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양식에서 종교적 믿음은 어떤 확고하게 정립된 교의나 관념이나 사제나 권력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진정하게 절대적이고 무한한 것으로 귀의하는 것이며 이러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것과의 합일을 통하여 인간 역시 신과 같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존재로 고양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신앙은 인간 자신 속에 있는 신적 자질에 대한 내적 경험이다. 그것은 능동적인 자기창조 내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식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가 부단히 우리의 내부에서 태어나는 과정이다. 이러한 신앙은 나 자신의 내적인 경험에 입각한 확신이며 어떤 것을 믿도록 명령하는 권위에 대한 복종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프롬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신적인 존재로서, 즉 무한한 신성을 갖는 자로서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무한한 신성을 실현하는 것을 인간의 사명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무한한 신성은 무한하기에 어떠한 대립자도 갖지 않으며 인간이 그것을 실현할 경우에는 그는 모든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그러한 사물들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실현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무한한 신성에 고행이나 외면적인 종교적인 의례를 통해서 도달할 수는 없다. 고행이란 이미 자신의 육체에 대한 고행이며 그것은 육체를 적대시하는 방식으로 이미 자신의 대립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대립자를 전혀 갖지 않는 무한한 신성에 도달하는 길이 될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은 항상 자신의 대립자를 갖는 유한한 것들을 갈망하거나 집착함으로써 자신을 유한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본래적인 무한한 신성을 은폐하고 있다. 인간은 신이 자신 안에서 활동하도록 자신을 철저히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에크하르트는 ‘자기’를 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이 경우의 자기는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다른 존재자들을 갖는 유한한 존재자이며 결코 인간의 본래적인 ‘자기’인 무한한 신성은 아니다. 이러한 자아는 우리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종의 재산으로 간주되며 신체, 이름, 사회적 지위, 지식, 소유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 타인이 자기에 대해 갖기를 바라는 이미지 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모든 갈망을 버린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이러한 유한한 자기, ‘비본래적인 자기’에 대한 모든 동일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신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것에 얽매이는 만큼, 달리 말하면 자신과 그 소유물을 동일시하는 그만큼 인간의 자유는 제약 당한다. 인간이 자신이 소유하던 기업이 망했다고 자살할 경우, 그는 자신과 이 기업을 동일시한 것이고 이 기업의 소멸을 자신의 소멸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래 무한한 자기를 유한한 사물과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을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에크하르트는 모든 의지를 버릴 것을 주장하는데 이 경우 의지는 인간이 그것에 의해서 ‘움직여지는’의지, 즉 갈망과 동일한 뜻이다. 따라서 에크하르트는 더 나아가 신을 열망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도 신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일종의 갈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이든 사물이든 어떤 것을 갈망하는 한 인간은 그것과 구별되고 고립되어 있는 ‘자기’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 경우 신은 인간의 갈망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구별된 유한한 것이 되고 말며 신의 무한한 신성은 제거되고 만다. 신은 소유될 수 있는 존재자로 간주되고 유한한 우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에 대한 갈망조차 버림으로써 신의 무한한 신성이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찬국,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세창미디어.2015.03. p.6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