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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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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9월 14일 (월) 18:50:20 [조회수 :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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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가 재수감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몹시 불만스러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이 전 목사와 관련된 가짜 뉴스를 내게 보내왔다. 그들은 정부와 언론이 합작해서 전 목사를 탄압한다고 믿었는데, 이제 전 목사가 재수감되었으니 그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성가대 단톡방에 문재인 대통령 하야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가 떴다. 한 사람은 올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제의를 찬동했다. 성가대 단톡방은 성가대의 소식을 공유하는 곳이고 성가대원 가운데에는 전 목사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다수 있다. 그런데 전 목사를 두둔하는 정치 선전문을 교회 모임의 단톡방에 올리는 것은 교회를 정치 선전장으로 만드는, 발을 뻗을 자리와 뻗지 말아야 할 자리를 구별하지 않는 무분별한 행태이다.

지금까지 분별없는 두 사람이 그런 글을 여러 차례 올렸는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성가대원이 몇 명 그 단톡방에서 나갔다. 그런데도 전 목사 추종자들은 그들의 패거리가 조작해 낸 메시지를 계속 올리고 있다. 오늘 성가대 단톡방에 올라온 문 대통령 하야 국민청원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를 읽고서는 고사에 나오는 허유가 생각났다. 나는 눈으로 보았으니 눈을 씻어야겠다.

내가 이렇게 전 목사를 못마땅하다고 말하니까 그의 추종자들은 나를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열성분자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 대통령이 탁상공론적인 정책을 펴거나 측근을 지나치게 감싼 것은 그의 행정 중에서 아주 큰 오점이었다고 본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나 조국을 감싸면서 자기가 임명한 검찰총장을 몰아세운 것은 큰 실수였다.

그러나 나는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를 대처하는 데서는 잘하고 있다고 본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고, 질병관리청장을 임명하면서 청장 후보자를 청와대로 부르지 않고 현장으로 찾아가서 임명장을 주고 질병 관리를 부탁하는 데서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그의 열의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 교회의 어느 장로는 전광훈 목사를 신령하다고 말하던데, 정말 그가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전 목사는 공공장소에서 “하나님 꼼짝 마,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말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과 친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그를 변호하려 하지만, 그런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목사란 말인가? 어떤 사람은 그것은 농담이었다고 말하던데, 그것이 농담일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런 사람을 신령한 목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왜 그렇게 믿을까?

나는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버리고 남하한 사람들과 6·25를 거치면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그리고 일부 보수신앙인들에게 공산주의자는 치가 떨리는 원수이다.

그런데 이념 논쟁을 앞세워서 자기들의 행태를 정당화하려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고, 박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노무현과 그의 친구 문재인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보고 있다. 더구나 지금 청와대 참모들이나 여당의 국회의원들 가운데에 과거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좌경화했던 사람이 다수 있기 때문에, 문 정권을 빨갱이로 규정하는 전 목사의 말이 솔깃하게 들릴 만하다.

내 친구는 문재인 정부가 우리나라를 곧 김정은에게 갖다 바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사 그들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린다. 그러나 그는 자기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는다. 그는 공산주의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

오히려 그는 그렇게 안심하고 있다가 당하는 법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려고 든다. 그러면서 자기가 나서서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용기 있는 전 목사가 대견해서 후원금을 보냈단다. 그러면서 청와대 참모 가운데에 공산주의자가 몇 명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는 평소에 사리 분별이 분명한 사람인데, 공산주의 말만 나오면 흥분한다. 그가 어릴 때 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된 자기네 교회 목사 가족을 비롯한 교인들의 사체를 목격한 데서 생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 같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내 친구에게는 전 목사가 육두문자를 쓰고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는 것은 들리지 않고, 그가 외치는 문 정권이 빨갱이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전 목사의 추종자들이 퍼 나르는 가짜 뉴스를 진짜라고 믿는다. 내가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내 안경에 편견의 색채를 칠하면 온 세상이 그 색채로 바뀌는 법이다. 우리가 세상을 올바로 보려면 그런 안경을 벗어야 한다. 내 친구는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우리가 당면한 공산주의 문제를 바로 보려면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를 데리고 내가 잘 아는 정신과 의사에게 가고 싶다. 그런데 그가 순순히 내 말에 응할까?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환자라는 것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그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내가 보고 싶은 것 하나만 보려는 성향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박 대통령을 경제발전을 이룬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는 3선개헌이나 유신헌법을 단행하면서 민주투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고문한 독재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상 박 대통령은 두 가지를 다 했는데, 사람들은 흔히 그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언급한다. 두 가지 면을 모두 보는 균형 있는 판단이 아쉽다.

문재인 정권을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박 대통령이 한때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실상 박 대통령은 주체사상을 공부했던 청와대 참모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여수 순천 반란 사건에 참여했다는 죄목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백선엽 장군의 도움을 받아서 풀려난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은 박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말만 하고 공산주의자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공산주의 활동을 한 일이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일 때는 반공주의자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을 공부한 청와대 참모들은 어떤가?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반드시 양면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우리가 보고 싶은 것 하나만을 본다. 한 마디로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

예수님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남의 흠만 보지 말고 자기 자신도 보라고 가르치셨다. 두 면을 모두 보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8장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에게 와서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 여인을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땅에 글을 쓰신 후에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땅에 “너희는 죄를 짓지 않았느냐?”라고 쓰셨을 것으로 보인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는데, 이번에는 무엇이라고 쓰셨을까? “왜 남의 죄만 보느냐?”라고 쓰셨을 것 같다. 죄 없는 자가 그 여인을 치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자신의 죄는 보지 않고 그 여인의 죄만 보는 그들에 대한 책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도 이 장면에서의 책망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보통 그 유대인들처럼 내 문제는 보지 않고 남의 문제만 본다. 달리 말하면, 내 탓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온통 네 탓이라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그리고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여서 대접을 받기만 원하고 내 자신만을 사랑하려고 한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나를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남의 흠만을 보지 말라는 말씀에서도 남을 대접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도 배려하라는, 나에게만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하나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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