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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불안을 껴안고 있기보다
김화순  |  givy4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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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8월 31일 (월) 00:12:55 [조회수 : 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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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것들을 빼앗긴 지금, 서로 손을 잡고 안아주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던 시간이 그리워 서러움이 몰려온다.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조여오는가 하면 불안이 혐오가 되어 서로를 불신하고 맹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언제까지라는 말보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잘 살아가는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우리는 과연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립고 사랑스러웠던 날들은 우리에게 돌아와 줄까.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쓴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아들러 심리학을 핵심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심리학이 인간의 삶을 원인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아들러는 목적론을 강조하여 해석하면서 지금 현재의 나, 여기 이대로의 나,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자의식과 자유의지가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폭발적인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사람의 내면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자신의 존재감이 무시당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존중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력한지 사소한 무시의 태도가 끔찍한 폭력과 칼부림을 불러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으로부터의 존중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인정하고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존중은 상호관계성 속에서 형성되는데 본질적인 나와 외적인 나의 관계에서 진정한 수용의 경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자기 존중감이라는 열쇠를 획득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자기 긍정과 자기 수용의 경험은 결국 타인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적 공헌으로 연결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감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코로나-19라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닥칠지 모르는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껴안고 있기보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고자 하는 갈망으로 조급증을 내기보다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나 자신을 수용하는 경험이 회복과 변화의 첫걸음이라면 지금의 이 시간을 수용하는 경험 역시 또 다른 회복의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불안의 시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해 보자.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나치의 감옥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 굳은 의지로 자신의 삶을 지켜냈던 빅터 프랭클은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삶에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고 했다.

사물과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삶이다.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에 있지 않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길 위에 자유와 행복의 포인트가 있다. 부득이하게 옥죄어져 있는 삶의 자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의지가 그 자리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햇살은 여전히 우리를 비추고, 거칠고 사나운 폭풍우도 어김없이 우리 곁을 지나간다.

김화순∥중앙연회 부설 심리상담센터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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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8-31 01:31:48
교통사고 난다고 자동차 운전사를 마녀사냥 하는가? 교통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가? 무한폐렴 확산시킨 자를 처벌하면 되지 왜 마녀사냥까지 하는가?
매년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망하는 사람은 약 30만명이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암 79,000명, 순환계통 62,000명, 호흡계통 38,000명, 감기 4,000명, 자살 13,000명, 교통사고 4,000명이다. 만약 코로나 방역처럼 사망원인별로 개개인의 신원을 조사기록하고, 통제수단을 강제할 경우, 자동차 운행을 통제하고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자살원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개인별 심리검사를 하여 등급을 매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건강관리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몫이다. 정부는 교육하고 홍보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방역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주민통제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았는데도 한때 병원에 환자가 몰리기는 했지만 전체 사망자는 평년에 비하여 특별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6.25 전쟁기간에도 국회, 교회, 학교를 봉쇄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모든 주민들의 통제를 강제하고 정상적인 사람들마저 경제활동을 못하게하여 서민 경제가 망가지고 심리적 압박감을 조성하는 경우에는 자살자의 증가로 인한 인명손실이 많아질 것은 당연한 예측이다.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근본적 변화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醫師 강국희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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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높이 들어 하늘을 보라!

1,2차세계대전 사망자, 스페인독감 사망자, 미국독감 사망자, 일본뇌염 사망자, 中共 대약진운동 관련 사망자, 북한 고난의 행군 관련 사망자, 蘇聯 스탈린 치하에서의 기아 사망자... 현재 한국 무한폐렴 관련 사망자 400명 이하...

무한폐렴 빙자하여 갑질 하는 게 아닌지? 자기와 사상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상을 강요하는 사상적 갑질 하는 게 타당한지?

교통사고 난다고 자동차 운전사를 마녀사냥 하는가? 교통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가?
무한폐렴 확산시킨 자를 처벌하면 되지 왜 마녀사냥까지 하는가?

<마녀사냥>에다 <사상적 갑질>까지 하면서 <자기불안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호들갑>으로 도배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지 묻고 싶다. 무한폐렴을 빌미로 하여!

이런 행태에 대한 반성 없이 호들갑이나 떨고 있으면, 무한폐렴이 시들해지고 유사한 다른 도전(위험)에 직면하면, 이런 광란이 또 다시 되풀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쪽으로만 우르르 쏠려 자기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난리치는 걸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아야!

1차세계대전 사망자 5천만명(민간인 포함) , 스페인독감 사망자 5천만명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유태인을 포함한 기득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마녀사냥에 열중한 어느 누구에게 박수를 친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금방 잊어버리는, 시무 7조를 상소한 조은산이 비유한 붕어類의 인간들이 목에 힘을 주는 세상이 참으로 역겹다. “주여, 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나이다.”라고 한 절규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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