 탓에 스팸은 지나치게 많고 무분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스팸메일이라는 단어도 여기서 유래되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6.25전쟁 때 미군이 스팸을 가져왔다. 이때도 양 조절이 실패해 스팸을 엄청나게 갖고 왔는데 당연히 많은 양이 남게 되면서 주변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한국군이 나눠먹게 되었다. 스팸을 몰랐던 한국인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고기라고 스팸을 부대고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팸과 쌀밥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고 단숨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한 1950년대 국민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미군부대가 전부였을 정도였으니 한국인에게 스팸의 의미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본 제일제당은 1986년 3월 미국 호멜사와 제휴를 맺고 1987년부터 스팸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팸을 명절용 선물세트로 기획하여 판매했는데 출시 첫 해부터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은 500톤이 판매되며 대박상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97년 IMF 이후 부터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맛있는 ‘고기’를 선물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명절선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오늘날 한국인의 밥도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차대전때 군인들이 먹고 남은 스팸캔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다. 먹고 남은 수많은 통조림 캔은 참호안 바닥에 깔아서 비온 후 열악한 참호안 환경을 개선하였고, 스팸에 충분히 포함된 기름을 피부에 발라 수분 유지를 도왔으며 총기 등의 기름칠을 하거나 불을 피우는데도 사용했다. 이렇게 스팸은 미군의 든든한 식량이 되어주었고 또 집이 되어 주었고 불이 되어 주었다. 스팸덕분에 미군은 더 든든하게 밥을 챙겨먹고 전투에 임할 수 있게 되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스팸을 통해 더 나은 전투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국을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든 음식, 스팸의 탄생일화를 떠올리며 오늘 저녁은 따뜻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은 어떨까?

 

임석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1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