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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같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나훔2장 1절~13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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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2월 10일 (목) 16:39:49
최종편집 : 2020년 12월 10일 (목) 16:40:42 [조회수 :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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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같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나훔2장 1절~13절

 

1. 타산지석(他山之石)

 

① 요나와 나훔의 공통점은 ‘이방인’ 니느웨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유대인’ 이스라엘에게 타산지석의 지혜를 촉구하는 데 있다. 나훔은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대제국 앗수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그 누구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나훔은 이스라엘에게 앗수르의 멸망을 생생하게 보도하면서 ‘오늘, 비참한 제국의 최후가 내일, 너의 삶에서 재현될 것’을 경고한다. 나훔의 예언은 오늘 우리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함으로 겸비한 삶을 촉구하고 있다.

 

② (1절~2절)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찌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 ‘파괴하는 자’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니네베)를 멸망시킨 메대(메디아)와 바벨론(신바벨로니아)의 연합군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막대기, 심판의 도구다.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하신다. ‘너는 산성을 지키며...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찌어다’ 누구도 죽음을 감당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는 반어적 표현이다.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적대자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구원이다. ‘약탈자들이... 그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약탈자(앗수르)가 포도나무 가지(이스라엘)을 황패하게 했던 그대로 되갚으신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 한대로 보응하신다. 심판의 기준은 마태복음25장에 기록된 대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 곧 ‘이웃(타인)’에게 행한 그대로 보응하신다.

 

③ (3절~4절)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그 병거는 거리에 미치게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 저리 빨리 가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 번개 같도다”

▶ ‘붉은 방패와 붉은 갑옷’ 붉은 피로 물든 군대의 공포와 위용이다. ‘그 항오를 벌이는 날’ 전투대형을 갖추고 전면공격을 펼친다. ‘노송나무 창’ 장창으로 무장한 무수한 보병들을 가리킨다. ‘병거는 거리에 미치게 달리며’ 고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인 말이 끄는 전차다.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 번개 같도다’ 거대한 도시가 파죽지세로 일순간에 함락될 것을 예고한다. 파란만장한 인생도 일순간에 신속하게 무너진다. ‘한 번에 훅 간다!’ 하나님의 심판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기회가 있을 때 빨리 회개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벧후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니리... ’

 

 

2. 속수무책(束手無策)

 

① (5절~6절) “그가 존귀한 자를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예비 하도다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 대군이 몰려오자 앗수르 왕이 국경에서 외적을 방어하던 장수(전쟁영웅)를 급하게 소환하지만 속수무책이다. 홍수로 강둑이 터져서 강물이 쏟아지듯이 병사들이 몰려 들어와서 성이 함락되고 말 것을 예고한다. 단순한 침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막대기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다.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을 기반으로 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듯 물로 번성했던 니느웨가 수공으로 멸망할 것을 예언한다. 심판의 날,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던 것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물질을 섬기던 자는 물질로 인해 무너지고, 명예를 섬기는 자는 명예로 인해 무너진다.

 

② (7절~8절) “정명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며 그 모든 시녀가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 니느웨의 비극적인 최후다. ‘정명대로’ 히브리어 ‘후차브’는 앗수르의 별칭인데 ‘나차브’에서 파생된 중의적 의미다. 니느웨가 하나님이 정하신 바대로 멸망했다는 뜻이다. ‘왕후가 수치를 당하고 시녀가 통곡’하는 모습은 ‘그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슬피 울며 이를 갊이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벌어지는 인생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 같더니’ 밀물처럼 밀려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의 인기(명예와 평판)가 이와 같이 헛되다. 잘 될 때는 주위에 몰려들지만 안 될 때는 다 떠나버린다. 세상에 믿던 모든 끊어지는 그날, 인생을 마치는 날에 우리도 맞게 될 실존이다.

 

③ (9절~10절) “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니느웨의 금은보화와 부귀영화, 쌓아둔 보물창고가 결국 약탈의 대상이 될 것을 예고한다. (눅12:20~21)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모든 나라, 모든 인생의 마지막이다.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외모와 건강은 풀과 꽃처럼 시든다. ‘인생의 평준화’에 예외는 없다. (시103:15~18)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썩어질 것, 변하는 것만 바라보는 헛된 인생에서 영원한 말씀, 변하지 않는 영혼(내면)을 가꾸며 사는 지혜를 촉구한다.

 

 

3. 인면수심(人面獸心)

 

① (11절~12절)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뇨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이 어디뇨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식물을 충분히 찢고 그 암사자를 위하여 무엇을 움켜서는 취한 것으로 그 굴에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에 채웠도다”

▶ 앗수르 제국을 밀림의 왕 사자에 비유한다. ‘사자’는 앗수르를 정복한 바벨론제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물의 제왕이지만 짐승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제국주의(약육강식, 정글의 법칙)는 한낱 야수 같은 삶에 불과하다. ‘인면수심’은 말 그대로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과 행동은 마치 짐승과 같다는 뜻이다. 야수과 인간의 차이는 어디서 오나? 파충류(악어, 공룡)의 뇌는 ‘뇌간’만 있다. 세 가지 본능만 존재한다. ‘번식을 위한 성욕’(Breed), ‘배를 채우는 식욕’(Bite), ‘먹이 경쟁을 위한 투쟁’(Battle)이다. 포유류(개, 돼지)의 뇌는 ‘변연계(편도체)’가 있다. 애완견처럼 ‘희노애락’의 감정이 있다. 영장류(인간)의 뇌는 ‘신피질(대뇌피질)’이 있다. 옳고 그름, 사랑과 평화, 섬김과 나눔 등 생각과 사고를 통해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 본능과 감정에만 이끌려 사는 삶의 방식은 야수나 짐승 같은 삶이다. 인간은 ‘생각과 사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성경이 전하는 ‘인간(사람)’은 영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존재다.(흙+생기=생령, 떡+말씀=삶, 몸+마음=인간, 육체+영혼=인생)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균형 잡힌 삶을 강조한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 마음의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삶이 나오기 때문이다. 뇌는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그 부분이 발달하거나 퇴화되듯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는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는 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탐욕에 이끌려 본능을 좇는 야수 같은 삶’에서 ‘성령에 이끌려 말씀을 좇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삶’으로의 변화가 바로 ‘거듭남’이다.

 

② (13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희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메시시성경) ‘앗시리아야, 나는 네 원수다. 만군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네 전차들을 불태울 것이다.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사자 나라가 이제 송장들로 뒤덮이리라. 전쟁 사업은 이제 끝났다. 네가 할 일은 더 이상 없다. 전쟁을 보도할 일도 더 이상 없고 승리를 선언할 일도 더 이상 없다. 너의 전쟁 사업은 이제 영원히 끝났다’ 니느웨는 ‘강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정복과 수탈로 부강해졌기 때문이다. 앗수르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였던 거대육식 공룡 같은 대제국을 이루었지만 결국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어디 ‘니느웨’ 뿐인가!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등과 같은 모든 제국들과 화려한 인생들의 동일한 운명이다.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벧전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니느웨는 교만을 상징한다. 물질을 과신하는 교만, 사람을 과신하는 교만,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오만은 반드시 넘어진다. 무엇보다 신앙의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눅16: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신앙생활은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오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나 자신을 반듯하게 세워나가는 자기를 부인하는 ‘성찰’이다. 나훔은 오늘 우리에게 오만방자한 삶을 떠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겸손한 삶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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