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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쌈과 베트남 보트피플을 구한 전재용 선장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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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2월 02일 (수) 03:08:09 [조회수 : 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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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목사의 집에 방문했더니 사모님께서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주셨다. 베트남식 월남쌈이다. 베트남 음식 고이꾸온(Gỏi cuốn)에서 비롯된 월남쌈은 쌀국수와 함께 베트남 요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불리다 건져서 각종 채소와 양념, 고기를 싸서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영어식 명칭으로는 썸머롤(summer roll)이라 불리는 월남쌈은 해외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엄청 좋아하는 요리이다. 채소가 음식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저칼로리, 고 섬유질, 풍부한 비타민뿐 아니라 피쉬소스와 땅콩소스의 맛이 잘 어울리는 월남쌈은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에게 아주 어울리는 음식이다. 한국요리의 쌈과 구절판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라이스페이퍼가 꼭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베트남 음식은 어떻게 세계 속에 퍼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베트남의 슬픈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 이후부터 보트피플이 인도차이나에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들이 미국과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망명했는데 그 수가 약 100만 명에 이르렀다. 이후 이들을 통해서 베트남 음식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바다에서 떠돌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보트피플들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해적을 만나 죽은 난민의 수만 약 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국민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이들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베트남 음식 월남쌈을 먹으며 베트남의 아픈 역사를 생각해보니 꼭 소개해야 할 한 한국 사람이 있다. 2차대전 때 1100명의 유태인들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처럼, 흥남철수작전때 1만 4천명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선장과 같은 인물이다. 바로 96명의 베트남 보트피플들의 생명을 구한 전재용 선장이다

1985년 11월 14일 오후 5시경 전재용(全提用) 선장이 이끄는 참치 원양 어선 ‘광명 87호’는 1년 동안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을 돌아오고 있었다. 싱가포르 동북쪽 200마일 지점의 남중국해를 지날 무렵 전재용 선장은 SOS를 외치며 조그만 난파선에 타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을 발견한다. 보트피플이란 월남의 패망으로 공산화가 된 베트남에서 보트로 탈출한 난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배 위의 사람들은 손과 옷을 흔들어대며 구조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낡은 목선 안에는 식량도 바닥이 났고 배는 이미 반 침수상태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보트피플을 만난 전 선장은 ‘관여치 마라’는 회사의 지침과 양심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한 뒤 멀어져가는 전 선장의 배를 보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보트피플을 구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다. 파도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한 작은 보트 안에서 사흘을 굶은 채로 엉겨 붙어 있었던 96명의 베트남인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책임은 선장인 내가 진다’는 각오로 96명의 구조소식을 회사에 알리고 전 성장은 ‘부산항까지 열흘’을 다같이 버티기로 한다.

열악한 배위에서 생활해온 이들은 살이 문드러지는 등 피부병이 심했고 지뢰에 발목이 잘린 어린이도 있었다. 전선장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선원들의 침실을 내주고 노인과 환자는 선장실로 모셔와 치료하고 보살폈다. 선원 25명의 열흘 식량과 생수로 96명의 베트남인들과 나눠먹었다. 보트피플의 대표 피터누엔이 함께 데리고 오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슬퍼할 때마다 전선장은 그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1985년 11월 29일 부산에 입항하여 베트남 보트피플들은 난민소에서 1년 반을 지낸다. 그 후 전재용 선장의 기억만 간직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된 피터누엔은 미국으로 건너온 가족과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무렵 자신을 비롯한 96명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 전재용 선장을 찾기 시작한다. 무려 17년 동안 수소문한 끝에 전 선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전선장으로부터 받은 첫 편지에는 뜻밖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즉시 전선장은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고 난민 구출 이유로 안기부를 비롯한 국가정보기관에 불려가 모욕적인 조사까지 받았던 것이다. 이후 여러 선박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한 군데도 연락을 못 받았던 그는 그 후 자신의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 멍게 양식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재용 선장 편지의 마지막 내용은 더욱 뜻밖이었다. “보트 피플을 구조할 때 저의 미래와 경력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96명의 생명을 살린 저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2004년 8월 8일 LA공항에서 19년 만에 이루어진 피터누엔과 전재용 선장과의 극적인 만남이 있었다. 전재용 선장을 잊지 않고 있던 피터누엔이 전재용선장과 부인과 막내딸을 초청하여 환영행사를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전재용 선장에 의해 구조된 96명 중 미국에 거주하는 10여명과 베트남 사회, 한인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후 베트남 난민들이 직접 ‘유엔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UN난센상에 전재용 선장을 추천하여 수상후보에 올랐다. 전선장은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들을 구했을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지만 보트피플들은 그날 전 선장에게 구조를 받기 전에 25척의 배로부터 외면을 당한 후 전선장을 만났던 것이다.

월남쌈을 먹으면서 베트남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고 베트남 보트피플들의 생명을 구한 한 선장의 희생의 스토리를 접하게 되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하고 포기할 것인가? 전재용 선장의 인터뷰 고백을 통해 깊은 생각에 잠겨 본다.

“선장은 그런 사람들을 구조할 책임이 있다. 나중에 정치적인 문제로 구조를 한 사람이 푸대접을 받는다 하더라도 구조를 하는 게 선장의 본분중의 하나이다. 불이익이라는 것을 계산하면 아무도 구조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선장으로서 무조건 해야 할 일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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