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달력에서 대림절은 새로 한 해의 문을 여는 절기이다.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히듯, 고요한 새 출발이다.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창조의 방식이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일 년 365일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의미가 새롭다. 서양의 전통에 따르면 하지의 성인 세례 요한과 동지의 성인 사도 요한은 일 년을 반분(半分)한다. 프랑스에는 “두 요한이 일 년을 나눈다네”란 속담도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풍속으로 네 개의 날이 일 년을 4등분한다. 기준이 되는 4일은 3월 25일(성모 마리아의 날), 6월 24일(세례 요한의 축일), 9월 29일(성 미가엘 축일), 12월 25일(성탄일)이다. 이 날을 시작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고용기간이나 임대계약을 맺는다. 그리스도교 축일이지만 모두 낮과 밤의 길이와 관련된 날들 곧 ‘동지, 춘분, 하지, 추분’과 일치한다.

  독일의 정원사 칼 푀르스트는 한 해를 ‘일곱 계절’로 구분하였다. 그는 다년생 꽃과 풀을 연구한 육종가로 땅에 묻어둔 여러 해 살이 뿌리들을 통해 시절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싹을 틔우고, 잎이 자라나며, 꽃을 피워, 씨앗을 맺고 또 사라지는 생장소멸(生長消滅)이란 세월의 파수꾼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일곱 계절은 ‘초봄(2월 말-4월 말), 봄(4월 말-6월 초), 초여름(6월 초-6월 말), 한여름(6월 말-8월 말) 가을(8월 말-11월 초), 늦가을(11월 초-12월 초), 겨울(12월 초-2월 말)’이다.

  교회력이든, 정원사의 관찰이든 공통적으로 한 해를 나누는 기준점은 ‘어둠과 빛’, ‘추위와 따듯함’ 그리고 만물의 생명력이다. 창조의 시간이 저녁부터 시작한다든지, 대림절이 한 해의 끝에 서둘러 빛을 예비한다든지, 모두 같은 지혜를 들려주고 있다. 이렇듯 대림절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시절의 변화를 일깨우며 빛과 따스함으로 찾아온 셈이다.

  “굿 이브닝 대림절!” 

  대림절은 우리의 저녁을 향해 안부를 묻는다. 너의 시간은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느냐며 궁금해 한다. 그 창조는 고요함과 평온함으로부터 시작한다. 과연 당신은 만물의 시계와 더불어 삶의 시간을 조절하며 사는지, 하나님의 달력과 발걸음을 맞추며 지내는지, 모든 삶에는 시작과 끝이 있음을 의식하는지, 내 인생의 리듬을 향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대림절의 중요한 상징은 ‘기다림 초’이다. 대림절 4주간 동안 일주일에 하나씩 등불을 밝히듯 촛불을 켜는 일이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적응이 쉽지 않다.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에도 고요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다. 늦게 일과가 끝나고, 촌분(寸分)을 아껴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시간을 쪼개어 쓰는 듯하지만, 그 결과 ‘굿 모닝’도 ‘굿 이브닝’도 모두 포기한 사람들 같다. 

  사실 금쪽같은 여유마저 스마트 폰에 귀를 쫑긋거리고, 화려한 컬러에 시선을 맞추느라 낭비하는 줄도 모른 채 산다. 어쩌면 습관을 넘어 중독이 되었다. 엉뚱한 데 시간을 낭비하느라 지난 일 년 동안 책읽기도, 마음의 일기도 모두 일상의 숙제로 남겨두어야 했다. 마음의 여백을 잃은 것은 환경과 여건의 문제 이전에 오로지 ‘내 탓’이 아닐까?  

  대림절은 우리의 삶에 창조적 긴장을 요구한다. 이 절기는 영적 성숙함으로 새로운 삶과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창조의 빛’을 던지라는 사인이 아닌가? 오늘의 교회는 ‘할렐루야 신앙’은 만발한데, ‘마라나타 신앙’은 부재하다.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은 익숙한데, 예수님의 말씀과 그 제자의 길을 따르려는 생활은 부족하다. 종말론적 긴장감을 다시 추슬러야 할 이유가 있다.  

  곧 성탄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서 이브(eve)는 이브닝(evening)의 준말이다. 어두움과 밤은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시작의 징표였다. 그 고요함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건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마지막, 곧 끝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어언 한 해의 종점에서 다시 창조의 영성을 일깨워 보자. 대림절 등불을 밝히는 그 저녁들마다 내 영혼의 등불을 밝힌다면 참 복 있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