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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직 목회자의 약진
최창균  |  onnuree@mensa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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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1월 02일 (월) 14:04:44 [조회수 :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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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는데 목회자 양성은 줄어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목회자 공급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목회자면서 직업을 갖는 것이 터부시 되거나 이중직 목회자인 것을 쉬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중직 목회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이제는 양성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삼위일체 교회력에 의하면 금년도 6월 7일 성서일과의 본문 말씀은 사 52:7-10, 고전 9:13-18, 눅 10:1-16입니다. 이중 고린도전서의 말씀에는 사도바울이 자신은 복음을 전할 때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으며 자진하여 그 일을 했음을 이야기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시며 자세한 지침을 알려주셨는데, 그중에서 제자들이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조차 소유하지 못하게 하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두 본문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중직 목회의 사례와 목회에만 전념하는 사례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아무런 보수 없이 복음을 전한다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천막을 짜는 기술로 생활을 하고 전도도 했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부여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이중직 목회가 성경적인가, 비성경적인가? 혹은 목회자가 자기 힘으로 생활비를 마련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비성경적인가에 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 두 본문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성경은 둘 다 가능하며, 이러한 경제적인 측면은 이차적인 것이고, 선교의 사명이 더 중요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중직이 옳은지,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교회 내에서 해묵은 논쟁 중 하나가 성가대 지휘자 반주자에게 사례를 드려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사역이 열정페이처럼 무보수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들을 합니다. 한편, 한정된 교회 재정을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다른 직분자에게로 보수가 가면 갈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적어질 것이라는 불안심리 때문에, 음악가 사례를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중직 목회자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이중직 논란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노동조합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듯이, 이중직 목회자들은 이제는 자신들은 더 이상 소수자 혹은 마이너리거가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전임목회자들은 이중직 목회자들이 대세라고 주장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자신들도 교회에서 사례를 못 받고 직업을 따로 가져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제 글이 오히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양 집단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등은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논란은 거의 한 세대에 걸쳐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교계 내의 동성애 논쟁만큼이나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습니다. 과거에는 전임목회만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이중직 목회도 동일하게 대세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만 맞고 어느 하나는 틀렸다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교회 공동체의 상황을 먼저 헤아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회에만 전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공동체에서 재정적 지원을 힘들어할 경우, 목회자는 쿨하게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설교 때 지나치게 헌금 강조를 하는 식으로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에쿠스 부흥회라는 말도 있었죠. 부흥회가 끝나고 모든 것을 정리해 보니 결국 담임목사 차가 에쿠스로 바뀐 것이었다는 얘기 말입니다.

헌금은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목회자는 주저 말고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중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준은 교회 공동체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중직 논란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한편, 이중직 논란은 이미 사도바울이 정리를 끝냈습니다. 선교가 우선이지, 직업유무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기준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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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122.101.20.19)
2020-11-04 06:43:31
현 상황에 맞게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나 혹은 도시의 미자립교회에 성도들이 얼만 안되어 그들이
내는 헌금으론 교회를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렵게 봉헌한 교회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교회의 사모가 직접
직장에 다니거나 혹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교회를 유지한다고 들었습니다.
목사님들도 현장에 뛰어들어 대리운전을 하시거나 아니면 일당 막노동을 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들 대학을 나오시고 대학원까지 나오신 분들이신데 이렇게 궁핍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포기할 수도
없기에 이렇게라도 운영해야 하는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글쓴이 말씀대로 앞으로 목회에 뛰어드시는 젊은 목회자분들 앞으로 이런 2중적인
직업이 목회자의 기본적 트렌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 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 상황에 맞춰가면서 나름 열심히 목회를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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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0-11-03 18:33:15
專任과 兼任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설사 二重職 아니 多重職을 하더라도 목사직이 직업의 중심이라면... 노가다면 어떻고 대리운전이면 어떤가?

본문 글에 나와 있는 에쿠스 부흥회 따위에 열중하는 전임목사만 목사가 아니고, 세들어 살고 있는 교회의 월세를 내기 위해 노가다 뛰는 목사도 목사다.

목사직을 傳任하더라도 그 자질이 형편없을 수도 있고, 목사직을 다른 직업과 兼任하더라도 그 자질이 훌륭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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