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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근거” 미가7장 7절~20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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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1월 24일 (화) 20:59:17
최종편집 : 2020년 11월 24일 (화) 21:00:05 [조회수 :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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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근거” 미가7장 7절~20절

 

1. 절망을 이기는 힘, 부활신앙

 

①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 7장은 미가의 깊은 절망으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희망으로 끝마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개인의 죽음에 해당되는 절망이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곧 ‘욕심에서 죄로, 죄에서 사망으로’ 귀결되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미가의 절망은 희망으로 전환된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다. 사도요한의 바라본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의 비전이다. 믿음은 시선(안목)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라는 시구처럼 나의 노력과 수고가 끝장나는 인간의 한계를 철저하게 자각할 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시작된다. 그래서 절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출발점이다.

 

② (8절)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 믿음의 길은 만사형통이 아니다. 믿음의 사람도 넘어지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엎드러지고 절망 가운데 빠져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으키신다.

(시37:23~2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다윗의 체험적인 고백이다. 이 사실을 믿으면 절망 중에도 소망을 품고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간다. 부활신앙의 메시지는 절망을 이기는 힘,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희망’이다.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 가운데서도 일상을 빼앗기지 않고 삶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다.

 

③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나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 ‘내가 범죄하였으나’ 죄를 자백하는 회개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된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심판이 끝이 아니고 신원하신다. 징계의 목적은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다. (히12:6~13)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욥을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시킨 것은 ‘고난’이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징계와 고난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고 마침내 그의 의를 보게 하시는’ 연단과 성숙의 과정이다. 환난 중에 이 사실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부활신앙’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죽음 같은 절망 중에 있는 ‘나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 믿음으로 기꺼이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 부활신앙이다.

 

 

2.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

 

① (10절~11절)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여)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 (메시지성경) ‘내 원수도 그것을 깨달아, 망신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 너의 하나님은 지금 어디 있느냐? 고 나를 놀려대던 원수가, 시궁창에 쳐 박혀 뒹구는 꼴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참된 믿음은 덮어놓고 믿는 맹신이 아니다. 체험을 통한 생생한 신앙고백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여자’는 엘리야를 핍박하던 대적 이세벨을 가리킨다. 갈멜산 전투에서 바알과 여호와 가운데 누가 진짜 하나님이신지 쌓아 놓은 번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만천하에 드러난 것처럼 판가름 날 것을 선언한다.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는 영광과 승리의 날이다. 이 땅에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판가름 나는 날, 하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손을 들어주신다.

 

② (12절~13절)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

▶ 대적들뿐만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하나님이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이 삶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다 알게 될 것을 예고한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뚜렷하게 알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스라엘은 회복되겠지만 이와 반대로 ‘그 땅은’ 땅과 사람, 물질과 환경을 더 의지했던 이들은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 엇갈린 운명이다. 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이 비극적인 삶이 아니라 끝이 아름다운 인생, 최후의 웃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

 

 

3. 미가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① (14절~15절) “원컨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산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

▶ 미가의 기도다. 그릿시냇가에서 까마귀로 엘리아를 먹이신 것처럼, 갈멜산 제단에 불을 내려서 누가 참신인지 나타내신 것처럼 다시 구원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간구한다. 미가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 같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누가 진짜 하나님이신지 나타내시는 구원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신다.

 

② (16절~17절) “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오며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 하나님은 교만한 입술을 미워하시고 말대로 심판하신다. (마12:36~37)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니라’ 심판의 기준이 말이다. 위기의 순간에 말로 우리의 중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말로 드러난다. (삼상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자나 깨나 말조심해야할 이유다. 대적 사단은 사람을 통해 말로 역사한다. 신앙의 성숙은 말의 변화다. 오만한 말을 하던 자들을 뱀이나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비천한 존재로 낮추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대적하던 자들조차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을 선포한다.

 

③ (18절~20절)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하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하나님은 누구신가?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인애(은혜)’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단, 회개치 않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긍휼은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다.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반드시 죄를 드러나게 하셔서 회개케 하신다. 그러나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기억조차 않으신다. 죄를 자백하면 기억하지 않으신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셔서 마침내 인애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증거 한다.

▶ (20절)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라’ 인애(仁愛)는 히브리어 ‘헤세드’로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뜻한다. 인애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바친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주신 ‘은혜’였다. 멸망할 수밖에 없던 이스라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인애’다. 절망을 이기는 희망은 ‘사람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다. 극심한 절망 가운데 있는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알량한 대책이나 인간적인 수단이 아니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 외에 다른 살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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