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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서거 100주년에 "캠벨부인의 조선사랑" 기려캠벨선교사 서거 100주년 기념학술제, 기념동판 제막식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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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1월 12일 (목) 13:37:31
최종편집 : 2020년 11월 19일 (목) 21:48:55 [조회수 :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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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감리교회 선교사로 배화학당과 종교교회, 자교교회를 설립한 조세핀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선교사가 서거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인 12일 배화여자대학교에서 그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제가 개최됐다. 같은 날 오후 그가 묻힌 양화진 선교사묘역에서는 그의 서거100주년을 기억하는 기념동판 제막식이 있었다. 100주기 추모예배는 5일(주일)오후 5시에 종교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기념사업회는 이 외에도 캠벨 전기(傳記)를 발간, 훈장추서 등의 계획도 가지고 있다.

   
▲ 민경길씨가 기증한 캠벨 선교사의 미공개 사진

학술제에 앞서 드려진 기도회에서 캠벨기념사업회 회장인 최이우 목사(종교교회)는 “배화학당을 통해 설립된 종교와 자교교회, 리드선교사님이 세우고 캠벨 선교사님이 헌신했던 광희문교회, 그리고 한동안 선교사님께서 사역하셨던 수표교교회 등 네 교회와 배화학원이 함께 모여, 캠벨 선교사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캠벨 기념 사업회’를 조직하고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알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하여 사도들과 초대교회로부터 캠벨 선교사님과 같은 전도자요 봉사자요 교육가인 신앙 선배님들의 믿음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념함으로써 새로운 믿음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적을 이뤄내자”고 말했다.

배화여자대학교의 박성철 총장도 “캠벨 선교사님은 병원의 간호 총책임자, 간호학교 교장, 음악교사, 선교회의 관리, 성경 번역, 전도 사역 그리고 배화학교의 교장 등으로 일하셨다.”고 회상하면서 “저희 대학의 교육 비전도 바로 학생들을 교육 현장과 교회 사역, 사회봉사 활동 등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캠벨선교사님과 같이 헌신하는 여성 교육과 신앙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라며 학교에 대한 참석자들의 지원과 기도를 당부했다.

배화여자대학교 이사장인 이현식 목사(진관교회)는 종교교회, 자교교회, 수표교교회, 광희문교회, 진관교회, 미선교부 등에서 후원한 선교지원금을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전달하여 격려했다. 특별하게도 이날 이 학교 1회 졸업생인 서영수 할머니의 손자인 민병길 씨(전 육사 법학교수)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캠벨의 개인사진 1점과 그의 할머니 서영수 여사와 캠벨이 함께 찍은 사진1점 등 2점의 사진을 학교 측에 기증하면서 기념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민씨는 “캠벨부인이 안식년 차 미국에 가기 직전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집안이 보관해 왔던 것이지만 학교에 기증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캠벨부인의 조선사랑’을 주제로 개최된 기념 학술제에서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 은퇴교수)가 "캠벨 부인의 조선 사랑"을 주제로 기조 강연하고 황미숙 박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원)가 "캠벨의 교육선교사상과 교육사업"을 주제로, 권지영 목사(평동교회 부목사)가 "캠벨의 선교사역"을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발제문 보기

[이덕주] 캠벨 부인의 ‘조선 사랑'

[권지영] 캠벨의 선교 사역 

캠벨 선교사는 1853년 미국 텍사스에서 출생했다. 스물한 살에 조셉 캠벨 목사와 결혼하였으나 일찍이 사별하고 두 자녀도 이어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주님께 드리기로 서원하고, 시카고의 사범학교에서 간호교육을 받은 후 1886년 미국 남감리교회 해외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중국의 상해 등지에서 10여 년간 사역을 했다.

1897년 10월 9일 미국 남감리회 해외여선교부에서 한국에 파송하는 최초의 선교사로 서울에 도착해서 남대문 근처의 남송현 선교부에 정착을 했다. 1898년 8월 1일 고가나무골(현 내자동)의 이항복 집터에 여성기숙학교(Boarding School)를 시작하였는데, 이를 육성하여 1898년 10월 2일 남감리회의 대표적 여학교인 배화학당을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연회에서 보낸 헌금이 사용되었기에 ‘캐롤라이나 학당(Carolina Institute)’이라 불리다가, 1903년 12월 윤치호에 의해 ‘배화학당’으로 정식 개칭을 하였다. 배화학당(培花學堂)이란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 내는 배움의 터전”을 의미한다. 캠벨 선교사는 1898년부터 1912년까지 초대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1900년 4월15일 부활주일 배화학당의 새 교사(校舍)인 ‘자골의 선교를 위한 집(mission home in Chakol)’에서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의 인도와 설교로 시작한 첫 예배가 자골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이 자골교회가 종교교회와 자교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1901년 학당 안에 루이스 워커(Lousie Walker) 기념예배당을 지어 봉헌하였고, 교인 수가 늘어나자 배화학당과 여선교사 사택은 누하동으로 교회는 도렴동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1912년 안식년 휴가에서 돌아온 뒤 학교 운영을 니콜스와 스미스 등 젊은 선교사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필운동 새 부지에 학교를 옮겨 짓는 일과 수표교교회 광희문교회 석교교회 등에서 여성 교육사업과 전도부인 양성사업에 매진하였으며, 세브란스의 간호학교에서도 수간호사 및 간호학교 교장으로 간호사 양성교육을 했다.

1918년 안식년으로 미국에 돌아갔다가 이듬해 되돌아오려고 준비 하던 중에 신병을 얻어 주위 친지들이 병이 회복된 뒤에 여행하기를 권유했으나, “나는 한국을 위해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라는 말을 뒤로하고 1919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1920년 11월 12일 6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장례식은 배화학교장(學校葬)으로 거행되었고 양화진 선교사 제1묘역(나-7)에 안장되었다.

 

<기사 작성중>

 

   
▲ 사회 : 전병식 목사(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 기도 : 차재일 목사(광희문교회)
   
▲ 학술제 취지 및 인사 : 최이우 목사(캡벨기념사업회 회장)
   
▲ 배화여자대학교 박성철 총장의 인사
   
▲ 선교지원금 전달(자교교회 홍용표 목사)
   
▲ 선교지원금 전달(종교교회 최이우 목사)
   
▲ 축도 : 배화학원 이사장 이현식 목사(진관교회)

 

   
▲ 기조강연 : 이덕주 교수(감신대)
   
 
   
 
   
 
   
 
   
 

 

   
▲ 황미숙 박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캠벨의 교육사상과 교육사업"
   
▲ 권지영 목사(평동교회 부담임) "캠벨의 선교사역"
   
▲ 배화학당의 1회 졸업생인 서영수 여사의 손자 민병길씨(전 육사 교수)가 캠벨의 미공개 사진 2점을 기증했다.
   
 
   
 
   
▲ 왼쪽이 캠벨부인, 오른쪽이 1회졸업생 서영수 여사
   
▲ 마무리 기도 : 김진홍 목사(수표교교회)

 

 

동판제막식

   
▲ 기념동판 제막식
   
 
   
▲ 설교 : 이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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