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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재난, 우연 아닌 하나님의 조율” 미가1장 10절~16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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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9월 07일 (월) 18:24:57 [조회수 :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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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재난, 우연 아닌 하나님의 조율” 미가1장 10절~16절

 

 

1. 하나님의 조율(調律)

 

① 예언자들은 왜 흥하는 성공담이 아니라 망하는 실패담을 자세히 기록했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축복의 본보기인 ‘정면교사’로 부르셨지만 불행하게도 ‘반면교사’가 되고 말았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 모든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미가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목도하며 장차 벌어질 남 유다의 몰락을 예고한다. 정통과 적통에 안주하는 예루살렘도 돌이키지 않으면 사마리아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을 엄하게 경계하면서 근본적인 삶의 전환을 촉구한다.

 

② 북이스라엘이 오늘날 ‘신천지 같은 이단사이비’라면 남 유다는 ‘정통을 자처하는 한국교회’에 해당한다. 한국교회는 대구신천지집단감염사태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이단사이비신천지를 다루시는 것’이라고 비난과 조롱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결국, 일명 광화문보수집회로 인해 집단감염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수모를 겪고 신천지 같은 취급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집단감염확산의 원인과 대상은 이단이나 정통, 예배나 교회가 아니라 다수가 모이는 ‘밀집’이고 마스크착용으로 요약되는 ‘생활방역’을 준수하지 않은 까닭이다. 타산지석의 성찰과 회개 없이 비난과 정죄에만 급급한 결과다.

 

③ 미가서는 ‘코로나19사태를 해석하는 신학적인 모티브’를 제시한다. (3절)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시리라”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낮추시는 하나님의 조율(調律)이다. 전대미문의 재난을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면 대처하는 자세 곧 해법이 달라진다. 재난을 빨리 통제해서 하루빨리 과거의 모습으로 원상복귀를 바라기보다 재난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근본적인 삶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겸허하게 수용할 때 진정한 해법이 열린다. ‘정직한 절망이 진정한 희망의 시작’인 까닭이다. 질병을 인정할 때 치유가 시작되고 무지를 인정할 때 배움이 시작되듯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할 때 참된 삶이 시작되고 죽음을 통해 영생이 시작되듯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져야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 새워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회개가 정답’이다.

 

 

2. 명실상부에서 유명무실

 

① (10절~11절) “가드에 고하지 말며 도무지 호곡하지 말찌어다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찌어다 . 사빌 거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찌어다 사아난 거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 미가는 장차 벌어질 남 유다의 비참한 모습을 자세히 예고하면서 회개치 않은 이들이 당하게 될 삶의 결과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 ‘가드에 고하지 말며 도무지 호곡하지 말찌어다’ 가드는 남 유다의 불구대천의 원수 블레셋을 가리키는데 멸망으로 인해 대적들에게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이어서 남 유다에 속한 열 개의 성읍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명실상부하던 도시들이 유명무실해질 것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베들레아브라’는 많은 거민들로 인해 먼지가 많은 성읍이란 뜻인데 한 줌의 재와 같은 존재, 먼지(티끌)처럼 될 것을 예고한다. ‘사빌’의 본뜻은 아름다운 성읍인데 벌거벗김(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아난’의 본뜻은 진군인데 고립(격리)이 될 것이며, ‘벧에셀’은 본래 쉼터, 휴게소라는 뜻인데 거리에 사람이 없는 고립무원의 지경이 될 것을 예고한다.

 

② (12절) “마롯 거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 ‘마롯 거민은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마롯은 쓰다는 뜻인데, 회복되길 바라지만 도리어 쓰디 쓴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을 예고한다. 코로나이전으로의 원상복귀는 부질없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신 재앙이기에 제아무리 기량을 펼쳐도 그 뜻을 다 이루실 때까지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하면 축복이 임하고, 반대로 하나님을 멸시하여 거역하면 저주가 임한다. 성서가 전하는 시종일관, 시종여일한 메시지다. (신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예루살렘이나 한국교회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왕상9:6~7)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오래 전 예루살렘에서 이 말씀이 성취된 것같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 저주로 끝나는 사람이 더 많다.

 

③ (13절~15절)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찌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 ‘라기스 거민아’ (메시지성경) ‘전차 성에 사는 너희, 전차를 타고 모두 내뺀다. 너희는 시온의 딸들을 꾀어 하나님 대신 전차를 믿게 만들었다’ 죄의 근본과 허물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던 우상숭배다. 자신의 의지하던 것들과 함께 무너질 것을 예고한다. (14절)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찌어다” ‘가드 모레셋’은 가드의 예물이라는 뜻인데 애굽에게 예물로 받은 성읍을 앗수르에게 공물로 바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열왕을 속이리라” 사람과 맺은 굳건한 동맹이 한낱 신기루가 될 것을 예고한다. (15절)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마레사는 상속이란 뜻인데 후손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예비한 것들이 이방 민족에게 상속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아둘람은 은신처, 피난처라는 뜻인데 매장되는 무덤이 될 것을 예고한다. 지금은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과 실상이 일치)하지만 영광이 수치로 변하게 되어 그날에는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해질 것을 예언한다. (계3:1)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처하는 삶의 비참한 결말이다. 남 유다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은 한마디로 우상숭배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공로로 얻은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주신 분께서 거두신다. 멸망과 실패가 주는 유익이 있다.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뼈저리게 자각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이걸 빨리 깨닫고 날마다 은혜로 사는 게 지혜다.

 

 

3. 문제는, 다음세대!

 

(16절)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 찌어다 네 머리로 크게 무여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찌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니라”

 

① ‘대머리’는 고대노예들의 대표적인 행색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남 유다의 죄악으로 인한 가장 무서운 결과는 ‘다음세대’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타향으로 끌려가는 사태다. 지금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미래의 후손들이 그 폐해를 감수해야 하듯이 죄악의 결과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자손들에게로 이어진다. 지금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다음세대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금 한국교회는 노년층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구성비가 줄어드는 심각한 역삼각형의 구조다. 한국교회의 주축은 선교초창기 ‘주일학교운동세대’(70~80대)이고 ‘베이부머세대(55년~63년생, 60대)’는 지금 한국교회를 떠 바치고 있는 마지막 보루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소위 ‘7080세대’와 90년대 출생한 일명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 불리는 ‘포노 사피엔스’세대는 희귀한 존재가 돼버린 현실이다. 최근 한국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추태로 인한 신뢰하락은 더 급속하게 진행돼서 쇠퇴를 앞당길 게 자명하다.

 

② 한국교회는 코로나사태의 위기를 도리어 교회의 본래적인 역할과 사명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기위해 전심전력해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단지 ‘비대면온라인예배’로 방역에 협조하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방역’만큼 중요한 것은 ‘일상’이다. 우리는 ‘방역’과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계속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생활기반이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 해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위험을 막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코로나사태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감염력은 매우 높지만 치명률은 상대적으로 아주 낮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만이 능사가 아니고 적절한 시기가 되면 생활방역으로 전환해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유지하는 길을 모색해야한다. 정부는 방역을 총괄하고, 병원은 위중한 감염자를 치료하고, 교회는 대다수의 비감염자들이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일상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이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인 까닭이다. 지금 교회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은 ‘대면예배강행이나 정권심판’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해서 누구보다 철저하게 마스크와 손 씻기로 대표되는 ‘생활방역’에 앞장서야 한다. 나아가서 ‘비감염자’들이 두려움과 불안을 담대하게 극복하고 일상생활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한가롭게 좌우이념대립을 일삼거나 알량한 집단이기주의를 내세울 때가 아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교회는 감염자와 감염지역에 대한 낙인과 혐오,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는 어리석음을 타파하고 전대미문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연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래야 산다.

 

③ 한국교회가 시대적 본분을 망각하고 거역하면 후손들이 칼에 삼키겠지만 반대로 오늘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면 내일 우리 자손들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시37:23~26)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 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그 실 예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삼하9:3~11)이다. (시112:1~3)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눅6:38) ‘(지금 주의 이름으로) 주라, 그리하면 너희(후손)에게 (내가 친히 갚아)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후손들) 에게 안겨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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