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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회장의 임기를 2년으로 줄이면 감리교회가 다시 살 수 있습니다“중앙집권제를 지양하고 개체 교회 중심으로 연회와 지방 분권제를 실시토록 모든 기구를 개편한다.”
곽일석  |  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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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9월 18일 (금) 07:36:10
최종편집 : 2020년 09월 18일 (금) 12:40:58 [조회수 :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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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는 10월 12일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제34회 총회 감독회장 및 감독선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각종 송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부연회 선거권자 선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선거의 무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첨예하게 대립을 이루며 논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정치 상황은 40여 년 전 호헌, 정동, 성화파로 분열되었던 정치파벌 간 극한적인 대립을 이루며 생사의 기로에 섰던 감리교회의 과거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극단의 분열을 극복하고 감격적으로 합동을 이루었던 역사의 중심으로 다가가서 작금의 상황을 돌파할 나름의 교훈과 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34회 총회 감독회장은 자신의 임기를 2년으로 줄이는 자기희생을 통하여 2년 겸임제로의 대전환을 결단해야 합니다. “중앙집권제를 지양하고 연회와 지방 분권제를 실시토록 모든 기구를 개편한다.”는 제12회 총회의 대화합과 상생을 위한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1973년 4월 30일 정동교회당에서 열린 특별총회 개회에 즈음하여 윤창덕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감리교회는 9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우리 감리교회가 250여 교회 시에 3개의 연회와 하나의 감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중 40여년 동안에 우리 감리교회는 크게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는 교회의 수가 1,500여 교회, 교인의 수가 33만여 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회도 (40년 전과 같이) 세 연회, 감독도 그대로 한 사람의 감독을 가지고 있게 되었으며 마치 세 살 때에 입던 의복을 30세 된 때에도 그대로 입으려고 하는 데서 생기는 무리한 일과 같은 일 등이 우리 교단에서도 있는 것입니다. 30세라는 청년은 30세의 청년이 입을 수 있는 의복을 만들어 입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의복은 찢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장정 개정을 위해 모인 특별총회의 의도와 목적이었습니다. 곧 성장하고 비대해진 교단에 걸 맞는 헌법과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숨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리교회의 고질인 파벌과 파쟁을 제도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헌법을 모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장정개정위원회가 제시한 개정 기본방침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 중 현저한 항목을 들어 봅니다.

“총리사 (감독)는 제 12회 총회 때에 3~4명을 선거하여 총리사회를 조직하고 1년씩 윤번제로 의장이 되고 총리사 중에서 재단이사장 각국 위원회 위원장 신학교 이사장직을 각각 분담케 한다.”

“중앙집권제를 지양하고 개체 교회 중심으로 연회와 지방 분권제를 실시토록 모든 기구를 개편한다.”

이렇게 하여 감리교회가 지난 40년을 살아온 제도와 구조의 기본 틀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시대를 통해 여러 가지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며 감리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기여했습니다.

19세기 말 개화기에 한국감리교회가 형성 된 이후 지난 시대를 통해 우리가 그 틀 위에서 살아온 신앙과 교회 패러다임은 세 가지였습니다. 말하자면, 한국감리교회의 제도와 구조의 기본 틀은 세 번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첫 번째 틀은 19세기말 개화기의 선교 초기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1885년에 들어온 미국 북감리교회와 1895년에 들어온 미국남감리교회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튼과 리드와 하디 같은 선교사들의 수고와 최병헌과 노병선과 전덕기 같은 선각적인 조선 감리교인들의 헌신으로 이 땅에 뿌리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때 감리교회 운영의 기본 틀은 미국감리교회 제도와 구조를 선교 현장에 이식하며 적응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개체교회, 구역회, 지방회, 선교연회, 연회가 구성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미국감리교회 총회에 속하여 대표를 뽑아 총회 때에 미국에 파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된 첫째 패러다임의 감리교회는 시대가 변하여 1920년대 중반이후 큰 위기를 겪으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습니다.

두 번째 틀은 1930년 12월 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가 합동하여 “조선감리회”를 조직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일제하 역경 속이라서 경제적으로 미국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명실상부하게 독립 자치 총회를 조직하여 양주삼 총리사를 선출하고, “교리적 선언”을 하고, 우리의 손으로 운영하는 자주적인 감리교회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비전은 이 땅에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진정한 조선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가 합동한 것은 1939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패러다임의 감리교회는 일제 말 혁신교단에 의해 왜곡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 통합되어 사라지는 비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감리교회는 새로 살아나 새 역사를 열기 시작했고, 1949년 4월 재건파와 복흥파의 수고와 합동으로 김유순 감독을 선출하며 복원되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1930년 체제로 복귀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시대가 변하여 1970년대 들어와 이 두 번째 패러다임이 낡아지면서 한국감리교회는 큰 혼란과 위기를 겪으며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세 번째 틀은 1978년 10월 감리교회 총리원측과 갱신총회 측의 합동 총회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 호헌파, 성화파, 정동파 등 지연 중심의 정파로 갈라져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노출하고, 교회권력과 재산을 놓고 얼룩진 교단 정치를 벌였지만 감리교회 운영의 기본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1978년 가을 합동 총회는 감리교회의 제도와 구조와 관련하여 4개의 중요한 원칙을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감리교회는 지난 40년을 살아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회 제도와 구조의 기본 틀이 그때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첫째, 완전 다원화 감독제. 권력집중형의 4년 전임 1인감독제를 폐지하고 권력분산형의 2년 겸임 다원 감독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감독회장은 연회 감독들 중에서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총회 대표 선출의 단순화. 정회원 목사 10년 급 이상과 이에 상응하는 평신도의 수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연회에서 총대 선출을 놓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정치 싸움을 끝내자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셋째, 개체 교회 중심화. 감독 파송제를 폐지하고 구역회에 개교회 인사위원회를 두고 담임자 임퇴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개체 교회의 선교와 운영의 축을 개체 교회가 맡아 권리와 책임을 다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넷째, 사업기구의 독립과 기능화. 본부 각 국은 전문가로 구성되며 정책 연구에 중점을 두고 그 시행은 각 연회가 맡도록 했습니다. 선교국, 교육국 등 각 국 중심으로 감리교회의 미래 비전을 열어가는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한국감리교회의 세 번째 패러다임에 대한 심원한 성찰이 요청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전개된 갱신운동사의 역정과 그 의미, 그리고 미래 가치와 한계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통한 성실한 역사공부가 그 중요한 초석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시대는 또 다시 새롭게 변했고, 감리교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에 4년 전임감독제를 채택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역사구조적인 인식이나 미래 통찰이 없이 교권 쟁탈에 집중된 일시적인 미봉책이었음이 2008년 이후 감독회장 선거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책임 있게 움직이며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교회 제도와 구조의 틀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감리교회 안에서는 풀뿌리 개체 교회들이 살아 있고, 몇몇 대형교회가 성장하여 있지만 통제되지 않는 권력처럼 이미 원로원화, 정치세력화, 권력화 되어있는 총대들을 매수하는 금권선거로 교회의 지도자인 감독들이 당선되면서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다시 교권을 4년 전임제로 만들면서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자, 감독회장 선거에 매몰되면서 감리회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개체 교회들 간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교회매매, 교회세습 등 공교회로서 감리회나 교단 행정과 정책을 대변하는 본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1992년 소위 ‘교리재판, 이단재판, 종교재판’이란 명분으로 자행 된 교권과 돈과 무지의 세력에 의한 감리교회의 영계와 정신계를 향한 횡포와 철퇴 이후 자유롭고 비판적이고 창조적이고 건강한 신학지성의 생명력이 죽어 신음하며 탄식하는 감리교신앙공동체의 희망을 열기 위해 헌신하는 역량 있는 일꾼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의 진리가 아닌 맘몬 즉 물신의 승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감리교회는 지난 10년 여 동안 큰 혼란과 위기를 겪으며 다양한 단체들에 의하여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더욱 더 불투명 하다. 미래학자들의 일반적인 예측에 의하면, 10년 후 한국교회의 모습은 교인은 50%줄고, 헌금도 50% 줄면서, 해외 선교사들은 철수하고, 무리하게 지은 대형교회는 부도가 나며, 생존을 위하여 통폐합이 이루어지는 급격한 변화가 몰아칠 것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의 펜데믹 상황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으며 주일이면 교회로 달려오던 발걸음조차도 멈추게 하였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대안으로 능동적인 목회의 전환을 이루었지만 여전한 감염병의 위세 앞에서 점점 무기력해지는 목회의 현실을 인하여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힘든 현실 속에서 한국감리교회가 밝은 희망과 새 역사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네 번째의 건강하고 창조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어야할 “때”가 온 것입니다. “예수생명과 평화공생”의 패러다임입니다. 이 새로운 틀, 새로운 제도, 새로운 구조, 새로운 궤도를 타고 한국감리교회는 다시 한 시대를 생명력 있게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한국감리교회의 바람직한 현재와 밝은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꿈과 희망이 있는 감리교회를 후배들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물러주어야 하겠습니다.

※ 상기 글에서 교회사 관련한 자료는 백석대 성백걸 교수(한국역사신학연구소)의 연구 논문으로, 저자의 허락을 받고서 부분 발췌하여 인용합니다.

 

2030 메소디스트 포럼(Methodist Forum)

총무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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