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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의 ‘개방된 보수 신앙’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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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10월 04일 (일) 21:12:56
최종편집 : 2020년 11월 10일 (화) 01:52:02 [조회수 : 4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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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형석 교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 이유는 100세가 된 분이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기도 해서 건강한 100세 시대를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런 건강을 타고난 김 교수를 부러워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분이 말년에 많은 신앙 서적을 냈다는 점이다.

그는 90대에 8권의 책을 냈다. 2013년에는 1권의 신앙 서적을 냈고, 2016년에는 1권의 자서전적 책과 1권의 신앙 서적을 냈다. 그리고 그는 2017년 이후에 중점적으로 신앙 서적을 냈는데, 2017년에 1권, 2018년에 2권, 2019년에 1권, 2020년에도 1권을 냈다. 이런 다작은 젊은이들도 어려운 일인데, 90세에 이렇게 많은 책을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낸 신앙 서적은 1986년에 나온 『예수』가 처음이다. 1990년 대에도 2권의 신앙 서적을 냈지만, 2016년부터는 매년 신앙 서적을 1권 이상 냈다. 그는 60세에서 75세 사이가 그의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했는데, 신앙인으로서 그의 황금기는 많은 신앙 서적을 낸 90대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젊은 시절에 수필을 써서 젊은이들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주었는데, 노년에 이르러서는 신앙 서적을 통해서 교인들에게 신앙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중학교 4학년이었던 18세에 부흥 집회를 인도한 후로, 그는 신학 교수도, 목사도, 장로도 아니지만, 일생 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집회를 인도했다. 특히 그의 성경 공부 반이나 집회에는 교인들뿐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김 교수만큼 교회 내외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개방된 보수 신앙’이라고 말한다. 신앙적인 면에서 개방되어 있으면 진보적이고 보수적이면 닫혀 있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어떻게 상반되는 신앙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 신앙

김형석 교수는 중학교 1학년 때 참석한 부흥회에서 신앙적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숭실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신앙 부흥회를 가졌을 때, 그는 중학교 1학년 학생으로 그 집회의 맨 앞줄에 앉아서 장로교를 대표하는 윤인구 목사와 김창준 목사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다. 김 교수는 그 집회에 참석한 가장 어린 학생이었다. 그는 그 집회에서 그 두 분 목사님의 설교를 받아들이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는 그 집회를 통해서 신앙인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하면서, 그때의 마음 상태를 멀고 먼 길을 믿음과 희망을 갖고 출발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신앙적 의욕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먼저 열심히 기도했다. 예배당과 집에서는 물론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그 기도 내용은 이제부터 자기의 삶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허락되는 대로 교회 집회와 그 당시 많이 열리던 부흥회에 참석했다.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마칠 때 획기적인 신앙 체험을 했다. 그의 주변에서 선후배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일본을 위해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3일을 예정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 그때 그는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15:16)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어렸을 때 가졌던 신앙적 확신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가 되시니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로 계신다는 믿음이었다. 그다음부터 그는 처음 신앙생활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고요 속에 머물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조용했다. 그리고 그는 기적적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징집을 면했다.

그는 이 신앙 체험을 통해서 ‘은총의 선택’을 믿었다. 자기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교회와 이 민족을 위해서 일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으로 믿었다.

그는 그 후에 공산화된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은총의 선택’을 다시 체험했다. 그는 탈북하기 위해서 어린애를 업은 부인과 함께 해주역에 도착했다. 그날 밤은 여관에서 보내고 다음 날 용당이라는 포구를 향해서 걸어갔다. 50미터쯤 앞서가던 부인이 파출소 부근에서 심문을 받았고, 그들 내외는 탈북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 건물로 끌려갔다. 이제 그들의 탈북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계장급에 해당하는 책임자가 김 교수를 조사하기 위해서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들고 말문을 열려고 할 때, 벽에 걸려 있는 전화의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체포된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서 처리하기 어려우니 체포되는 사람들을 무조건 돌려보내라는 전령이 하달되었다. 이것은 마치 도스토옙스키가 사형당하기 5분 전에 황제의 사면령이 떨어져서 죽음을 면한 것과 비슷한 극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풀려난 후 그들 내외는 그날 밤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작은 나룻배를 타고 탈북하기로 했다. 그의 부인과 어린애를 먼저 태우고 막 김 교수도 타려고 하는데 만원이 된 배가 떠나버렸다. 혼자 남은 그는 10여 분 뒤에 다른 배를 탔다. 탈북자들을 체포하려는 경비정들이 어두운 바다 위를 휘젓고 다니고 있고, 사공은 탈북자들에게 경비정에 붙잡히게 되면,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용케도 경비정들을 피해서 남한의 바닷가에 도착했고 거기서 부인과 어린애를 만났다. 배 위에서 그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다. 혹시 애가 울어서 사공과 장정들이 바다로 뛰어든 뒤에 부인과 어린애가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온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도 주님의 이끄심과 보호를 확인했다. 그가 ‘악마는 유혹하고 신은 고난을 준다.’라는 서양의 속담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것은 그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신앙 체험을 통해서 그는 ‘은총의 선택’을 굳게 믿었다. 그 믿음은 그가 100세가 되도록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때마다 기도하고 자기를 선택하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그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꾸준히 성경을 가르치고, 한국은 물론 외국까지 나가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흔히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그들이 믿었던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는 신앙 체험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이 행하신 ‘은총의 선택’에 대한 그의 확신이 일생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 이 확고한 신앙을 그는 보수 신앙이라고 불렀다.


개방된 신앙

그는 중학교 4학년 때 18세의 어린 나이로 2주일 동안 부흥회를 인도했다고 한다. 그는 친구의 고향 교회에 가서 낮에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성인들을 위해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때 사람들이 창문 밖에 서서 그의 설교를 들을 정도로 그 부흥회가 은혜로웠다.

그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은혜로운 부흥회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확신을 얻은 후에 열심히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하고 여러 집회에 참석하는 외에 기독교 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당시에는 우리말로 쓰인 기독교 관련 책이 거의 없어서 일본에서 출간된 신앙인들의 전기와 고백이 실린 작은 책들을 구해서 읽었다.

그 후에 김 교수는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기독교 서적을 중점적으로 읽었다. 그가 그때 읽은 기독교 서적 중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파스칼의 『팡세』를 비롯해서 안셀무스, 오리게네스,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상 깊게 읽은 19세기 후반기의 두 신학자로 슐라이에르마허와 키에르케고르를 들고 있다. 그는 특히 일본의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를 좋아했다.

그는 일본의 조치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는 동안 무신론 철학자들의 책까지도 열심히 읽었다. 그는 당대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던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책들에 빠지기도 했는데, 종교와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책들을 읽으면, 그들의 주장에 끌리기보다는 종교적 욕구를 더 강하게 느끼곤 했다. 그런 허무주의자나 무신론자들의 뒤에는 더 높은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가 ‘은총의 선택’을 체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문학작품도 열심히 읽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감동했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좋아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고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시와 진실』도 읽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문학책을 즐겨 읽은 김 교수는 까뮈나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의 작품도 빼놓지 않고 읽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책벌레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대적 철학자들의 책뿐 아니라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교회가 사회 안에 있다고 말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 보면 교회가 곧 기독교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신앙인의 삶이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를 위해 살다가, 교회로 끝나버린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신앙의 목적이 되어버린다. 김 교수는 이것을 교회주의라고 부른다. 그는 교회가 사회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회주의에 빠져서 교회가 사회를 등지는 동안 교회 바깥 사회는 학문적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그래서 세상의 교육수준이 향상될수록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서구의 교회들이 문을 닫아가고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게 된 것이다. 이제 교회는 교리만을 찾고 종교적 진리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 안으로 들어가서 사회가 원하는 진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교회는 사회에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교사들이 교육기관을 세우고 병원을 세울 때 교회는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교회가 사회를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기 교회의 교세를 확장하려는 데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대형 건물을 짓고 수십만 명의 교인을 자랑하지만,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기보다는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김 교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교회주의와 교리주의에서 찾는다. 그는 반복적으로 계명이나 교리가 인간의 삶을 억죄거나 인간다운 삶을 방해한다면 그런 교리는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는 예수님이 교리주의를 타파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회와 교리가 인간을 위해서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예수님이 경직된 율법을 비판하셨는데, 교회는 교리 싸움을 일삼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 즉 인간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는데, 교회는 하나님 사랑을 위한 교리를 내세워서 인간의 삶을 억죄고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완전을 위해서 인간이 그 수단과 방편이 되어도 좋은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같이 인간도 온전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마치면서
 
김형석 교수가 보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라는 신앙 체험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개방적 신앙은 그가 철학자로서 신학, 문학, 철학 등 폭넓은 인문학 서적을 섭렵한 데서 기인한다. 김 교수의 신앙을 알브레히트 리츨을 따라서 도식화한다면, 그의 ‘개방적 보수 신앙’은 초점이 둘인 타원형이다. 하나의 초점은 보수이고 다른 하나는 개방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는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다.

신앙의 초점은 하나님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초점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그 계명들을 가르치시면서 예수님은 그 두 가지가 온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타원형의 하나의 초점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체험을 통해서 확고해진다. 신앙 간증자들은 흔히 불치의 병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었다는 기적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그런 신앙 체험은 그들의 신앙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주는 닻이 된다. 그런데 그런 극적인 체험이 아니더라도, 신앙의 눈으로 우리 삶을 보면 크고 작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겪는 기적적인 일조차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교리에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이성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기적적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나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느끼면서 감사하게 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김형석 교수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서 그의 신앙의 다른 초점인 개방적 신앙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인문학을 외면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인문학을 외면하기 쉽다.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한 교부들은 인간 이야기를 하는 문학을 외면했고, 그 전통을 이어받은 개혁자들도 문학을 비롯한 인간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여기서 인간은 신앙의 주체이고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이다. 신앙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인간의 역할은 무시해도 좋다고 말하면서 신앙에서 인간을 배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신앙에서 인간을 제외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정말 신앙에서 인간의 역할이 필요 없다면, 예수님은 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겠는가? 루터는 인간에게는 사탄의 노예가 될 수 있는 노예 의지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악을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전혀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겠는가? 이런 선한 일을 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려면 인간의 의지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인간 이야기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 기여한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 따라서 인문학 공부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인문학을 외면하면 인문학을 중시하는 현대인을 이해할 수 없고, 현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과 소통할 수 없다. 교회가 현대인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도의 문이 닫혀가고 있다. 김형석 교수의 신앙 이야기에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 인문학자의 이야기가 현대 사회를 향해서 열려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개방된 보수 신앙’의 두 가지 초점은 예수님이 강조하신 두 가지 사랑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의 신앙은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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