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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존을 노래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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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0월 31일 (토) 21:31:48 [조회수 :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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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장 6-9절

평화공존을 노래하라

 

가. 하나님은 평화공존을 기뻐하신다.

6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 본문은 평화공존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인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평화공존을 원하신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는 진정한 평화의 완성을 보여준다(6-8절). 이것이 하늘나라 청사진이다.

*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인간세상도 거의 약육강식의 세계에 준한다. 그래도 동물들은 배부르면 포획을 중단한다. 사람들은 배가 불러도 포획을 계속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롬15:1)가 하나님의 뜻이다.

* 자발적 나눔을 통하여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공산주의가 싹튼다. 혁명을 통해 나누어 갖자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생각은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사회가 되어야 서로 행복하다. 평화공존이 해답이다.

 

나. 평화공존이 쉬운 일은 아니다.

6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 평화공존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때가 차야 가능해진다. 여기서 ‘그 때’는 ‘살며’(웨가르, 접와완료) 안에 포함되어 있다. 즉 메시야가 오신다고(1-2절) 즉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성취된 후에야(3-5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세례요한의 오해도 비슷한 것이다. 그는 메시야가 오시면 즉시 하나님의 나라가 이를 줄 알았다. 그는 주님을 믿고 담대하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결국은 체포되고 옥에 갇혔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마11:3)라고 물었던 것이다. 메시야가 오시기만 하면 평화공존이 성취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답하셨다. 즉 천국은 침노를 당하지만(비아제타이, 수동) ‘침노하는 자’(비아스타이, 힘쓰는 자)가 쟁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영적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라.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본문에서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은 평화공존의 유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때에 가능하다. 여기서 ‘이는’(키)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야 평화공존이 가능하다.

*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인 것과 마찬가지다(빌3:8 등). 호세아는 지식을 율법과 동일시했다(호4:6).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와 알고지내기(야다) 위하여 우리가 공유해야할 하나님의 뜻(데아)을 가리킨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말씀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정신으로 충만해야 한다.

* 이사야가 강조한 하나님의 뜻은 공의, 정직, 성실 등이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4-5절)라고 하였다.

 

라. 평화공존은 모두에게 유익을 준다.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 그런데 평화공존을 이루기는 힘들지만 일단 이루어지면 모두에게 행복을 준다. 본문에서 ‘내 거룩한 산’은 평화공존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곳에서’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를 가리킨다. 평화공존이 이루어지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파멸시키는 일은 사라진다. 그러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좋은 세상이 활짝 열린다. 그런 세상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하였다. 즉 사람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정의와 성실을 실천함으로 평화공존을 이루면 평강과 희락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칙이다.

* 싸우면 모두 죽는다.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평화공존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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