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일이다. 식당 주방 한 구석에 있는 네모난 철제통안에 새빨간 선지가 담겨있는 모습을 보고 징그러운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비릿한 냄새도 뇌리에 남아있다. 그 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북극해 아래 위치한 러시아 툰드라의 유목민들이 갓 잡은 순록의 배를 갈라 국자로 피를 퍼서 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채소와 과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툰드라 지역에서 이끼만 먹고 자란 순록의 피는 풍부한 철분과 비타민을 제공해주는 영양보충제라고 했지만 그 모습이 좀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한동안 해장국을 먹을 때마다 선지가 들어가 있으면 꺼려지는 마음이 있었는데 4년 전부터 그런 선입견이 사라졌다 교회 근처 해장국집에서 파는 선지해장국의 식감과 그 맛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지가 들어간 해장국을 불편함 없이 즐기고 있다.

몇 군데 식당에서 선지해장국을 먹어보았는데 식당마다 선지의 식감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었다. 이유를 알아 보니 선짓국의 맛과 향은 재료 자체에서 절반, 조리과정에서 절반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의 선지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식당의 선지보다 더 신선함은 당연하다. 또 선지의 응고과정에 따라서도 차이가 생긴다. 보통 소의 피에 물과 소금을 적정 비율로 섞어 응고를 시키는데 물과 소금의 배합비율에 따라 선지의 질감이 달라진다. 물의 양이 너무 적으면 선지가 퍽퍽해지고 많으면 부스러지게 된다. 김구선생의 단골식당이었다고 하는 종로의 유명한 청진옥에서는 막걸리 효소를 사용하여 응고를 시킨다고 한다.

선지의 모양도 어떤 식당은 매끄럽고 어떤 식당은 구멍 난 치즈처럼 표면에 구멍이 많은 식당도 있다. 끓이는 방법 때문에 모양과 식감이 또 달라지는데 선지를 약한 불에서 천천히 오래 끓이면 구멍이 없이 매끈해지고 강한 불에서 빨리 끓이면 기포가 발생해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그렇게 재료와 조리과정의 차이 때문에 맛과 향 그리고 식감의 차이가 생긴다. 탱글탱글한 식감과 푸석푸석한 식감의 차이는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나 나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선호한다.

선지는 돼지피, 황소피, 외선지가 있는데 외선지는 암소의 피를 말한다. 암소의 피가 제일 좋은 선지로 인정받지만 식당에 따라서 돼지피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끓는 국물에 새빨간 선지를 국자로 퍼서 끓이면 갈색의 덩어리가 된다. 선지 특유의 부담스러운 냄새를 없애주기 위해서 보통 국물의 세게 한다. 고추기름을 넣어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우거지와 콩나물을 넣어 끓인다.

선짓국은 아저씨들에게 더 어울리는 음식이지만 영양을 따지자면 젊은 여성에게 더 좋은 음식이다. 철분이 풍부해 빈혈에 좋고 열량이 매우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을 뿐 아니라 비타민 B가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선짓국을 끓여먹는 이도 있지만 솔직히 집에서 해 먹기에 적당한 음식은 아니다. 신선한 생선지를 구하기도 어렵고 끓일 때 비릿한 냄새도 나기 때문에 잘 하는 식당이나 선지해장국 전문점에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날씨가 싸늘해졌다. 해가 떨어지면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지는 요즘 같은 늦가을에 진한 국물의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 있는 선짓국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