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 신간 소개
오직 사랑으로: 교회를 되살려낸 프란치스코의 혁명적 복음
당당뉴스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9월 24일 (목) 13:11:31
최종편집 : 2020년 09월 24일 (목) 13:22:19 [조회수 : 110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오직 사랑으로

: 교회를 되살려낸 프란치스코의 혁명적 복음

리처드 로어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0년 10월 15일
신국판 336쪽
값 14,000원.
ISBN 978-89-97339-62-4 94230, ISBN 978-89-87427-87-4 94230 (세트)
원서, Eager to Love: The Alternative Way of Francis of Assisi (Franciscan Media, 2014)

 

 


1. 개요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영향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아 성육신 종교를 탈육신 종교로 둔갑시켰다고 믿는 저자는 성육신 신비주의 전통과 프란치스코의 평화주의 전통의 관점에서 에고 중심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경쟁과 폭력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예수처럼 하느님과의 일치를 따르는 사랑, 지혜, 체험 중심의 관상 전통을 통해 온전한 인격과 평화 실현의 길을 역설한다. 그는 복음을 원죄론과 대속신앙이라는 부정적 관점 대신에 하느님의 철저한 사랑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예수의 죽음보다는 예수의 삶이 우리를 더욱 잘 구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에고의 변화와 신화(theosis)라는 적극적 관점에서 구원을 해명하는 그는 이 책에서 “첫 번째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렸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되찾은 진정한 복음을 “대안적 정통주의”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밝혀준다. 교회가 제국의 종교권력이 된 이후, 예수가 보여준 하느님 나라의 체제변혁적 삶을 살아내기보다는 예수 자신을 예배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예수를 따르는 모험과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던 교회를 프란치스코는 어떻게 되살려냈는지,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기본적인 원리들은 무엇이었는지, “오직 믿음”을 강조한 개신교 대속신앙은 왜 예수 장사꾼들을 양산했는지, 독생자의 피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신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은 왜 대체로 폭력적인지,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나실 필요조차 없었는지, 로마 총독 빌라도가 죽이지 못한 예수의 꿈과 정신을 교회는 어떻게 죽였는지, 예수와 바울로, 프란치스코의 혁명적 복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또한 클라라와 보나벤투라, 스코투스의 신학 전통은 무엇인지, 왜 프란치스코는 수많은 성직자들보다 역사적으로 더욱 큰 영향을 끼쳤는지,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바리사이들이 되기 쉬운지, 우리가 십자가로 구원받았다는 말의 참뜻은 무엇인지,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교회는 왜 자연 파괴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지, 하느님이 어떻게 초인격적이며 동시에 인격적인지, 그리고 대속신앙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해명한다. 이처럼 저자는 인류문명과 교회가 모두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한 암담한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을 되찾게 함으로써 위로와 희망을 주며 문명전환의 근원적 돌파구를 제시한다.

 


2. 저자와 역자

 

   
 

리처드 로어 신부(1943- )는 프란치스코회 사제로서, 오랜 영적 지도와 상담을 통해 애니어그램, 남성들의 영적 성숙, 역사적 예수와 우주적 그리스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보편적 그리스도』(2019) 등 20권 이상의 주옥같은 책들을 발표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1971년에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새 예루살렘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1986년에는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행동과 관상 센터”를 설립하여 1986년에 “행동과 관상 센터”를 설립하여 토머스 머튼을 이어 관상 전통을 되살려내는 일에 헌신해왔다. 그는 예수의 복음에 철저하며 토마스 머튼을 이어 관상 전통을 강조하며, 우주와 성서와 인간의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와 사랑을 통전적으로 찾고 있다. 특히 가톨릭 신부들을 위한 피정을 17년 넘게 인도하고, 앨버커키 교도소 지도신부로 14년간 사목한 경험을 바탕으로 『불멸의 다이아몬드』, 『야생에서 아름다운 어른으로』, 『위쪽으로 떨어지다』, 『벌거벗은 지금』 등 이미 아홉 권이 국내에 번역되었다.
김준우 박사는 『역사적 예수』, 『불멸의 다이아몬드』 등 3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3. 서평  


                                                                                                                                                            
“프란치스코의 영성의 비밀을 풀어냄으로써 리처드 로어 신부는 또 다시 프란치스코 전통의 기초적인 주제들을 알기 쉽고 놀랍게 적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그 영성의 영원한 특질을 우리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밝혀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느 곳에서 살든지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큰 선물이다.”
—Daniel P. Horan, O.F.M, The Last Words of Jesus:
A Meditation on Love and Suffering 저자

“리처드 로어 신부는 직조(織造)의 대가로서, 새로운 개념들을 씨줄로 삼고 새로운 이해를 날줄로 삼아 아름답고 근본적으로 통합된 전체로 짜낸다. 이 책에서 그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걸어간 길이 온전함을 향한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밝혀준다. 13세기의 영성을 빅뱅 우주론 속에 직조함으로써 로어 신부는 프란치스코의 삶의 방식을 우주가 펼쳐지는 선봉에 자리매김 한다. 이 새로운 책은 그의 영적인 천재성을 반영한다.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Ilia Delio, O.S.F., Compassion:
Living in the Spirit of St. Francis 저자
“리처드 로어 신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지혜를 밝혀주는 가장 진정한 목소리 가운데 한 분인데, 이 영원한 지혜는 오늘날 합창으로 울려 퍼지면서 우리를 이분법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 모든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말로 이 책은 깊은 관상의 삶으로 인도하며, 매일 시장 한복판에서 산(山) 정상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모델일 뿐 아니라 산에 대해 성찰하는 삶의 모델이다. 이 책을 여는 순간 지혜의 노래가 울려 퍼져 우리로 하여금 기쁨 가운데 복음을 이 세상 속에서 춤추도록 초대한다.…
   로어 신부는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어둠 속에서 알게 된 빛을 우리가 감지하도록 손짓함으로써, 프란치스코와 그의 친구이자 자매였던 클라라를 빛과 생명의 스승이라고 가리킨다. 여기서 그는 왜 지혜가 영원한지를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고통 속에서 관상의 삶을 살 것을 제시하며, 또한 어두운 세계이지만 빛으로 가득한 자비의 장소로 안내한다. 로어 신부의 기쁨과 번득이는 유머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가 복음과 오늘의 세계를 대조시키는 것을 통과해서 그 자비의 장소로 가도록 도와준다.          — Fr. Dan Riley, O.F.M., Mt. Irenaeus Franciscan Mountain Retreat 창립회원

 


4. 목차

 

머리말  옛 것과 새로운 것 __ 13
1장  “신비주의”란 무슨 뜻인가? __ 25
2장  행복한 내리막길: 고난을 겪은 이들의 내적 권위 __ 45
3장  내부의 가장자리에서 살기: 단순함과 정의 __ 61
4장  본거지(Home Base): 자연과 길 __ 73
5장  관상: 앎의 다른 방식 __ 91
6장  대안적 정통주의: 다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 __ 115
7장  프란치스코의 천재성: 부정적인 것들의 통합 __ 139
8장  가벼운 가슴과 확고한 발: 여성성과 남성성의 통합 __ 159
9장  클라라의 유산: 깊이의 삶 __ 179
10장  타인의 세상에 들어가기: 프란치스코와 이집트 술탄 __ 195
11장  보나벤투라: 사랑에 맡기는 것이 원천에 돌아가는 길 __ 203
12장  존 던스 스코투스: 멍청이 말고는 무엇이든 __ 219
13장  프란치스코: 자연적인 영적 천재 __ 237
부록 1  나사렛 예수와 우주적 그리스도의 역동적 일체성 __ 257
부록 2  하느님이 인격인가? 신의 본성에 관한 견해 __ 279
부록 3  온갖 일은 어떻게 “초래되는가”? __ 299
후기 __ 319
옮긴이의 말 __ 325

 

5. 본문 속으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프란치스코 이후에 나타난 지속적 영향과 완전한 새로움을 검토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아마도 그의 혁명적인 생애를 더욱 큰 놀라움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5-16쪽)

우리 자신의 정신, 가슴, 몸, 영혼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너머에는 어떤 “구원”도 없고, 하느님을 알거나 기쁘시게 할 비밀스러운 도덕적 명령도 없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우리는 우리가 볼 필요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가르침, 즉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 간절히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 핵심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오직 사랑으로』(Eager to Love)라고 정했다.(35-36)

제도화된 종교는 예수께서 결코 단 한 번도 언급하시지 않은 문제들(산아제한, 낙태, 동성애)에 훨씬 많은 주의를 기울여왔으며 또한 그분이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마태오 19:21])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해왔다.(131쪽)

그러나 나는 이것이 예수님의 혁명적인 복음의 핵심이며, 바울로의 깊은 체험의 핵심이며, 또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그처럼 단순하고 우아하게 살아낸 핵심적 통찰이라고 믿는다. 부정적인 것을 통합시키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야손의 집에 모였을 때처럼 여전히 “온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들”(사도행전 17:6)을 만들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장님이며(요한 9:39-41), 다른 이들을 인도하는 장님인 것이다.(140)

기본적으로 우리가 스코투스가 주장한 것처럼, 하느님의 완전하며 절대적인 자유와 사랑에 열심이시라는 이해를 잃어버리게 되면, 인간은 계산의 세계로 전락한다. 모든 것은 측정하고 계산하고 조금씩 베풀고 갚아야만 한다. 이것이 영웅적인 희생이나 필요한 속죄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의 심리에 끼친 영향이다. 또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성전종교가 하느님의 은총을 “사고파는” 모든 시도들과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한 2:13-20). 그런 모습에서는 하느님을 달래주어야 하며, 그처럼 기분에 좌우되며 화가 나 있는 신에게는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예수님이 가르친 메시지가 아니다. (232-233)

우리가 공식적으로는 예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었다고 믿었지만, 그러나 우리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탓에,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오직 신이었던 반면에, 우리는 오직 인간뿐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매우 중요한 요점을 놓쳤는데, 그것은 그분 안에 인간성과 신성을 함께 놓은 다음에는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서도 그와 똑같은 것을 감히 발견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포용적인 구원자(Savior), 즉 우리가 모방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구원자를 매우 배타적인 하느님으로(오직 예수님만이 하느님이라고 믿고) 예배해야 하는 속량자(Redeemer)로 둔갑시켰다.(269)


6. 출판사 서평: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질문들


말라죽어가던 교회에 프란치스코는 어떻게 새로 생명을 불어넣었는가?
그리스도교는 왜 성육신 종교로 시작해서 탈육신 종교로 둔갑했는가?
‘오직 믿음’을 강조한 개신교 대속신앙은 왜 예수장사꾼을 양산했는가?
빌라도가 죽이지 못했던 예수의 꿈과 정신을 교회는 어떻게 죽였는가?
독생자의 피로 용서하신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은 왜 대개 폭력적인가?
인간의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는 신자들은 왜 나르시시즘에 빠지는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태어날 필요도 없었는가?
예수는 정말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오신 것인가?
예수와 바울로, 프란치스코가 살아낸 혁명적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보나벤투라, 스코투스의 핵심적인 신학 전통은 무엇인가?
믿음의 반대는 왜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과 확실성에 대한 요구인가?
자연 파괴와 팬데믹 사태에 대한 전통신학의 근본적 책임은 무엇인가?
한국 교회가 되살아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신학적인 혁명은 무엇인가?

 

   
 
당당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2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