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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1,900년을 앞서가신 분이다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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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2월 10일 (목) 00:58:27
최종편집 : 2020년 12월 12일 (토) 18:50:21 [조회수 : 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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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에 몰두하면서 인간 사랑을 외면하는 바리새인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 사랑뿐 아니라 인간 사랑도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인간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 예수님의 인간 사랑, 다시 말해서, 인간 이야기는 바리새인들에게 파격적인 것이었다. 

교회에서도,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면서 인간 이야기를 외면했다. 교부시대부터 교회에서는 인간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을 멀리했는데, 그것은 문학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학을 불신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신학자들이 문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동안 외면당했던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가 1,900년이 지난 20세기에 와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1,900년을 앞서가신 분이라는 말 아닌가!


문학의 인간 이야기

중세의 신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신을 위한 존재, 신의 영광을 위한 존재였다. 달리 말해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이 외면당했다. 이때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은 바로 인간 삶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휴머니즘 운동이었다.  

시인 단테(1265-1321)와 페트라르카(1304-1374) 그리고 소설가 보카치오(1313-1375)가 문예부흥을 이끌었다. 그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작품에서 중세의 교회에서 내세운 신 중심적 사고와 대비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고 그 인간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시인들을 따라서 자신들의 작품에서 인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단테는 『신생』(1295)에서 베아드리체에 대한 그의 열렬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고는 『신생』을 발전시켜서 『신곡』(1307-1321)을 썼다. 인간 이야기를 다룬 이 두 작품은 신본주의에 사로잡힌 중세의 어둠을 밝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신곡』을 당시의 사제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일반인들의 언어인 피렌체어로 썼다. 언어의 선택에서도 당시의 교회에 대한 그의 도전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페트라르카는 시집 『칸초니에레』(1374)에서, 단테가 『신생』에서 한 것처럼, 그의 연인 라우라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리고 보카치오는 100개의 관능적인 이야기를 모은 『데카메론』(1349-1351)을 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인간의 감정을 노래하거나 관능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문예부흥 운동을 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려는 휴머니즘 운동의 시작으로 본다.

이태리의 작가들에 의해서 문을 연 문예부흥 운동은 곧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영국의 초서(1343-1400)는 『데카메론』 식의 이야기를 시 형식으로 써서 영국의 중세 문학의 문을 열었고, 그를 이어서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가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라블레(1483-1553)와 몽테뉴(1533-1592)가, 스페인에서는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1547-1616)가 나왔다. 이렇게 문예부흥 운동이 활짝 꽃을 피우면서 인간 이야기를 강조하는 휴머니즘 운동이 확산하고 자리 잡아갔다.

17, 18세기를 거치면서 문학에서 내세운 휴머니즘은 바로 인문학의 중심주제가 되었다. 문학에서는 종교, 철학, 역사 같은 인문학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학 같이 인간 삶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인간 이야기인 문학은 인간 삶에 관한 모든 학문과 관계한다.


교회와 인간 이야기

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계명을 지키며 그분에게 경배하는 공동체이다. 그런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신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중세 교회가 신본주의적 태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14세기에 이태리의 작가들이 고전 작품들에서 인간 이야기를 대하면서 거기에 매혹된 것은 신본주의에 사로잡힌 교회가 인간을 외면하는 것을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문예부흥에 관여한 작가들이 모두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모두 중요시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6세기에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데에는 신앙적인 문제 외에 사제들의 꼭두각시가 된 교인들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루터는 사제들이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하면서 성경을 독점하고,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된 교권주의의 문제점을 직시했다. 그래서 그는 평신도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교회의 교권주의에 대한 비판은 만인제사장주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루터는 신앙인이 사제를 거치지 않고 제사장이 하였듯이 하나님께 직접 회개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믿는 자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중시했다. 

이렇게 루터가 교권주의로 인해서 억압당하는 평신도들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했다는 면에서 그의 종교개혁은 인간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문예부흥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만하다. 그러나 그가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이어받아서 오직 은혜를 내세우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 것을 보면, 그는 신 중심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칼빈은 그의 5대 강령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타락한 인간의 무능을 강조했다. 그는 그 5대 강령에서 인간에게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으며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예정하시고 인간의 삶을 전적으로 주관하신다고 주장했다. 그의 신학에서는 인간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17세기를 거쳐서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면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것을 내세우는 인문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의지적 선택이 강조된다. 이렇게 해서 문예부흥 운동에서 시작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휴머니즘 운동이 18세기에 와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 휴머니즘 운동은 인권을 강조하는 정치적 변혁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1776년 7월 4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의 기치 아래 독립을 선언했고, 이어서 프랑스 혁명(1789―1794)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은 국민이 전제군주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내세운 시민혁명이었다. 

휴머니즘 운동은 정치뿐 아니라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18세기에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는 선행은총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에 응답할 수 있을 만한 분별력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오면 슐라이어마허가 종교는 절대 의존 감정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를 자유주의 신학의 창시자라고 부른다. 그는 이성 중심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신앙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종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신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강조했다. 슐라이어마허를 현대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데서 현대신학의 방향을 어림할 수 있다. 

20세기에 바르트가 나서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했지만, 바르트도 자신이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그의 제자 불트만은 비신화화론에서 인간의 주관성을 강조했고 성경을 실존론적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을 궁극적 관심이라고 말한 틸리히 역시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의지적 선택을 중시했다. 성인된 세상을 강조한 본회퍼의 영향을 받은 해방신학이나 생태신학 같은 상황신학에서는 인간의 역할을 더욱 중시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문학을 외면하던 교회가 20세기에 와서 문예부흥을 태동시킨 문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교부시대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교회에서 문학을 외면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에 관한 학문인 신학과 인간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신학자들이 문학을 받아들인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인간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서 예수님이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오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그 사명을 수행하셨다는 교리를 정립했다. 교회가 이 교리에서 예수님은 인간이었고 인간을 위해서 사셨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만을 보았을 뿐 인간 이야기를 읽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는 신앙적 관점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려고 결단하는 장면으로 읽어 왔다. 그런데 그 장면을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육체를 지닌 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이 세 번이나 나아가서 피땀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한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죽음을 피하고 싶은 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제자들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잊고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지 않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서 사명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예수님 자신의 심정을 제자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신 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힌 바리새인들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도, 다시 말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바리새인들은 첫째 계명만을 물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묻지 않은 둘째까지 대답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이 외면하는 인간 사랑에 역점을 두셨다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인간 사랑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까지 하나님에게 드리고 부모에게는 드리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전통을 비판하신 데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가르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인간 사랑을 하나님 사랑에 우선시키셨다.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는 심판의 날에 임금이 아주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자기에게 한 것과 같다고 말하는 비유적 이야기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 임금은 인간에게 선행을 베푼 자들은 천국으로 보내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면서 인간을 외면한 자들은 지옥으로 보낸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 경배보다 인간관계를 우선시키는 데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랑이 없는 하나님 사랑은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존중은 안식일을 재해석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철저히 지켰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지켜야 할 과도한 규제 때문에, 인간의 삶이 왜곡되는 것을 직시하시고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당시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선언이다. 2천 년 전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시대를 앞서가신 휴머니스트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뿐 아니라 그분의 삶에서도 인간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여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 당시 사회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고 말씀으로 양육하셨다. 당시 여자들이 남자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가 남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격려하기도 하셨다(눅 10: 39-42). 

그 결과 예수님을 따르는 여자들도 남자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영적으로 성숙했다. 우리는 보통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고 알고 있지만, 마르다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남자 제자들은 무서워서 피했지만, 여제자들은 그 현장을 끝까지 지켜보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아끼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셨기 때문이다. 

여자를 사람의 수에 넣지 않는 사회에서 여자들을 인격체로 인정하시고 영적으로 양육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특별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의 친구가 되셨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세리 레위의 집에 들어가서 그와 그의 이웃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서 유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 파격적인 일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할 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눅 5:31)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버림받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다시 말해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세리들 외에 창녀까지도 가까이 하시고, 버림받은 한셈병 환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다. 예수님 보시기에 세리와 창녀와 병자가 모두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 즉 인간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만을 경배하면서 인간을 외면하던 때에 하나님뿐 아니라 인간도 사랑하신 예수님은 분명히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었다. 


마치면서

신본주의에 사로잡힌 중세 교회에서는 인간 이야기가 외면당했다. 14세기에 문예부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작가들이 인간 이야기를 시작한 후로 2백년이 지난 16세기에는 문예부흥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만, 16세기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나 칼빈은 인간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에 오면 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웨슬리가 인간의 의지적 선택을 그의 신학에 도입한 후로 현대에 와서는 신학자들이 예정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 이야기와 인간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상 인간 이야기가 더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신학’의 시대이다.

이에 발맞추어서 신학자들이 문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신본주의에 사로잡힌 교회가 오랫동안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를 외면하다가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가 1,900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1,900년을 앞서가신 선각자였다. 

정통주의자들은 인간 이야기를 하는 신학자를 이단으로 몰아세운다. 그런데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인간 이야기를 외면함으로써 성경의 내용을 왜곡한다. 성경을 왜곡하는 그들이야말로 이단이라고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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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0-12-10 03:21:57
神本主義와 人本主義
1. 화있을진저 고라신아!

예수님이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많은 가르침을 베풀었건만 고라신과 뱃새다는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절망(또는 분노)에 사로잡힌 예수님이 “禍있을진저 고라신아!”라고 한 바 文字的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고라신과 뱃새다를 아예 포기하고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볼 수 있고, 比喩 및 文學的으로 해석하면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요한계시록의 호된 심판과 연결시켜보면... 人本主義者 예수님이 아주 완고한 자들에게 “화있을진저 고라신아!”라고안타까움을 표현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神本主義者 예수님이 분노하여 “화있을진저 고라신아!”라고 저주를 퍼부었다고 본다.

※ 성경을 오로지 비유 및 문학적으로 해석하려고 드는 경우에는 저주가 아닌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나는 비유 및 문학적인 성경읽기와 문자적인 성경읽기를 함께 고려하고 聖殿에서 장사치의 좌판을 엎어버리는 예수님의 불같은 성격을 고려해보면 “화있을진저 고라신아!”라고 한 것은 聖殿, 神 등의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타협 없는 예수님이므로 그 심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그래서 고라신과 뱃새다의 사람들을 저주했다고 본다. <神本主義者 예수님의 모습이다.>

2. 죄 없는 자 돌로 이 여인을 쳐라!

내로남불에 찌든 군중이 떼로 몰려들어 한 여인을 정죄하려들 때 그들을 심히 꾸짖었다.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同苦同樂했던 제자들이 배신했어도 그들의 연약함을 감싸 안았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가롯 유다 스스로 목을 매었을지언정 가롯 유다를 버리지 않았다. 聖殿, 神 등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했다. <人本主義者 예수님의 모습이다.>

3. 神本主義 안에서 人本主義가 용납되는 것이지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누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손자를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하면 할애비의 수염을 당기기도 하는 데 뭣 모르는 손자가 벌이는 짓거리를 눈 감아준다고 하여 자식이 건방지게 아버지의 수염을 당기는 것까지도 눈 감아 줄 수는 없다.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하면 손자가 할애비의 수염을 당기기도 하는 데 뭣 모르는 손자가 벌이는 짓은 눈감아준다. <人本主義者 예수님의 모습이다. 즉 죄 없는 자 돌로 이 여인을 쳐라!>

자식이 건방지게 아버지의 수염을 당기는 것은 눈감아 주지 않는다. <神本主義者 예수님의 모습이다. 즉 화있을진저 고라신아!>

4. 결론

예수님의 인본주의적인 측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예수님의 신본주의적인 측면을 놓치게 되는 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신의 향기’보다 ‘인간의 향기’가 더 진해서야 어디 唯一神敎라고 할 수 있겠는가?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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