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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절망, 하나님을 향한 희망” 미가7장 1절~7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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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1월 16일 (월) 22:15:15 [조회수 :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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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절망, 하나님을 향한 희망” 미가7장 1절~7절

 

1. 미가의 절망

 

① (1절)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 ‘재앙이로다, 나여’ 미가의 깊은 절망이다.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멸망선포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와 같은 절망이다. 나라가 멸망하는데 미가가 이토록 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와 교회, 가정은 운명공동체다. 공동체의 멸망은 개인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열매를 다 거둔 앙상한 나무 가지’는 더 이상 아무 희망도 남지 않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형편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석과불식(碩果不食)’해야 하는데 내일을 위한 씨앗조차 사라져 버린 현실이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과실나무에 달린 가장 큰 과일을 따먹지 않고 두어 다시 종자로 쓴다는 뜻인데 아무리 궁색해도 남겨두어야 할 소중한 것을 의미하는데 내일에 대한 희망 없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미가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이유를 계속해서 기록한다.

 

② (2절~3절)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 (메시지성경) ‘반듯한 사람,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씨가 말랐다’ (롬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도 바울이 시편14편을 인용한 말씀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시대나 진리다. ‘군장과 재판자’는 관료와 법관 같은 고위공직자들이다. 그들은 위임받은 권력으로 뇌물을 받고 부정축제를 일삼았다. ‘대인’은 기업가와 학자 같은 사회의 지도층들이다. 그들도 힘을 모아 기득권을 유지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사람들이 추앙하고 세운 지도자(정치인, 종교인)들은 의지할 대상(그리스도, 메시아)이 아니라는 뜻이다. 새 대통령을 뽑는 다고 나라가 새로워지거나 새 감독(회장)을 선출했다고 감리교회가 새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미가의 절망은 사람에 대한 깊은 절망이다. 역설적으로 사람에 대한 절망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의 출발점이 된다. “희망은 헛된 희망을 버리는 것, 희망은 거짓 희망에 맞서는 것,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눈물어린 저항이 희망의 시작이다” (박노해의 ‘거짓희망’ 중에서)

 

③ (4절) “그들의 가장 선한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이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 (메시지성경) ‘가장 좋다는 것이 엉겅퀴다. 가장 낫다는 것이 잡초들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이제 시험 기간이 왔다. 망신을 당하고 꽁무니를 빼는 저 꼴을 보아라!’ 의인을 자처하고 지도자로 위세를 떨치던 이들의 악행은 그 정체가 드러나고 반드시 끝나는 날이 온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權不十年)’이라는 말처럼 붉고 화려한 꽃도 언젠간 시들듯이 제 아무리 큰 권세도 영원할 순 없다. 악한 자들의 종말은 새 희망의 시작이다. 타락한 홈니와 비느하스의 시대가 끝나야 신실한 사무엘의 새 시대가 열리고 타락한 옛 성전이 무너져야 거룩한 새 성전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2.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① (5절~6절)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찌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 사람이리로다”

▶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다. 속세의 인연을 끊거나 불효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눅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하는 ‘제자도’를 증거 한다.

(수24:14~15) ‘너희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을 요구한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주님을 버리고 떠나갈 찌라도 ‘너는’ 주님만 따라 살라는 말씀이다.

 

② (눅12:51~53) ‘네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예수께서 화평이 아니라 분쟁을 주러왔다는 말씀이 전하는 메시지도 미가의 예언과 동일하다. 인간적인 분쟁이 아니라 영적인 분쟁,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분쟁을 가리킨다. ‘형벌의 날’은 위기의 순간이다. 곧 마지막 때를 사는 삶의 자세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안 된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 희망도 남아있지 않기에 사람에게 희망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의 순간은 무엇을 의지하는 지 중심이 드러나는 선택의 순간이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다수결이 옳은 길이 아니라 옳은 것이 옳은 길이다. 사람들의 머릿수를 좇아서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이 아니라 혼자 가더라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

 

③ (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이 말씀의 핵심은 ‘말세’가 아니라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는 데 있다. 말세(위기의 순간)에 벌어지는 세상풍조를 좇아 살지 말고 그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뜻이다. 죽은 물고기처럼 시류에 편승해서 살지 말고 물결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살라는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 선배나 동료, 전통이나 관습, 여론이나 다수결을 좇아 상황 따라 형편 따라 살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사는 비타협적인 삶의 방식을 전한다.

 

 

3. 절망 중에 희망, 예수 그리스도

 

①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 이스라엘나라의 멸망은 법정최고형인 ‘사형선고’와 같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멸망한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살리시고 회복시키신다. 미가는 ‘절망 중에 유일한 희망’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찾는다. 미가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메시아(그리스도)왕국의 도래, 곧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는 사건이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다시 사는 유일한 구원의 길도 이와 동일하다.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삶,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미가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고 동시에 우리가 믿는 기독교(그리스도교) 복음의 진수(眞髓)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실한 것이다. 다른 것(사람)이 ‘그리스도(메시아)’ 행세를 하며 ‘헛된 희망’을 선전한다. 한국교회의 회복은 ‘거짓 희망’을 버리고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왕)’로 믿고 따르는 데 달려있다. 그 외에 다른 살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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